재판부 “은밀한 사적 영역에 국가 개입 최소화해야
리얼돌이 인간 존엄성 심하게 훼손했다 볼 수 없어”

리얼돌을 이용해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유튜브 채널 캡쳐 이미지.
리얼돌을 이용해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유튜브 채널 캡쳐 이미지.

여성을 본딴 성인용품 ‘리얼돌’ 수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성 상품화’ 비판에도, 법원은 “개인의 은밀한 사적 영역에 대한 국가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며 수입 허용 결론을 내렸다.

25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행정5부(재판장 박양준)는 최근 김포공항 세관장이 내린 성인용 여성 전신인형 수입통관 보류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성인용품을 수입·유통하는 A업체는 지난해 1월 중국 업체로부터 리얼돌 1개를 수입하려 했다. 김포공항 세관은 리얼돌이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판단해 통관을 보류했다. A업체는 이에 불복해 관세청장에게 심사청구를 했으나 결정 기한이 지나도록 결론이 나오지 않자 법원에 보류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성 기구는 매우 사적인 공간에서 이용된다”며 “은밀한 영역에서의 개인 활동에는 국가가 되도록 간섭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또 리얼돌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라 볼 순 없다”며 “풍속을 해치는 물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세관 측은 ‘리얼돌이 지나치게 정교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실제 사람과 혼동할 여지도 거의 없고 여성 모습을 한 전신 인형에 불과하다”고 봤다. 또 “성 기구는 성적 만족감 충족이라는 목적을 가진 도구로서 신체의 형상이나 속성을 사실적으로 구현할 수밖에 없다”며 “표현이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는 것만으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할 정도에 이른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앞서 대법원도 지난 2019년 6월 한 리얼돌 수입사가 세관을 상대로 낸 수입통관 보류 처분 취소소송에서 위와 같은 취지로 수입 허용 판결을 내렸다.

28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남로에서 리얼돌 허용 규탄 시위가 열렸다. ⓒ여성신문
2019년 9월28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남로에서 리얼돌 허용 규탄 시위가 열렸다. ⓒ여성신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 4일부터 정윤석 작가의 리얼돌을 소재로 한 작업이 전시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인스타그램 캡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해 12월 4일부터 정윤석 작가의 리얼돌을 소재로 한 작업이 전시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인스타그램 캡처

대법원 판결 이후 ‘리얼돌의 수입과 판매를 금지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시작돼 26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많은 여성들이 “리얼돌은 ‘맞춤 제작’이 가능해 특정 여성의 외모가 누군가의 리얼돌로 소비될 수도 있다”며 우려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도 리얼돌 산업이 ‘코로나 특수’를 맞고, 불법 성매매와 유사한 ‘리얼돌 체험방’이 전국에 생긴 데다 여성의 질막까지 본따 만든 제품이 시중에 판매됐으며, 리얼돌을 소재로 한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0’ 후보로 올라 비판 여론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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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법원 판결 후에도 관계 당국이 리얼돌 수입 금지 방침을 유지하면서 논쟁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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