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식품 김순자 회장, 아프면 김치 먹던 소녀, 연매출 500억 김치회사 수장 돼
한성식품 김순자 회장, 아프면 김치 먹던 소녀, 연매출 500억 김치회사 수장 돼
  • 박성희 전문위원 / W경제연구소 대표
  • 승인 2021.01.30 13:55
  • 수정 2021-02-01 1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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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의 W초대석]
‘직원이 자산’이라 생각, 25년 이상 근속만 70% 넘어
김순자 한성식품 대표 ⓒ홍수형 기자
김순자 한성식품 대표 ⓒ홍수형 기자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 없이 일어설 수 없다). 한성김치로 유명한 (주)한성식품 김순자(67) 회장의 좌우명이다. 김 회장이 믿는 건 사람과 김치다. 그는 ‘오랫동안 함께 해온 직원들이야말로 ’자산’이라고 말한다. 한성식품 직원 중엔 근속기간 25년 이상만 70%가 넘는다. 2019년 국내 기업의 평균 근속기간은 대기업 7.7년, 중소기업 3.3년(2019년 일자리행정 통계, 통계청)이다.

김치는 그에게 한 평생 생명줄이었다. 병치레가 잦던 어린 시절엔 특효약이었고, 사업을 시작한 후엔 삶의 근간이었다. 오늘날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젊음과 미모의 비결 또한 김치라는 게 그의 고백이다. “어렸을 때 몸이 약해 자주 아팠는데 맛 있는 김치만 먹으면 씻은 듯 나았어요. 저 때문에 어머니와 할머니가 김치에 신경을 많이 쓰셨지요. 지금도 건강비결이라곤 밥상에 포기김치· 동치미· 물김치를 빠트리지 않는 것 뿐이에요.”

아버지에게 채소 재배·판별법 배워...1986년 구청에 1달 출근해 창업서류 받아

대한민국 김치명인 1호이자 식품명장인 김 회장은 충남 대전에서 3남4녀 중 다섯째, 딸로는 둘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자기 생각이 뚜렷한데다 뭐든 곧이곧대로 했다. 아버지는 이런 딸을 걱정하면서도 틈틈이 농사 일을 가르치고, ‘도둑이나 강도만 아니면 뭐든 죽을 만큼 열심히 해봐야 한다‘고 일렀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는데 짬 나는 대로 저를 밭에 데리고 나가 배추나 무같은 채소의 재배법과 판별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땐 이걸 왜 알아야 하나 싶었는데 김치사업을 하면서 그때 배운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은 힘들 때마다 다시 해보자는 각오를 다지게 했구요.”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 하나를 잃고 혼자 2남4녀를 키웠다. 아버지의 가르침에 어머니의 인내심과 생활력이 더해졌을까. 김 회장은 30대 초반에 사업을 시작한 뒤 온갖 역경을 이기고 연매출 500여억 원, 직원 370여명의 알짜 기업 한성식품(주) 수장으로 우뚝 섰다.

“1986년이었어요. 호텔 식당에 갔다가 우연히 ‘김치가 맛 없다’는 클레임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맛 있는 김치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지만 ‘허가 난 데서 담근 것만 받는다’는 거에요. 구청에 가서 사업을 하겠다고 했더니 ‘여자가 무슨’ 하면서 외면했어요. 한 달동안 계속 갔더니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묻더군요. 데리고 갔던 아들을 가르키며 ‘얘와 먹고 살려구요‘ 했더니 그제서야 절차를 알려 주더군요.”

그때 다섯살이던 아들은 잘 커서 고려대학교에서 식품학을 전공하고 한성식품에서 근무하다 따로 해보겠다며 독립했다. 손녀와 손자는 너무 이뻐 무시로 보고 싶다고.

 

김순자 한성식품 대표 ⓒ홍수형 기자
김순자 한성식품 대표 ⓒ홍수형 기자

지역·사람 따라 염도·입맛 각양각색...기준 찾고 30개국 수출, 특허만 28개

겁 없이 대들었지만 사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쪽에서 짜다고 해서 염도를 낮추면 다른 쪽에서 싱겁다고 했다. 지역과 사람에 따라 입맛이 죄다 달랐다. 그는 절임과 배합을 다르게 한 뒤 가장 많은 이들이 선택한 맛을 찾아 기준을 만들었다. “김치에도 표준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986년에 특허를 내겠다고 하자 코웃음치는 거에요. 대한민국 어느 집에서나 담그는 김치인데 무슨 특허냐면서요. 7년을 매달리다 지쳐 잠시 포기했는데 어느 날 보니 김치특허법이 생겨 몇 사람이 특허를 냈다는 거에요. 그렇다면 새로운 김치로 특허도 내고 수출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전통김치 외에 새로운 김치를 고안한 건 미국과 일본 등에서 열린 식품전시회에 참가하면서부터. “관객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국부스를 피해가는 거에요. 김치는 새빨갛고 장아찌는 누런데다 냄새 나고. 이건 아니다 싶어 예쁘고 맵고 짜지 않은 김치를 만들었어요. 국내에도 내놨는데 처음엔 ‘이게 뭐야’ 하던 학회장께서 맛을 보더니 감탄하더군요. 우리 회사 연구소장으로 초빙돼 15년동안 도와 주셨어요.“ 그동안 낸 특허만 ‘깻잎양배추말이김치’ , ‘치자미역말이김치’  등 28개. ‘백년초김치’ 특허는 2001년 미국에서 받았다.

2007년엔 김치명인 1호가 됐다. “2003년부터 신청했지만 김치에 무슨 명인이냐며 안해 줬어요. 술, 한과 등 전통식품엔 다 명인이 있지 않나, 후대에 전할 한국 전통김치의 맥을 살려야 한다며 수년 간 설득했어요. 처음 지정 됐을 땐 정말 가슴이 벅찼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명인이 되면 모든 재료를 국산만 써야 하더라구요. 요즘엔 힘들어서 ‘반납할까’라는 농담도 합니다.”

2012년엔 세계김치협회와 학자들 위주였던 한국김치협회를 통합한 대한민국김치협회의 초대 회장을 맡아 김치의 산업화와 수출에 진력했다. 출범 당시 30여개 사에 불과했던 회원은 현재 90여개 사로 늘었다. 한성김치는 일본과 미국 등 30여개 국에 수출한다. 대만과 호주 코스트코에선 진열 즉시 매진될 정도라고. 협회장 시절 백방으로 애썼던 ‘김치의 날’ 제정은 지난해 결실을 봐 11월 22일 첫 기념식을 치렀다.

 

ⓒ 한성식품 제공
ⓒ 한성식품 제공

김치명인 1호, 국민건강지킴이 사명...코르동블루같은 김치대학 설립 꿈

김 회장의 목표는 하나다. 맛있는 김치, 나와 내 가족, 온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세계에 한국의 맛을 알리는 김치를 내놓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밤낮 없이 연구한다. 경영자가 사업의 기본과 핵심을 모른 채 누군가에게 의지하다 보면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 “김치 맛의 3대 요소는 재료, 절임, 공정이에요. 같은 배추라도 연도와 계절, 산지에 따라 품질이 각양각색인 만큼 최대한 같은 맛의 김치를 만들자면 재료에 따라 염도와 양념, 버무림 모두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성김치는 오래 둬도 무르지 않고 군내가 안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성김치는 기본으로 무즙· 양파즙· 배즙을 넣고, 고춧가루 등 양념을 황태와 멸치 홍합 다시마 표고를 넣고 우려낸 황태육수로 버무립니다. 익을수록 맛이 깊고 입에 붙는 이유지요. 원자재가 비싸져도 레시피를 안바꿉니다. 나와 내가족, 내 손주가 먹는데 거리낌 없는 김치, 먹고 건강해질 수 있는 김치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매출과 이익도 중요하지만 한결같은 맛을 내는 게 더 소중하다고 믿습니다.”

‘미각을 넘어 영혼을 사로잡는 김치’를 위한 김 회장의 열정과 노력은 멈출 줄 모른다. 2019년엔 발효를 억제하는 김치풀을 넣은 숙성지연김치도 내놨다. 위생과 안전, 생산성 향상을 위한 외부의 상담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선 공장 가동 때 삼성스마트팩토링 혁신팀의 도움을 받았어요. 함께 하니 우리 생각엔 안될 것같던 일들이 되더라구요. 삼성 임직원들은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 자체 회의를 먼저 한 다음 우리 회의에 참가하더라구요. 그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고맙기만 합니다.”

김 회장의 열정과 정성의 댓가는 고객의 신뢰다. 백화점과 마트 등 시판 매장 없이 공영홈쇼핑 판매와 단체급식에 주력하는데도 연초 김치브랜드 조사에서 한성김치는 쟁쟁한 대기업제품을 물리치고 브랜드관심도 5위, 호감도 2위를 차지했다(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 한성김치의 거래처 재계약률은 97%, 소비자 재구매율 또한 95%다. 덕분에 단체급식이 중단된 작년에도 일반 소비자 매출과 수출은 늘었다.

김 회장의 남은 꿈은 세계적인 ‘김치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코르동블루처럼 이수하면 어디서나 인정받는 최고의 김치쉐프가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책상 앞 사장은 필요 없다’는 김 회장의 꿈이 실현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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