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젠더 프리즘] ② 성인지적 관점에서 본 조계종단

지난 2018년 8월 16일 열린 조계종 중앙종회 회의 모습. ⓒ여성신문·뉴시스
지난 2018년 8월 16일 열린 조계종 중앙종회 회의 모습. ⓒ여성신문·뉴시스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등 최근 트로트 프로그램이 인기가 높다. 노래를 듣는 재미도 있겠지만, 오디션 과정에서 시청자가 투표로 참여하고 흙수저 출신이라도 공정하게 평가받아 성공하는 스토리도 흥미진진하기 때문일 것이다. ‘탈코르셋’과 ‘꾸밈노동’ 거부로 대변되는 20대 여성들과 역차별을 호소하며 보수화되고 있는 20대 남성들의 성별 갈등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공통된 화두는 ‘공정성’이다. 공정함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소위 ‘여자가~’, ‘남자가~’ 라는 말은 ‘꼰대’ 혹은 ‘찌질함’으로 배척당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성별 위계, 성역할 고정관념을 법과 제도로 강제하고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한국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단이다.

2600여 년 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불교 교단을 창시한 붓다는 말 그대로 혁명가였다. 모든 인간은 부처가 될 수 있는 DNA를 가지고 있다며, 당시 엄격한 카스트제도에서도 이발사, 말몰이꾼, 성매매여성 등, 성별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출가를 받아들였다. 또한 여성출가자만의 비구니승단을 설립하기도 했으니, 인간평등은 물론 성평등사상은 불교의 출발점이자 근본정신이다. 오늘날의 언어로 말하자면 붓다는 성별 간 불평등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제거하고자 실천하는 성인지감수성, 혹은 젠더 감수성이 뛰어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총무원장은 꼭 ‘비구’여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단 내 성평등 수준은 어떨까? 교단은 세속을 떠난 여/남성 출가자와 세속적인 삶을 사는 여/남성 재가불자로 구성돼 있는데, 출가자는 법을 전하고 재가불자는 출가자에 의식주를 제공한다. 이들은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붓다께서는 교단이 이들 ‘사부대중의 공동체’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은 비구, 비구니스님의 숫자도 거의 비슷하고 교육 과정이나 수행 방식 등에서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단 운영의 주체는 출가자, 특히 남성 출가자인 ‘비구’ 중심이다.

현재 종단의 총무원장(행정부), 호계원장(사법부)은 물론, 포교와 교육 등에서도 지도자는 반드시 ‘비구’여야 한다고, 종단은 법으로 규정하고 제도로 강화하고 있다. 국회와 유사한 중앙종회(입법부)는 출가자 81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10명만이 비구니다. 그나마 이 10석은 1994년 종단 개혁 시 비구니승가가 적극 앞장서서 확보한 것이다. 이처럼 비구니승가의 참종권이 제한적인 이유는 비구승가의 남성중심적인, 부정적이고 열등한 여성관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종단에서 총무원장 직선제 논의가 활발할 때, 중앙종회의 다수 비구의원스님들은 본회의장에서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비구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부족한 비구니들에 의해 총무원장이 뽑힐 수 있다는 이유였다. 또 다른 예는, 출가자의 잘못을 조사하고 심판하는 호계원의 초심 및 재심 호계위원은 모두 비구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만약 어떤 나라에서 입법, 사법, 행정부의 대표는 반드시 남성이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다면, 만약 직장 성희롱이나 성범죄 여성피해자가 재판을 받는데 검사나 판사, 변호사 모두가 남성이라면,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흔히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는 ‘새의 양 날개’라며 동반자로 비유하지만, 비구니승가는 젠더 위계에 의한 감시와 규율의 대상이다. 만약 비구니스님이 비구승가에 순응하지 않으면 처벌받거나 낙인찍힐 뿐만 아니라, 비구니승가 내에서도 위험한 존재가 되어 기피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는 본보기로 더욱 가혹한 처벌을 가해져, 비구니스님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한다. 젠더위계적인 종단 문화에서 차별은 비구니에 그치지 않는다. 여성불자는 출가자로부터, 그리고 남성불자로부터 이중적인 차별을 받는다. 그래서 종단 내에서 비구, 비구니, 남성불자, 그리고 여성불자라는, “21세기의 신카스트제도”의 가장 낮은 계급에 여성불자는 위치한다.

종단법에 성인지 관점 담아야

우리 사회는 가정이나 교육 현장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사소한 성차별에도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성평등하게 변화를 추동할 수 있도록 젠더 감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별 통계로 공정하게 자원을 분배하며, 성별 영향평가를 통해 남녀 모두에게 혜택이 되도록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성별 차이는 인정하되 성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여성발전기본법이나 양성평등기본법 등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여성친화적인 도시’, ‘여성친화적인 화장실’ 등으로 성평등을 강조하고, 앞치마를 두른 엄마와 출근하는 아빠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비판하고, 여성의 관점으로 전래동화의 나무꾼을 선녀 납치범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젠더 위계적이고 신분 차별적인 비구 중심의 종단 운영은 지극히 시대에 뒤처지는 일이다.

반여성적인 종단의 법과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왜 지속되고 있는지, 이제 여성불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을 요구해야 한다. 왜내면 성인지적 관점을 반영한 젠더위계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며, 여성불자로서의 자긍심과 수행력을 높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