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 1년 반
노동부, 인권위 개선 권고에
직장내 괴롭힘 보호 대상 ‘모든 근로자’로 확대
예방교육도 의무화하기로

단 가해자 처벌규정 도입과
아파트 입주민 등 제3자의 괴롭힘 제재 요구엔 난색
인권위 “개선 위해 정부의 진전된 조치 필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1주년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07.15. ⓒ뉴시스·여성신문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020년 7월1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1주년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지 1년6개월이 지났다. 여러 개선 요구가 나온 가운데, 고용노동부가 사업주의 직장 내 괴롭힘 보호조치 대상을 ‘고객응대근로자’만이 아닌 ‘모든 근로자’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도 의무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가해자 처벌규정 도입은 또 미뤄졌다. “죄형법정주의 위반 가능성, 고의성 입증 곤란 등 이유로 오히려 피해자 권리구제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아파트 입주민의 경비원 대상 ‘갑질’ 등 ‘제3자에 의한 괴롭힘’ 행위를 법적 제재하는 방안도 내놓지 않았다. 노동부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적용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며 보류했다.

 

노동부, 인권위 개선 권고에
직장내 괴롭힘 보호 대상 ‘모든 근로자’로 확대
예방교육도 의무화하기로

단 가해자 처벌규정 도입과
아파트 입주민 등 제3자의 괴롭힘 제재 요구엔 난색

광주청년유니온 등 4개 시민단체가 20일 오전 광주 서구 광주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역 한 예식업체에서 벌어진 갑질·괴롭힘 사례를 소개하며 관련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정비를 촉구하고 있다. 2020.07.20. ⓒ뉴시스·여성신문
광주청년유니온 등 4개 시민단체가 20일 오전 광주 서구 광주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역 한 예식업체에서 벌어진 갑질·괴롭힘 사례를 소개하며 관련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정비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7월 2일 노동부 장관에게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 관련 개선을 권고했다. 구체적으로는 △‘고객’ 외 제3자의 괴롭힘으로부터 노동자 보호 △4명 이하 사업장에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적용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규정 도입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의무화 등이다.

노동부는 최근 인권위에 보낸 답신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추진을 통해 △사업주의 보호조치 대상을 현행 ‘고객응대근로자’에서 ‘모든 노동자’로 확대 추진하고,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4명 이하 사업장에도 적용 확대를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처벌규정 도입은 “죄형법정주의 위반 가능성, 고의성 입증 곤란 등 이유로 오히려 피해자 권리구제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직장내 괴롭힘에 의한 고(故)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서 간호사 2주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1.01.05.  ⓒ뉴시스·여성신문
'직장내 괴롭힘에 의한 고(故)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서 간호사 2주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인권위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규정 등 적절한 제재규정이 없는 한 규범의 실효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제노동기구(ILO) 제81호 ‘근로감독에 관한 협약’, 제190호 ‘폭력과 괴롭힘 협약’에서 노동관계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적절한 처벌 등 제재규정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7월 15일 노동부 주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1주년 토론회’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왔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당시 “가해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어서 상습적이고, 중한 가해자에 대한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또 사업주가 가해자인 경우에는 노동청에 신고해도 현행법상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 마련된 경비원 고 최희석씨를 위한 추모 공간에서 기도하고 있다. 아파트 관리직 노동자들은 입주민의 '갑질'에 시달려도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할 수 없다. 고용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뉴시스
지난해 5월 19일 한 아이가 서울 강북구의 A아파트 경비실 앞에 마련된 경비원 고(故) 최희석씨를 위한 추모 공간에서 기도하고 있다. ©뉴시스

인권위는 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의 범위를 ‘고객’에 한정한 것도 문제로 봤다. 최근 아파트 입주민의 경비원 대상 ‘갑질’ 사건 등으로 ‘제3자에 의한 괴롭힘’ 행위를 법적 제재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현행법상 고객 외의 원청업체 관계자, 회사 대표의 가족·친인척 등 사용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노동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 등, 제3자에 의한 괴롭힘의 경우 관련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권혁 부산대 교수는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1주년 토론회’에서 “비록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사실상의 영향력 하에 놓이는 제3자는 직장 내 괴롭힘의 책임주체로서 포섭함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또 제3자의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대해 사업장 출입 금지 등의 제재를 신설하고, 민사책임으로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근로기준법에 명시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ILO ‘폭력과 괴롭힘 협약’은 “제3자가 관련된 폭력과 괴롭힘도 적절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상시 5명 이상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장에만 적용되는 것도 한계다. 4명 이하 소규모 사업장을 보호의 사각지대로 남겨둬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노동부는 확대 적용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가해자-피해자 간 접촉이 빈번해 괴롭힘 문제는 더 심각하다. 재정적 지출을 요하는 것도 아니어서 이를 중장기 과제로 미루기엔 적절치 않다”고 꼬집었다.

인권위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관련 규정을 도입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직장 내 괴롭힘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고, 법제도의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며 “개선을 위한 정부의 진전된 조치가 필요하다. 현재 계류 중인 관련 법률안이 국회의 조속한 논의를 통해 입법화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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