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소재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장된 정인양의 묘역에 추모객들의 남긴 편지와 선물들이 놓여 있다. ⓒ홍수형 기자
7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소재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장된 정인양의 묘역에 추모객들의 남긴 편지와 선물들이 놓여 있다. ⓒ홍수형 기자

지난해 배고픔을 참지 못해 맨발로 탈출한 창녕의 여아, 어린 아들을 여행 가방에 가두고 때려 목숨을 빼앗은 천안 아동치사 사건, 쌍둥이 아들 시신을 2년간이나 냉동실에 보관해온 한부모 가정 친모에 이어 우리 모두가 울분에 떨고 있는 양부모에 의한 생후 16개월 입양아 사망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2001년도 처음 공개된 아동학대 사건이 전국적으로 2100건이 던 것이 2019년도에 3만35건으로 무려 15배가 늘어났고 학대의 정도가 날로 더욱 끔찍해 지난 한해 아동학대로 인해 42명의 어린이들이 생명을 잃었다. 그 아이들의 피멍을 확인하고도 침묵했으며 그 애절한 비명 소리를 듣고도 외면하고 무관심했던 학대피해아동들의 가족, 친지, 이웃 그리고 아동의 안전보호를 책임진 교사를 포함한 아동학대신고의무자들과 우리 모두는 지금 가해자를 비난하기 전에 그 어린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책임을 절실히 느껴야 한다.

이처럼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이 반복되고 해마다 증가하는 이유는 사건이 발생될 때마다 구체적 대안도 없이 아동학대를 예방하자는 구호만 난무하고, 실천 가능한 현장의 실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법과 제도 때문이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지다가 잊을만하면 다시 아동학대사건이 터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아동학대의 79.5%가 가정에서 발생하며 부모가 아동학대 가해자의 75.6%라는 현실을 간과하는 데 있다. 누군가가 신고를 하지 않으면 가정 내에서 은폐돼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아동학대를 발견할 수 없으며 조기에 발견하지 않으면 아동이 생명을 잃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기질적 특성이나 양육 기술의 부족, 분노나 스트레스 조절 미숙, 경제적 어려움이나 사회적 고립을 포함한 가정환경이 부모의 아동학대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부모와 자녀 간의 부적절한 상호관계 개선을 포함한 부모교육과 빈곤가정에 대한 지원 또한 확대돼야 할 것이다.

사회적 이슈가 돼 온 아동학대에 대한 개입은 2000년 아동복지법 전면개정으로 시작됐고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됐다. 학대받은 아동들의 보호와 치료를 위한 68개의 아동보호전문기관과 73개의 학대피해아동 그룹홈이 설치되고 최근 전국 시‧군‧구에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지난 20년간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학대피해아동을 보호하려는 법적 제도적 노력은 지속돼 왔으나 이를 담당한 정부기관의 법 시행 의지와 관련기관과의 상호 공조는 부족했다. 이를 위탁받은 민간 기관의 인력을 포함한 제반 여건은 미흡했으며 아동학대 신고를 포함한 사회의 참여는 매우 저조했다.

어린이는 굳지 않은 시멘트와 같아서 어린 시절에 경험한 아동학대는 일생을 지고 가야할 무거운 짐처럼 그 후유증은 매우 심각하다. 낮은 출생률로 인구절벽이 시작된 국가적 위기에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어린이들을 보호하며 밝고 맑고 씩씩하게 길러내는 것은 국가의 우선적 과제이며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아동학대의 발생을 예방하고 신속한 발견을 통한 조기 치료를 통한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가정에서 은폐돼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아동학대를 조기에 발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정을 잘 아는 친척이나 이웃의 적극적인 신고가 이루어져하고 보육 시설 종사자나 학교 교사를 포함한 법상 신고의무자로 규정된 아동관련 25개 직종 종사자들의 적극적인 신고의무가 법을 통해 보다 강화돼야 한다. 또한 아동학대를 보고도 신고하지 않은 방조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법제화해야 한다. 아동학대를 신고한 용기 있는 사람들의 신고 비밀은 누설되지 않아야 하며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도록 반드시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둘째로 부모를 변화시켜야 한다. 아동학대 발생의 주원인이 부모의 어린 시절의 학대 받은 경험, 부모의 성격적 특성, 부모의 부적절한 부모역할이나 부모역할의 미숙 등이라는 점에서 부모의 아동양육기술을 포함한 부모교육과 산전산후의 예비부모교육을 위한 행정기관과의 협력, 공교육기관의 부모교육 활성화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는 폭력이나 실직, 빈곤등 위기에 처해 있는 가정의 경우 피학대아동이 치료를 받아 가정에 복귀한다 해도 발생되는 아동학대재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가정에 대한 공적 부조의 확대와 지역사회의 아동 돌봄 지원을 늘려야 한다.

넷째로 법과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아동학대범죄자에 대해 철저한 법적 책임을 묻고 있는 영국이나 미국에 비해 아동치사의 경우에도 살인죄 적용 여부에 대한 기대가 불확실하고, 아동학대를 범죄로 규정하고도 실제로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법원의 실형선고가 매우 저조한 우리나라의 경우 아동학대 범죄자의. 형량을 높이는 것 보다는 기존의 관계법에 규정된 대로 형을 집행하는 사법기관의 법 시행의지를 강화해야 한다.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출동할 경우 사법 관리와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의 정보공유와 공조체제가 이루어 져야 한다. 실제로 전담공무원이나 전문상담원은 수사권이 없으며, 강제수사권이 있는 경찰의 조사 개입은 비전문적이고 적극성이 미흡해 16개월 입양아 사건과 같이 실고를 세 번이나 받고도 어린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

다섯째는 예산 중액과 기반 구축이다. 아동학대 관련 예산이 중앙부서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되어 예산이 부족한 시‧군‧구의 이동학대전담공무원 배치와 아동보호전문기관 설치에 어려움이 있다. 현실적으로 전국에 설치된 68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230여 시‧군‧구를 담당하다보니 인력 부족과 전문성 향상을 위한 기회가 매우 제한되어 있는 실정이다.

끝으로 아프리카의 “어린이 한 명을 기르려면 온 마을이 들고 일어나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격언처럼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별 없이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한 국민적 신고의식을 높여야 합니다. ‘시민이 주체가 되는 아동학대예방 캠페인’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라야 한다. 이 땅에 학대와 폭력이 없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사회적 책임이며 시대적 사명일 것이다. 이를 위한 국번 없는 신고 전화 112 한통은 우리나라 아동학대 근절의 첫 출발이 될 것이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회장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회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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