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런 온'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상투성 벗어던져

사진=JTBC
사진=JTBC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라고 하면 사회경제적 계층이 판이한 남녀, 우연한 만남, 운명적인 사랑, 경쾌함과 웃음, 사랑의 시련, 해피엔딩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이 같은 장르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친 자기 복제는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불러 온다. 이에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들은 익숙한 장르적 관습에 새로움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인기를 유지하는 전략을 사용해왔다. 다수 드라마들은 현실성을 떨어지지만 사극, 판타지, 호러,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하는 장르적 혼합을 통해 사랑의 절대성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JTBC 드라마 <런온>(감독 이재훈, 작가 박시현)은 인물들이 마주하는 세상을 담아냄으로써 그동안 로맨스 장르가 간과하였던 현실감을 보여주는 반대의 방식을 선택했다.

<런온>은 메인 커플 기선겸과 오미주, 서브 커플 서단아와 이영화의 사랑 이야기를 담아낸다. 두 커플의 로맨스는 당연히 우연한 만남에 의해 시작하는데, 기선겸과 오미주는 무려 4번이나 우연히 만나며, 서단아와 이영화도 카페에 걸린 그림을 매개로 인연이 연결된다. 남주인공인 기선겸은 국가대표 육상선수로 국회의원 아버지, 유명 영화배우 어머니, 세계적인 골프 선수인 누나로 이루어진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가정을 가진 인물이다. 반면, 오미주는 외화 번역자로 고아 출신에 아는 언니와 함께 사는 인물이다. 이렇듯 드라마는 부유하지만 불우한 인물과 평범하지만 씩씩한 인물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사랑에 빠진다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주요 요소를 충실히 따른다. 서브 커플 역시 부유하고 똑똑하지만 동생에게 경영권에서 밀린 서단아, 평범하지만 미술을 전공하는 유쾌한 직진 연하남 이영화로 성별은 바뀌었지만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적합한 인물 설정과 관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런온>이 그리는 주요 인물과 에피소드는 현실과 맞닿았다는 점에서 리얼리티 요소가 강화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사랑 위한 도구였던 '일', 드라마 중심으로
무엇보다 <런온>의 주인공들은 일을 한다. 기존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들에게 일과 직업은 사랑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배경이 되거나 갈등을 유발하는 도구일 뿐이다. <런온>은 주인공들의 일에 대한 꿈과 열정, 성취에 대한 욕망, 실패를 통한 좌절을 그린다. 만년 2인자인 육상대표지만 1등을 하고 싶다는 의지와 올바른 지도자라는 미래를 그리는 기선겸, 외화 번역에 대한 자부심과 한국의 인디 영화를 세계에 알리고자하는 미주의 꿈, 회사 경영에 대한 단아의 포부, 그림에 대한 재능과 애정을 보여주는 영화 등 이들은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살지 않는 생활인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일하는 데 불편한 힐 대신 운동화와 낮은 굽의 구두를 신는다.

사진=JTBC
사진=JTBC

 

일상의 부조리 조목조목 지적하는 주인공
<런온>은 주인공들이 마주하게 되는 일상적인 억압과 이의 부조리함을 이야기한다. 특히 일하는 여성들이 처할 수 있는 불합리한 상황과 성차별적인 행태들을 주변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미주는 얼굴이 반반하다며, 다홍치마로 비유되고, 실력이 아닌 과거 남자친구의 힘으로 영화 번역 일을 맡았다는 루머를 들어야만 한다. 단아 역시 실력이 출중함에도 딸이라는 이유로 남동생에게 그룹 경영권을 빼앗기고, 정략결혼을 통한 혼사로 그룹 경영에 보탬이 될 것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은 순응하는 대신 잘못된 가부장적 사고를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미주는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갑질 교수와 이를 방관하는 과거 남자친구에게 일침을 가하며 젠더감수성을 키우라고 이야기하며, 단아는 가부장적 권위에 기대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그룹 후계자가 된 남동생의 무능력함과 현실의 부조리함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부조리 해결 위해 여성이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
더 나아가 드라마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 특정 영역에서의 여성들이 전면으로 나서는 것이 현실적인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육상 국가 대표 사이에 발생한 폭행 사건을 훈육으로 덮으려는 징벌위원들의 구태의연한 행태를 보여준다. 뒤이어 남성적인 문화에서 파생한 위계질서 강조가 폭행 사건의 기저에 있으며, 이의 해결을 위해 여성 지도자 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성 위원의 발언을 통해 직접적으로 담아낸다. 훌륭한 여성 코치를 만나 국가 대표가 된 기선겸이 자신의 은사를 찾아가는 장면은 여성 지도자 발굴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이외에도 결혼을 앞둔 친구와의 모임에서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친구의 질문에 역으로 ‘넌 결혼을 왜 하니’라는 미주의 질문과, 보호종료아동임에도 당당한 미주의 태도에 불쾌감을 느낀 친구의 고정관념을 드러내는 장면은 우리 사회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일상적인 억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들은 현실성이 결여되지만 사랑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인기를 얻어왔다. 반면 <런온>은 기본적으로 다른 세계에 사는 주인공들이 하나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신데렐라 스토리지만, 현실에 발을 디딘 인물들을 그린다. 그리고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무겁진 않지만 일상의 부조리함을 제대로 짚어내면서 기존 로맨스 드라마가 지닌 상투성을 벗어나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