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연, 성인지적 가족정책 토론회

저출산, 노령인구의 증가, 이혼과 재혼의 증가 등 우리 사회 가족의 급격한 변화 속에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가족정책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여성들이 가족정책 방향에 대한 논의의 첫 장을 마련했다. 지난 22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가족정책토론회 '성인지적인 가족정책을 모색한다!'를 열고 가족정책의 큰 틀을 고민했다. 정부, 학계, 여성단체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가족정책의 범위, 가족정책을 담을 법·제도, 가족정책 전담부처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가족정책의 양성평등 원칙을 강조하고 여성의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고용정책 마련과 여성이 전담해 온 가족 부양의 사회화를 선결 과제로 지목했다.

성평등적 가족정책 끌어내야

황정미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족에 기대되는 고유한 역할은 아동의 출산과 양육, 그리고 병자나 노인 등 의존적 가족구성원에 대한 부양”이라며 “모성수당, 아동수당, 간병보험 등 가족이 안정적으로 부양관계를 지속할 수 있도록 사전에 지원하는 시스템이 보편적인 정책”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또 “가족위기나 해체는 사실 경제구조와 노동시장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고용을 가족친화적인 형태로 유도하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성보호, 직장보육제도, 육아휴직, 가족간호휴가제도, 노동시간 단축 등이 논의될 수 있다.

김혜경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가족정책과 젠더 관점이 결합된 독일, 미국, 프랑스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가족정책의 키워드로 “여성의 노동권 보장과 모성권 보장을 통한 가족부양의 '탈 가족화'와 남녀전반의 참여를 통한 '탈 성별분업화'”를 제시했다.

가족정책 법안들 한계 많아

이날 토론회에서는 또 가정학계와 사회복지계에서 각각 발의한 '건전가정육성기본법'과 '가족지원기본법'에 대해 여성적 시각에서 다양한 문제점이 지적됐다. 송다영 호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건강가정'은 남성이 경제적 부양을 책임지고 여성이 가족보호노동을 담당하는 전통가족 형태를 전제한 것”이라며 “평등성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가족지원기본법 역시 아동양육과 노인부양 등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한정하고 있다”며 “이는 가족부양자로서 여성의 위치를 지속 또는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지원기본법' 마련에 참여했던 김인숙 가톨릭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가정학계가 긴급하게 내놓은 '건전가정육성기본법'에 대한 사회복지학계의 대응이 '가족지원기본법'이어서 이들 법안의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인정했다.

김 교수는 “사회적 합의가 없는 현재의 가족정책 논의가 우리 현실”이라며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이 현실로부터 최대한 성평등적 가족지원책을 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족정책 어디서 담당하나

한편 보육 업무 이관을 사이에 두고 있는 여성부와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참석해 향후 가족정책을 담당할 주무 부처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다. 보건복지부 김혜선 여성정책담당관은 “국무총리 산하 여성정책조정회의에서 통합적 가정복지 주무 부처를 보건복지부로 정리했다”며 “고령화와 저출산에 대비한 가족지원 복지체계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부 김애령 정책1담당관 역시 “보육 업무를 이관 받아 사회적 양육 문화를 조성할 것”이라며 “전국가족조사를 실시하고 있고 가족정책관련 기본법 제정도 추진 중”이라고 밝혀 가족 업무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이에 대해 이화여대 이재경 교수는 “여성부를 여성가족부로 재편해 보육부터 단계적으로 가족 관련 정책을 통합하되 노인 복지 등은 분리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송다영 교수는 “어느 부처건 총체적으로 가족정책을 전담할 독립된 주무 부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계 첫 가족정책 토론회였던 만큼 이번 토론회가 기존의 가족정책 논의에서 많이 나아가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성평등한 가족정책에 대해 기본 합의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향후 여성계의 구체적인 가족정책 논의에 바탕이 될 것으로 평가됐다.

김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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