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를 남성 혐오자로 묘사해 흠집내
한국형 백래시 여성들의 입 틀어막아

여성신문이 2021년 신년 기획 <92년생 김지영>을 통해 이 시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싣습니다. 82년생, 92년생, 00년생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며 ‘젠더갈등’이라는 이름 아래 그동안 ‘한국형 백래시’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주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할 방안 등을 살펴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 백래시(Backlash)는 어떠한 아이디어, 행동 또는 물체에 대한 강한 반발을 뜻하는 단어로, 성평등 및 젠더 운동 등의 흐름에 반대하는 운동 및 세력을 ‘백래시’라 부른다.

여성신문 기획기사 '92년생 김지영'은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92kim.womennews.co.kr/

미국의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는 본인의 저서 ‘백래시’를 통해 미국 여성운동에 대한 전 사회적 반격의 흐름을 정리했다. 책을 통해 우리는 1980년대 미국의 경제 위기 속에서 언론과 학계, 문화 예술계 등이 반페미니즘적 주장을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수전 팔루디에 따르면 백래시는 “기반암처럼 단단하게 자리 잡은 여성혐오만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개선하려는 현대 여성들의 각별한 노력”이 있는 상황에서 촉발된다.

한국 반페미니즘 정서도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와 함께 백래시도 리부트됐다. 현재 한국에 주요하게 퍼져있는 반페미니즘적 주장은 아래와 같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여성신문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여성신문

 

"페미니즘=워마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Feminism is For Everybody)의 저자인 여성학자 벨 훅스는 “보수적인 대중매체는 끊임없이 여성 페미니스트들을 남성 혐오자로 묘사했다.

페미니즘 운동 내에 반남성 분파나 그런 정서가 보인다 싶으면 페미니즘에 흠집을 내기 위해 대중매체는 그 사실을 집중 조명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페미니즘 리부트 후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우월주의자라는 흠집 내기가 계속해 이어졌다.

2018년 래퍼 산이는 이수역 폭행 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스트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합동 콘서트 도중 콘서트 도중에 “페미니스트 No, 너넨 정신병”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해당 주장에 자주 언급되는 것은 바로 ‘워마드’다. 여성신문이 인터뷰 한 20대 남성 A씨는 워마드는 급진적인 여성주의자로 남성을 부정하는 여성우월주의자라고 표현했다.

“이름 들어봤어요. 너무 급진 여성주의자, 여성 우월주의자라고 생각해요. 걔네 너무 이해 안 돼요. 자기들도 아버지가 있어서 나타난 건데 그것도 부정해버리니까. 워마드도 여성일베, 대한민국에 해가 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더 심하면 벌레 정도, 해충. 워마드=페미니즘 연결 아니다. 페미니즘은 인간 모두 평등인데 워마드는 여성 우월이지, 페미니즘=워마드 아니다. 근데 워마드가 실질적으로 피해를 주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워마드는 특히 말만 한 거죠. 워마드로 피해 본 건 여성들이에요. 워마드에서 만든 티를 여성들이 샀잖아요. 금전적인 피해는 여성들이 본 거죠.”

워마드는 2015년 메갈리아 사이트 탄생 이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의견이 대립해 파생된 온라인 사이트이다. 일부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을 혐오하고 과격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논리다.

이런 프레임은 불법촬영 편파수사 반대인 ‘혜화역 집회’로도 이어졌다. 2018년 1차부터 6차까지 한 해 동안 ‘불편한 용기’를 중심으로 수만 명의 여성들이 집회에 모였다.

1차, 2차 집회 때까지만 해도 여러 언론들과 인플로언서들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할 수 있다는 집회 규칙에 여러 갑론을박이 있었으나 언론계에서도 여성 기자와 촬영기사를 투입했고 동의 없는 촬영이 생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3차 집회인 7월 7일 이후 김어준 씨는 자신의 방송을 통해 집회에서 “문재인 재기해”라는 구호를 연창했다며 이는 자살을 뜻하는 것으로 “상대가 대통령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든지 자살하라는 구호가 나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후 혜화역 집화와 ‘워마드’와의 관계설이 불거져 나왔다.

곧바로 워마드 사이트에 대한 기사도 줄이어 보도됐다. 2018년 8월 워마드 사이트에 ‘성체 모독’ 게시글이나, ‘낙태인증’ 게시글이 올라와 페미니스트들이 ‘도가 넘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1년 후 수사 결과 성체 모독 게시글을 작성한 이는 남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낙태인증 게시글은 구글에 검색만 하면 나오는 이미지를 퍼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제대로 바로 고쳐지지 않았고 ‘워마드=페미니스트=심각한 여성우월주의자’라는 부정적 인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MBC신사옥 앞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가 '대전 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 대책위'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대전 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 대책위' 기자회견 ⓒ홍수형 기자

 

"여성은 약자가 아니다"

K-형 백래시의 근거로 자주 쓰이는 또 다른 논조는 여성의 소수자성을 부정하며 "여성들이 젠더 불평등을 강조하는 것이 대결 구도를 야기한다"는 주장이다.

여성신문이 인터뷰한 한 30대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여성 할당제 어떻게 생각하는지?

“군대도 30% 채우면 된다. 농담이고 솔직히 일 잘하시는 분들이 들어오면 30% 잘 사용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여성 할당을 할 필요가 있나. 능력만 보면서 굳이 할당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여성들 차별하고 있다는 확정하고 있는 거 아닐까. 일 잘하면 남성 여성 잘하면 상관없이 고용하면 되지. 차별받고 있기 때문에 여성 할당제를 한다면 괜찮다. 임시적으로 한다면 괜찮다. 여성들 일 잘하는 사람은 진짜 잘한다.”

남녀에 따라 구별되는 일 및 상황이 없다고 생각하나?

“있다. 어느 정도 선입견이 작용한다. 자꾸 갈등적으로 흐르는 건 자제할 필요 있지 않나. 남자들은 남자 편들고, 여자들은 여자 편들고 자꾸 이렇게 되는 건, 성별 관련 없는 이성이 살아 있지 않은 것이다. 남녀 딱 나뉘는 건 충분히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이슈가 성별 중심적으로 나뉘는 것 같다. 이수역 사건 보면 ‘둘 다 말이 틀리니까 모르는 거네’ 가 합리적 판단이다. 성별 문제로 남녀 대결 구도로 가는 게 마음에 안 든다.”

1980년대 미국에서 여성운동에 대한 전방위적인 백래시가 일어날 때 미국은 ‘전통적인’ 남성의 실질임금이 급격히 줄어드는 시기를 겪고 있었다.

공장 폐쇄로 생산직 남성들이 수백만 명씩 일자리에서 쫓겨났고, 이 중 겨우 60%만이 임금이 절반 가까이 적은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갔다.

젊은 베이비 붐 세대 남성들은 소득 저하의 직격탄을 받았는데, 평균적인 30세 이하의 남성들은 10년 전 같은 집단보다 30~35% 더 적은 소득을 받았다.

하락하는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과도한 집값에 대한 불안을 여성들이 야기한 것처럼 치부했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1982년 경제 연설에서 “직업 시장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고, 숙녀들, 뭐 난 아무도 불쾌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일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실업은 부분적으로는 그렇게 큰 침체는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남성들 중 일부는 자신들을 일자리에서 밀어낸 것은 여성들이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팔루디는 “현실 속에서 경제적 고통은 남성이 아닌 여성들에게 지나치게 큰 피해를 강요했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이 계급 양극화 속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저임금 일자리에 내몰렸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도 유사한 백래시 흐름이 진행 중이다. 시사인의 ‘20대 남자 현상’ 여론조사에 따르면, ‘반 페미니즘 정서를 가진 신념형 20대 남자 집단’은 ‘업무 능력이 남성보다 더 뛰어난데도 양성평등이라는 이유로 국가 권력이 개입하여 불공정한 사태를 만든다’고 인식한다. 조사에 따르면 남성 중 반 페미니즘 정체성 집단 규모는 25.9%에 달했다.

이들은 여성이 소수자가 아니라고 인지한다. 교육이나 노동 조건에서 여성이 약자인 시절은 이미 지났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 여성할당제나 여성전용공간 등 정책을 펼치는 것이 역차별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과거 행해졌던 여성 차별은 이해하는데 지금은 여성차별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여성 권리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집단은 이기적인 집단일 수밖에 없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외 24 단체가 '2020년 제4회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임금차별타파의 날'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홍수형기자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임금차별타파의 날' 기자회견 ⓒ홍수형기자

 

"젠더갈등이 심각하다"

'젠더갈등’이라는 프레이밍(Framing)은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 보도부터 부각되기 시작했다.

당시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은 여성혐오”라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대해 일각에서는 “여성혐오가 아니라 정신병에 비롯된 사건”이라는 주장을 다루면서 “남녀 간 갈등이 심화된다”는 보도가 시작됐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2018년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관련해 ‘이영자 현상’이라고 이름 붙였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20대, 영남지역, 자영업자에서 많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후 ‘이영자’현상은 20대 남자만 뜻하는 ‘이남자’로 뜻이 바뀌어 사용된다.

지난 2019년 2월 문재인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20대 여성이 페미니즘 등 집단이기주의 감성으로 무장하고, 남성 혐오 문화가 확산해 20대 남성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내용의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요인 분석 및 대응방안’ 내부 보고서를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을 둘러싼 여러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20대 여성은 개인주의, 페미니즘 등의 가치로 무장한 새로운 ‘집단이기주의’ 감성의 진보집단으로 급부상한 반면, 20대 남성은 경제적 생존권과 실리주의를 우선시하면서 정치적 유동성이 강한 실용주의 집단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또 혜화역 집회 등과 관련해 ‘정치세력화된 여성집단’으로 표현하고, 20대 남성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이익이나 입장을 대변할 정치적 ‘우군’이 없다는 현실 인식이 팽배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주요 갈등 요소로 ‘젠더’ 문제가 부각됐으며 ‘여성혐오’와 ‘남성혐오’ 등 극단적인 대립의 성향을 가진 젊은 여성과 남성이 문제라는 문구가 청와대 보고서에 올랐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위와 같은 주장들은 젠더 불평등한 현실을 직시하기 어렵게 만든다.

여성의 목소리를 줄이는데도 한몫한다. ‘갈등’이 심화되면 사회 분열까지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화합을 위해 갈등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성은 자신의 목소리가 ‘예민한 페미니스트의 과대망상’처럼 들리지 않도록 자신을 계속해서 검열한다.

메갈리아에서 활동했던 반디는 페미니즘 리부트 시절 온라인 속에서 일어난 여성들의 에너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흥분됐어요. 제 생애 그렇게 통쾌한 순간은 처음이었거든요. 메갈의 힘이 어디서 왔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집단 ‘직관’이 만들어냈던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여자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약자로서의’ 직관과 논리성이 결집되는 광경은 장엄하고 흥미로웠어요. 흠집 내기 어려운 에너지였죠. 저는 살아생전 그렇게 외연이 빠르게 확장되는 논리 전개를 처음 봤어요.”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불편한 용기’가 열려 참가자들이&#160;피켓을 들고 피해자의 성별에 따른 차별 없는 동등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여성신문

 

그 당시 여성들의 ‘흠집 내기 어려운 에너지’는 백래시가 극심해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더는 재현하기 어려워졌다.

백래시가 극에 달해 여성의 목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한 시점부터 한국 사회의 여성 자살 사망자 수는 증가하고 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19~2020년 상반기까지 자살 현황’ 에 의하면 2019년 2030 여성 자살 사망자 수는 전해에 비해 6.7% 증가했다.

특히 20대에서 25.5%나 늘었고 30대에서 9.3%, 10대에서 8.8% 증가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자살 사망자 수가 급증한 것으로 보아,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일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20년에 들어서자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20대 여성 자살 사망자 수는 2019년 상반기 207명에서 2020년 상반기 296명으로 43% 급증했다.

20대 여성 자살 사망자 수의 급증을 촉발한 주요 원인은 코로나 블루(Corona Blue)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하는,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다. 그러나 젊은 여성의 자살 증가를 이것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20대 여성의 자살 사망자 수는 급증 추세였기 때문이다.

김봉수 성신여자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20·30대 여성 자살 증가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페미니즘으로 인해 정치적 발언권이 있는 여성은 득세하지만, 취약계층 여성은 더 열악한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라면서 “세월이 흐르고 나면 여성을 위한 줄 알았던 페미니즘이 사실은 여성들을 위기에 빠뜨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성의 자살 증가조차도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처럼 페미니즘을 향한 전 사회적 백래시는 한국 여성들의 문제 제기를 무화시키며 여성의 문제를 ‘몰젠더화’ 시킨다.

그러나 앞선 기사에서 지영이들의 삶을 살펴보았던 것처럼 여성을 향한 폭력은 심각한 상황이고, 남녀 간 임금 격차는 오히려 더 늘어났으며, 코로나19 시국에서 여성은 위기에 더욱 취약하다.

더욱 문제인 것은 젠더갈등을 야기시킨다는 백래시 프레임 속에서 여성들은 여성이기에 더 가혹한 구조적 불평등을 겪고 있으나 이에 대해 문제 제기도 하지 못하는 데 있다.

여성은 약자이면서도 약자가 아니고, 피해를 보면서도 피해를 본다고 말하면 안 되는 이중적 태도를 요구받는다.

“페미니즘은 갈등을 만든다”는 켜켜히 쌓인 한국 백래시의 서사는 여성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 인터랙티브 연결 : https://92kim.womennews.co.kr/

※ 본 기획기사와 인터랙티브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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