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 있어요

만화계 성폭력 사건 피해 생존자가 직접 쓰고 그린 자전적인 만화다. 만화계 내 성폭력을 처음으로 공론화한 사례에 기초한 작품이다.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4년 전인 2014년 발생한 일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작은 아빠의 성폭력, 오빠의 일상적인 폭력은 피해자가 ‘딸’이라서 당연시되고 무시된다. 주인공 '현지'는 숨 막히는 집을 떠나 웹툰 작가 ‘정한섭’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유명 웹툰 만화가이자 만화협회 이사인 권력자 ‘선생님’은 출근 첫날부터 여성 만화가 비하, 가스라이팅, 소위 ‘야한 농담’과 협박을 일삼았다. 불법촬영 영상을 보라고 강요하고, 안마를 요구하거나 속옷 끈을 잡아당기기도 했다. 가슴을 만지고, 툭하면 쇠몽둥이와 자, 빗자루 등으로 때리는 그에게 갖은 피해를 당하면서도 현지는 업계에선 흔한 일인 줄 알고 참아낸다. 온갖 모욕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경찰서에 고소하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말을 듣는다. 성폭력 지원센터에서도 피해 날짜를 특정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궁지에 몰린 주인공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건을 공론화하고, 성폭력 관련 법을 직접 공부하기 시작했다. 형사재판 결과 징역 8개월이 최종 구형됐다. 가해자는 상고했다. 모든 불안과 공포는 피해자의 몫이었다. ‘업계’ 내 2차 가해도 심각했다.

결국 주인공은 사건에서 승리했고,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성폭력 예방 교육 강의와 피해자 상담도 한다. 실제로 작가는 비슷한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이 책을 준비했다고 한다. 여전히 피해자는 ‘이 자리’에 있다. “나, 여기 있어요.” 

다담, 브장/교양인/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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