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델핀 드 비강 『고마운 마음』 (레모출판사)

델핀 드 비강  『고마운 마음』 (2020) ⓒ레모
델핀 드 비강 『고마운 마음』 (2020) ⓒ레모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이 길어지고 있다. 조금은 무력한 채로 새해를 맞이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접촉과 연결이 어려운 시대, 일상적으로 행하던 많은 것들이 불가능해진 지금은 또 다른 연결이 필요한 시대다. 

프랑스 소설가 델핀 드 비강의 『고마운 마음』은 우리 곁에 누가 있는지를 돌아보고, 고마운 마음을 건네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할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일러주는 소설이다. 비강의 인간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 시리즈 중 『충실한 마음』에 이어 두 번째로 출간된 작품이다.

주인공은 1935년생 미셸 셀드, ‘미쉬카’라고 불리는 80대 여성이다. 그의 주변에는 미쉬카가 젊은 시절 돌봤던 여성 ‘마리’, 미쉬카의 실어증 증세를 치료하는 언어치료사 ‘제롬’이 있다.

미쉬카는 혼자서도 거뜬히 할 수 있었던 일을 더 이상 혼자 할 수 없게 된다. 이불을 개는 일부터 산책하러 나가는 일까지, 간단하고 습관적이던 일들이 낯설어진다. 큰 잡지사와 신문사의 교정교열자로 일했던 미쉬카는 운명의 장난처럼 언어도 빠르게 잃어버린다. 말을 더듬고,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잘못된 단어를 발음한다. 이전에 아무렇지 않았던 일들이 점점 더 힘겨워지면서 미쉬카는 겁을 먹고 침울해한다. 밤에는 악몽을 꾼다. 

미쉬카는 평생 홀로 살아왔다. 아무도,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느꼈던 그에게 가족은 없었다. 그런데 수십 년 전 어느 날, 윗집에 이사 온 여자아이 ‘마리’와 그의 젊은 엄마를 만나게 되면서 미쉬카는 최초로 ‘돌봄’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아주 슬퍼 보이던 마리의 엄마는 침대에서 나오지도 않고 종일 이불을 뒤집어쓴 채 문이란 문은 다 닫고 지냈다. 혼자 남겨지곤 하던 마리에게 말을 걸고 점점 가까워지던 미쉬카는 어느새 마리를 보살피는 사람이 된다.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돌본 경험이었다. 

“그게 모든 것을 바꾸더라, 알겠니”라고 할머니가 된 미쉬카는 마리에게 말한다. 마리는 미쉬카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집에 혼자 있는 일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 미쉬카가 요양 병원에 입원하자 주기적으로 그를 방문해 말동무가 돼 준다.

그러나 미쉬카에게 말 거는 일은 쉽지 않다. 뭔가를 끊임없이 잃어버리는 느낌이라고 미쉬카가 어눌한 언어로 간신히 말할 때, 마리는 대답을 머뭇거린다. 곤경에 처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은데 해줄 만한 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을 우리 모두 경험해봤다. 위로 삼아 건넨 말이 오히려 그에게 치욕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마리는 계속 질문한다. 미쉬카의 일상을 확인하고, 안부를 묻기 위해서다. 잘 잤는지, 잘 먹었는지, 내내 방에만 있었는지, 병원 안의 누군가와 친해졌는지, 무력감이 찾아와도 다정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한편, 언어치료사 제롬은 주말에 미쉬카를 찾아와 간단한 언어 훈련을 시켜준다. 미쉬카는 ‘그래요’와 완전히 똑같은 말투로 ‘그냥요’라고 말하는데, 제롬은 이러한 모습에 괴로워하기보다는 웃음을 짓는 사람이다. 

미쉬카 역시 과거 자신을 돌봐 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죽기 전에 꼭 전하고자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던 미쉬카의 부모는 강제수용소에 끌려가기 전, 열 살이던 미쉬카를 니콜과 앙리라는 낯선 부부에게 맡긴다. 부부는 미쉬카를 전쟁이 끝날 때까지 3년 동안 숨겨주고 돌봐줬다. 미쉬카는 마리의 도움을 받아 이들을 찾는 벽보를 붙인다. 그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기억력이 감퇴하고 회한이 늘어가는 노년 여성 미쉬카의 이야기는 소설 속 인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또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다. 항상 그렇지는 않더라도 타인의 도움과 돌봄이 필요한 상황은 언젠가 반드시 온다. 접촉과 연결이 어려운 시대, 새로운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다정한 소설과 함께 새해를 시작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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