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국영방송 SVT 크리스마스 특집 드라마 ‘미라켈(Mirakel)’. ⓒSVT
스웨덴 국영방송 SVT 크리스마스 특집 드라마 ‘미라켈(Mirakel)’. ⓒSVT

 

어머니가 반주하는 피아노 앞에 선 라켈은 산타 루시아를 힘차게 부른다.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숲을 관리하며 집안일을 돕는 소작농 가족도 초대됐다. 대저택 상류층 가정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귀하게 자란 라켈이 부른 노래는 거의 음치 수준에 가까운 소리였지만 딸의 노래가 마치 천사가 부른 것 같다고 박수를 치는 아버지 앞에서 아무도 이견을 달지 못한다. 그저 최고의 가수가 태어났다고 거들 뿐이다. 학교에 갈 나이지만 아버지처럼 농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일찌감치 운명을 받아들이는 소작농 아들 서렌도 박수를 치며 칭찬을 하지만, 생각대로 이야기 하면 일자리를 잃게 될지 모르는 부모님을 생각해 집단 거짓말에 동참하며 독백을 한다. “거짓으로 칭찬하는 것은 정말 싫어.” 라켈과 서렌이 있는 세계는 1920년 스웨덴 사회다.

스웨덴 특집 드라마 ‘미라켈’ 인기

또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는 미라.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소년과 함께 고아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미라는 며칠 후 입양이 예정되어 있어 마음이 무겁다.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미라를 위해 기관보호자와 소년이 안심을 시켜 보려 하지만 큰 위안이 되지 못한다. 보라색 머리 염색을 하고 노래실력이 뛰어난 미라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옥상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벽에서 푸른빛을 발산하는 블랙홀을 발견한다. 호기심으로 팔을 쭉 벋는 순간 다른 시대 블랙홀 앞에 서 있던 라켈과 마음이 바뀌고 정신을 잃는다. 일어나 거울을 본 순간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바뀐 것을 알고 둘은 깜짝 놀란다. 라켈과 미라가 살고 있던 집 건물은 10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를 두고 존재하는 동일한 공간이었다. 두 사람은 시간과 공간이 맞 바뀐 삶을 살며 새롭게 접하는 환경, 생활습관과 문화, 신분과 성별의 차이에 따른 다양한 차이를 경험하며 흥미롭고 유익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지난 12월 1일부터 스웨덴 국영방송 SVT에서 방영된 ‘미라켈(Mirakel·기적)’이라는 제목의 크리스마스 특집 가족드라마 내용의 일부다. 과학자들이 만든 블랙홀이 실수로 한 집에 날아가 생기는 재미있는 공상영화다. 매일 13분씩 방영해 12월 24일 해피엔딩으로 종영된 이 특집드라마는 아이들 뿐 아니라 온 가족이 즐기는 오락물로 최고 인기몰이 중이다. 아침 7시 15분 생방송되고 황금시간대인 저녁 7시45분 재방송을 한 후 국영클라우드 방송에 무료 공개해 언제든지 볼 수 있다.

좌절과 소외 넘어 기쁨과 희망으로

수직적 신분사회에 있다가 미래에 온 라켈은 여성도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어떤 직업이든 꿈꿀 수 있다고 유모차에 타고 있는 딸에게 전하는 한 엄마의 말에 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은 부모의 신분에 따라 좋은 집안에 시집가 한 남자의 부인으로 좋은 엄마의 역할을 꿈꾼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라켈은 미래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가 학교 연말음악회에서 평소처럼 했던 것처럼 산타루시아 노래를 목청껏 부르다가 모든 친구들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면서 자신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지금까지 천사의 목소리라고 칭찬했던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위선과 거짓을 한탄한다.

한 편 과거로 간 미라는 미래에서 쓰던 말투와 행동으로 인해 모든 사람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주인집 딸이 형편없는 노래를 해도 칭찬을 해야 했던 소작농 아들 서렌은 새로운 꿈을 심어주는 미라에게 조금씩 친근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신분이 있는 집의 딸이 소작농의 아들과 만나는 것조차 금지하는 엄마에게 미래에는 여성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도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회라고 이야기 하지만 정신과 의사를 만나 딸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려고 할 뿐이다. 사춘기 소녀의 일시적 반항으로 진단하며 혈압이 오를 때마다 먹으라고 주는 진정제를 건네는 의사의 진단도 웃음을 선사한다. 가족의 화합을 위해 부른 딸의 산타루시아 노래는 반전의 놀라움과 기쁨을 전해 준다. 블랙홀을 통해 과거로 가기 전 큰 화재가 발생해 서렌 가족이 모두 희생되는 것을 알고 있는 미라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불이 나는 집에 달려가 탈출시키는 사건으로 인해 지역신문에 불에서 생명을 구한 영웅적 소녀라고 크게 보도되지만 과거의 역사를 바꾸면서 미래에 엄청난 변화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12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 연말과 연시까지 가족과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가족드라마 ‘미라켈’과 함께 하루에 하나씩 그림을 열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 주는 달력 열기, 어린이들과 함께 만드는 제빵프로그램, 각 정당 당수들이 전하는 크리스마스 메시지, 총리와 왕이 전하는 가족 메시지까지 한 해 마무리는 서로에게 온정을 베풀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화합과 사랑의 메시지가 가정에 전파를 타고 전해진다.

2020년은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한 해를 마감하는 힘든 시간이지만 100년이라는 시간적 차이의 블랙홀을 오가면서 미라와 라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처럼 올해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좌절과 아픔, 소외와 단절을 딛고 기쁨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새해가 되면 좋겠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