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흙이 되기 위해선 언젠가 썩어 사라질 몸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감각을 익혀야 한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소비하게 된 지금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더 줄일 수 있을까. ⓒpixabay
좋은 흙이 되기 위해선 언젠가 썩어 사라질 몸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감각을 익혀야 한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소비하게 된 지금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더 줄일 수 있을까. ⓒpixabay

 

“좋은 흙이 되고 싶어요.”

얼마 전 인터뷰에서 들었던 누군가의 꿈, 희망 사항이라던 이 말이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제로웨이스트 활동을 하거나, 채식 지향과 실천, 토종 씨앗 지키기, 공동체 텃밭 운동, 기후 위기 활동 등 다양한 생태적·전환적 실천을 하는 이들을 인터뷰하다 만나게 된, 어느 답변의 순간이었다.

‘좋은 흙’이 된다는 건 뭘까. 나 역시도 한동안 ‘나무’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다닌 적이 있다. 숲에서, 숲과 가까이 살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바람이었다. 좋은 흙이 된다는 건 그보다 더 현실적인, 실현 가능하고 노력해볼 만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먹고 사는 것, 내 몸을 둘러싼 물질, 나의 존재가 주변과 주고받는 상호영향까지 천천히 생각해보려는 태도. 삶의 속도를 늦춰 다른 이의 삶 역시 안녕하길 바라고 지구 환경을 살펴보는 마음. 무엇이 효율적이고 좋은 것인가에 대해 다른 질문을 던져보려는 시도. 이 과정에서 지금 순간을 다르게 생각하는 관점을 얻고, 당장 한 가지씩이라도 삶에서 실천해나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삶 역시 안녕하길 바라는 마음

좋은 흙이 되기 위해선 언젠가 썩어 사라질 몸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감각을 익혀야 한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소비하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 지금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더 줄일 수 있을까. 당장 내가 먹는 음식부터 좋은 흙이 되게 해볼 순 없을까? 몇 달 전 비닐봉지와 전기 없이 음식물 쓰레기를 흙으로 돌려보내는 ‘비로소 흙’이란 워크숍을 듣고, 여성환경연대 사무실에서 음식물 퇴비함을 만들어 사용 중이다. 매일 요리할 때마다 생기는 음식물 쓰레기를 배양토와 섞어 뒤적여주기를 반복하는 간단한 방법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진 않다. 음식물 쓰레기의 물기가 너무 많아서도 안 되고, 염분이 있다면 물에 한 번 헹궈 줘야 한다. 육류나 생선류는 가로·세로·높이 30cm 정도 크기의 음식물 퇴비함이 감당하기 어려워 기존의 방식대로 버려야 한다.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음식 재료 대부분이 채소라, 잘게 잘라 스티로폼으로 만든 퇴비함에 넣어주고 적당량의 흙을 덮어 섞어주는 과정을 부지런히 해주었다. 두 달이 조금 넘은 지금, 틈틈이 활동가들이 열어보며 섞어주던 음식물 퇴비함 속엔 거짓말처럼 흙이 가득 차 있다. 이름 모를 새싹까지 자라난 모습을 보니 식자재가 ‘쓰레기’가 되는 것과 ‘흙’이 되는 것이 정말 한 끗 차이란 생각이 든다. 요리 후 남은 재료를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넣어 쓰레기로 버릴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흙의 모습이다. 어디 음식뿐일까. 내가 사용하는 물건, 물건을 사기 위해 이용하는 온갖 종류의 서비스,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와 에너지까지. 그저 쓰고 버릴 때는 미처 생각지 못한 다른 모습이 존재할 것이다. 

ⓒ여성환경연대
비닐봉지와 전기 없이 음식물 쓰레기를 흙으로 돌려보내는 ‘비로소 흙’ 워크숍 모습. ⓒ여성환경연대

 

잘 사는(buy) 것이란, 결국 잘 사는(live) 것

몇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지 70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분해 기간은 육지인지 해양인지, 주변 여건에 따라 각기 다르고 끝끝내 썩지 않고 지구에 얼마나 머물러 있을지 제대로 추정하기조차 어렵다. 플라스틱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사용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무심코 일회용으로 수없이 사용하게 된 순간 처치 곤란의 쓰레기가 되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문제가 되어 버렸다. 우리의 삶, 우리 소비의 끝은 어디일지 고민이 필요하다. 좋은 흙이 된다는 건 언젠가 썩어 사라질 내 몸을 인식하는 동시에, 나의 삶에서 썩어 없어지지 않을 쓰레기를 줄이는 고민을 시작해보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은 추수감사절 이후 금요일(2020년 11월27일) 국제적으로는 그 다음 날(2020년 11월28일) 기념하며,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폭발하는 소비를 멈춘 채 내가 하는 소비가 불러일으키는 환경, 노동, 공정거래 등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날이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은 지났지만, 연말 연초 조금 덜 소비하고 오롯이 존재해보는 것은 어떨까. 잘 사는(buy) 것이란, 결국 잘 사는(live) 것이란 말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다가올 연말에는 좀 더 많은 이들이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는, 좋은 흙이 되려는 마음을 떠올리며 한 해를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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