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박사'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시민들. 2020.03.25.  ⓒ뉴시스·여성신문
 n번방 '박사'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시민들. 2020.03.25.  ⓒ뉴시스·여성신문

 

'텔레그램 성착취' 주범 조주빈(25)에게 1심에서 징역 40년형이 선고됐다. 공범 5인에게도 7~15년형이 선고됐다. 검찰이 요청한 무기징역보다는 낮은 형량이지만,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사법부가 마침내 디지털 성범죄를 강력범죄로 인식했다. 특히 1심 재판부는 성범죄 사건에 처음으로 ‘범죄단체조직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지난 8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범죄에 최대 29년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양형기준을 최종 확정했다. 지난 9월에는 국회가 20대 국회 임기 마지막 본회의에서 불법 촬영물을 저장만 해도 처벌하는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n번방 사건의 심각성을 알려 국회와 사법부를 바꾼 일등공신은 익명의 여성들이다. 지난해 9월 20대 여성 2명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이 탐사보도 공모전에 낸 기사로 ‘n번방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 해 11월 한겨레가 또 다시 보도했으나 관심이 없자 여성들이 모여 익명단체 ‘리셋(ReSET)’을 만들고 공론화에 나섰다. 이들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린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은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법을 바꾸는데 역할을 했다. 또 다른 익명모임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eNd’도 가해자에 대한 강력 처벌을 요구하며 시위와 ‘재판 방청 연대’를 진행해왔다.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N번방 강력처벌 촉구 시위 'eNd'가 '대한민국 정의란 없다'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들도 참여하는 포스트잇 붙이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eNd’ 회원들이 지난 7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에 대한 미국 송환 불허 판결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날 참석한 시민들이 각자의  주장을 적은 메모지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홍수형 기자

 

이 익명의 여성들이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 준 덕분에 법·제도가 바뀌고 ‘디지털 성착취는 범죄’라는 인식도 뿌리내리고 있다. 더디지만 큰 변화다. 여성들은 조주빈 판결이 이례적 판결로만 남아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여전히 수많은 공범, 또 다른 가해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피해자에 대한 지원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여성·시민단체로 구성된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성착취를 발본색원하고, 가해자들이 죗값을 받을 수 있게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피해자 회복을 꾀할 수 있게 사회 인식을 갖추어나가는 일은 결코 짧은 호흡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며 “텔레그램 성착취 끝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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