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관심 갖기에는 '먹고 살기 바빴다'는 여성들…
정치권이 주목 않는 이 여성들의 삶의 좌표 찾아야”

기자회견에서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해결과 성평등한 대학을 위한 대학가 공동입법요구안’ 관련 질의서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하고있다. ⓒ홍수형 기자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해결을 위한 2020 총선-국회 대학가 공동대응'이 6월 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내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근절을 위해 공동입법요구안 서명운동을 설명하고 있다.ⓒ홍수형 기자

지난 칼럼을 쓴 뒤의 일이다. “여성들에게 참 가혹하던 일주일 동안 너는 어떤 마음으로 그 역겨움을 버텨냈어?”라던 내 문장에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당시 마음이 무거워서 어떤 기사도 보지 못했는데 이런 일을 하는 저야말로 힘들지 않았냐고. 친구의 말에 나는 “아 오늘도 야근이구나 싶었지”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내 너털웃음 안에는 씁쓸한 기억들이 있다. 스무 살 때 예식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10대 아르바이트생을 상대로 한 30대 호텔 직원들의 성추행과 성희롱을 목격했다. 출근 첫날이었는데도 나는 어째 이 상황이 오래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불의였기에 한참 망설이다가 그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물었지만 이런 태도가 그에게는 오만함은 아닐지 걱정됐다. 그리고 내가 그 이상의 시도를 하면 그를 일터에서 불리하게 만들까봐 그와 몇 마디만 주고받았다. 다음날 여성학과 교수를 찾아가 여성 노동권을 이야기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그날의 망설임과 주저함은 내게 오래 부채감으로 남았다.

이후 내가 대학 내 여성주의 학회장으로 있던 날 다급히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다른 대학 대학원생이라며 본인을 소개했고 교수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 피해를 겪고 있으나 신고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한참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흐느낌이 오갔고, 20살의 나보다는 차분하게 그에게 여러 정보를 전했다. 학내 총여학생회나 인권센터 등은 물론이고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단체를 연계해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노출이 되면 본인이 위험해질 것이기에 이렇게 다른 학교 학생인 내게 연락한 것이라 했다. 분명 20살 때보다 할 수 있는 말이 많아졌지만 막막함은 여전했다.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착잡함을 게우려 여러 일을 하다가 이제는 여성의당에 오게 됐다. 정당에서 일하면 누구를 만나서든 정치 얘기를 할 법도 하겠다. 그러나 내가 요즘 대화를 청하는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도, 정치 전문가도 아니다. 정당, 선출직, 보궐선거 등의 단어가 마냥 낯설고 정치에 관심을 갖기에는 '나 하나 먹고 살기 바빴다'고 답하는 여성들이다. 그들과 대화할 때 나는 20살의 주저함과 24살의 막막함을 다시금 들춘다. 무엇 때문에 여성들이 정치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지가 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성의당으로 '유리천장'만이 아니라 '유리바닥'까지 들어내려한다. 정치학자 요시다 도오루는 “정치란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면서 서로를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를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인간을 찾는 것이다”라고 했다. 나는 그의 문장에서 ‘우리’ 안에 들어갈 수조차 없던 여성들을 떠올리고, 정치권에서 주목하지 않는 이 여성들의 삶의 좌표를 찾는다. 이건 의석 확보라는 정당의 명확한 목표에 비해 너무 돌아가는 일일까? 바꾸어 생각하면 정치에서 여성들의 좌표란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찾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던 북두칠성과 같기도 하다. 그러니 누가 먼저 북두칠성을 발견할지는 순항을 위한 항로를 결정할 핵심일 것이다.

이지원 여성의당 공동대표.
이지원 여성의당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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