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성착취 ‘로리대장태범’ 배씨
2심서도 징역 최장 10년 판결

‘제2의 n번방’으로 불리는 디지털 성폭력 사건 항소심 선고일인 지난 12월 9일 시민들과 단체 활동가들이 춘천지방법원 앞에서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정윤경 춘천여성민우회 대표
‘제2의 n번방’으로 불리는 디지털 성폭력 사건 항소심 선고일인 지난 12월 9일 시민들과 단체 활동가들이 법정을 찾았다. ⓒ정윤경 춘천여성민우회 대표

 

지난 12월 9일 춘천지방법원에서 ‘제2의 n번방’이라고 불리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 항소심이 열렸다. ‘디지털성폭력대응 강원미투행동연대’는 이날 재판에 앞서 춘천지방법원 앞에서 피켓 시위와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가 성인지 감수성 있는 판결로 가해자를 끝까지 엄벌하라”고 촉구했다.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탄원서도 미리 제출한 상태였다.

‘프로젝트 n’으로도 알려진 이 사건은 ‘로리대장태범’ 배씨(19)의 주도하에 조직적으로 진행된 ‘텔레그램 집단 성착취·성폭력 사건’이다. ‘피해자 개인정보를 캐내기 위한 피싱 사이트 제작·운영→ 범행 표적인 피해자에게 해당 사이트 링크 전송→ 개인정보 탈취→ 협박 및 추가 성폭력→ 성착취물 제작·공유·유포’ 등이 주범과 공범의 역할 분담과 상호 협조로 이뤄졌다. 집단 디지털 성범죄의 전형이지만 이들이 기소된 것은 지난 2019년 12월. 아직 ‘n번방 사건’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전이라 수사 단계에서 신상 공개를 피해갔고, 형사재판 진행 여부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혐의를 일부 부인하던 배씨는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자 공소사실 모두를 인정하며 읍소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혐의 모두를 인정하고 ‘어린 나이’와 ‘전과 없음’을 내세우는 방식은 그간 무수히 봐온 가해자들의 전략이었다. 이들은 SNS에 ‘고액 아르바이트를 구해준다’는 게시글을 올린 뒤 여중생을 유인해 범행을 저질렀다. 특히 배씨는 SNS를 통해 ‘노예 작업할 개발자, 팀원을 구한다’는 등 공범을 모집하는 공지 글을 남겨서 범죄를 공모했다. 

‘제2의 n번방’으로 불리는 디지털 성폭력 사건 항소심 선고일인 지난 12월 9일 시민들과 단체 활동가들은 춘천지방법원 앞에서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정윤경 춘천여성민우회 대표
‘제2의 n번방’으로 불리는 디지털 성폭력 사건 항소심 선고일인 지난 12월 9일 시민들과 단체 활동가들은 춘천지방법원 앞에서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정윤경 춘천여성민우회 대표

 

항소심 선고가 열리는 춘천지방법원 103호 법정 앞에는 본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많은 사람이 입구에 줄 서 있었다. 기자들은 가해자들이 탄 호송차를 기다렸고,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온 사람들을 보니 행여나 재판장에 자리가 모자랄까 걱정됐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를 하고 앉았지만 법정은 사람들로 꽉 찼고, 뒤쪽으로는 20여명의 방청객들이 서서라도 판결을 지켜보려고 진지한 모습으로 있었다. 가해자들이 법정에 들어오고 판사가 주문을 읽어 내려갈 때 법정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배씨에 대한 판결은 ‘텔레그램 집단 성착취·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된 뒤에 내려진 1심 판결만큼이나 그 과정과 결과가 모두 중요했다. ‘n번방은 (솜방망이) 판결을 먹고 자란다’는 비판에 직면한 사법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됐다. 2심 판결 또한 이어질 다른 재판에 의미 있는 비교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본 재판에 들어가기 전 법원 관계자는 재판장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며 놀라는 듯했다. 재판부를 비롯해 이 사안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법원 관계자들도 모두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행여나 1심보다 낮은 형량이 나오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며 지켜봤던 방청객들은 1심과 같은 형량이 나온 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에 앞서 재판부가 판결문을 조목조목 읽어 내려가며 ‘가해자들이 역할을 분담해서 조직적으로 범죄가 이루어진 것’을 인정한 점, ‘갈수록 교묘해지고 집요해지는 성 착취물 범죄에서 아동·청소년을 두텁게 보호해야 할 사회적 필요성’을 짚어준 점 또한 지난 1심과는 다른 점이었다.

피해자를 응원하면서 가해자를 압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가 법정 모니터링이다. 지난 3월부터 n번방 사건으로 재판 모니터링을 시작한 춘천여성민우회는 춘천시 시정소식지인 ‘봄내’에 모니터링단 모집 광고를 냈고, 그것을 보고 지원해준 시민들과 디지털성폭력대응 강원미투행동연대 활동가들,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지 지켜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와 연대하는 여성들로 항상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디지털성폭력대응 강원미투행동연대는 피해자들이 나설 수 없는 상황을 악용해 유리한 판결을 끌어내려는 가해자들을 끝까지 지켜보고 기록하며, 피해자와 연대할 것이다. 가해자들이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만 그동안 숨죽여야 했던 피해자들도 자신의 일상을 되찾아 갈 것이기 때문이다.

연대자들은 ‘초범이다, 어리다, 반성문을 작성했다’는 것들이 가해자들의 죄를 덜어주는 이유로 이어지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더 많은 연대자를 기다리고 있고 만나고 싶다.

n번방, 이제 시작이다!!! 

정윤경 춘천여성민우회 대표.
정윤경 춘천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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