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책타래

 

베이비 팜

 

‘골든 오크스 농장’이라고 불리는 가상의 시설을 배경으로 주요 여성 인물 4인의 관점에 따라 번갈아 진행되는 이야기를 통해 계층, 성별, 인종 문제를 풍성하게 그려낸 소설이자 조앤 라모스의 데뷔작이다. ‘베이비 팜’은 말 그대로 ‘아기 농장’이다. 이 ‘농장’은 대리모로 선발된 젊은 여성들이 부유층의 수정란을 착상하는 시술을 받은 후 임산부로서 온갖 편의를 제공받으며 머무는 호화 리조트이자, 9개월간 규칙을 따르고 무사히 아이를 출산할 경우 거액의 보너스를 제공하는 가상의 대리모 업체다. 대리모들은 사실상 24시간 지속되는 관리와 감시 속에서 살아간다. 

소설은 대리모 이슈라는 논쟁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동시에 다양한 계층과 인종이 얽히고설킨 자본주의 미국의 무자비한 속성을 생생히 드러낸다. 여성의 몸에 대한 결정권 문제, 대리모의 정당성을 다루는 이 소설은 지극히 시의적이고 현실적인 작품이다. 4명의 인물들이 각자 숨기고 있는 진실을 소설이 전개되며 하나씩 추적해나가고 긴박감을 조성한다는 점도 재미 포인트다. 

작가는 6살에 미국에 이민 온 필리핀계 미국인이다. 작가 스스로도 필리핀인 유모를 고용한 적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활권에 속한 필리핀 여성 돌봄 노동자들, 다른 아시아 국가 출신 여성들과 친해졌다. 작가는 그들이 “무언가 나은 것을 바라면서 매일 희생하는 모습을, 그런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장애물들을” 보게 된다. 돌봄 노동자로 일하는 아시아계 여성들의 실제 삶을 토대로 구성된 소설이기에 가상의 플롯 위에 현실이 덧입혀질 수밖에 없다. 허구이지만, 많은 부분 섬뜩한 “사실”이기도 하다.

조앤 라모스/김희용 옮김/창비/1만6800원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우아하고 날카롭게, 글로 만든 세계에 이름을 남긴 여성 작가 10인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한가득 펼쳐진다.

20세기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을 중심으로 지성의 세계에서 펜을 검처럼 휘두른 그녀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도러시 파커, 리베카 웨스트, 한나 아렌트, 메리 매카시, 수전 손택, 폴린 케일, 존 디디언, 노라 에프런, 레나타 애들러, 재닛 맬컴.

이 작가들을 엮어 일종의 평전을 펴낸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 미셸 딘은 이들을 한데 묶는 키워드를 ‘예리함(sharp)’으로 설정했다.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벤야민처럼 성만 들어도 누구인지 아는 데 비해 여성 작가들은 여전히 성과 이름을 모두 호명해야만 인식된다는 점을 비틀어 ‘파커’ ‘웨스트’처럼 이들의 성만으로 챕터를 구성했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예리한 문장으로 미국 지성계를 사로잡은 여성 10인의 발자취와 그 빛나는 재능을 무대 위에 올린다. 이들이 동시대를 통과하며 문학, 미학, 정치, 학문의 장 안에서 서로 얼마나 연결돼 있었는지, 어떻게 교류했고 경쟁했는지도 풍성하게 드러낸다. 이 밀도 높은 책을 읽다 보면 이들이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중요한 작품을 남겼기에 이들에 대한 비평이 활발해야 한다는 저자의 의지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미셸 딘/김승욱 옮김/마티/2만2000원

 

 

 

 

 

 

몸과 말

 

아픈 몸에 대한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바디 에세이스트, 홍수영의 질병 서사 에세이다. 15년 전, 당시 14살이던 홍수영에게 ‘디스토니아(근육긴장이상증)’라는 근육병이 예기치 못하게 찾아왔다. 그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제어할 수 없는 근육의 경련과 발성 장애로 인해 말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고, 목이 자꾸 구부러져 앞을 응시하는 일조차 어려운 때도 있었다. 질병으로 인한 몸의 변화 이후 관계의 불균형과 소통의 단절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저자의 ‘느린 말’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저자의 병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고통이 찾아오는 것은 한순간이다. 

병증이 보이지 않기에 편견과 의심은 더욱 잦았다. 경증과 중증을 나누며 아픈 몸을 끊임없이 위축시키는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 말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받았던 숱한 차별이 몸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이 책은 그러한 편견과 거부, 단절의 경험 안에서 ‘침묵’하며 빚어낸 통증의 기록이다. 또한 질병과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향해 기도하는 마음의 기록이기도 하다. 실제로 홍수영은 기도를 통해 말을 한다. 기도로써 고통을 발화하고, 기도로써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아픈 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섣부른 편견으로부터 우리가 ‘함께’ 벗어날 수 있음을 담담히 일러주는 성찰의 산물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무관해지지 않으려는 마음.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 상대방의 아픔을 다 이해할 수 없을지언정 그 아픔에 무심해지지 않겠다는 다짐. 그보다 더 이 사회에 절실한 게 있을까.” 

홍수영/허클베리북스/1만5000원

 

 

 

 

시간과 물에 대하여

 

2019년 아이슬란드 출간 이후 27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며 세계적인 화제가 된 기후 변화 논픽션이다. 동시대 아이슬란드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환경 운동가인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은 현재 지구가 당면한 가장 긴급한 문제인 기후 변화를 보다 직관적으로 전달하고자, 과학의 언어를 시의 언어로 번역하기로 했다. 과학자들의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논픽션으로 담아내기 위한 10년 동안 과학자들과의 인터뷰, 달라이 라마와의 대담 등을 진행했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의적인 내용 위에 아름다운 서사적 언어가 더해지면서 이 책은 기후 위기에 대한 더없이 아름답고도 호소력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아이슬란드는 빙하의 나라이자,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급격히 줄어든 빙하 앞에서 2019년 8월 ‘빙하 장례식’이 열리는 등 기후 위기를 시시각각 감각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아직도 기후변화가 멀거나 낯설게 여겨진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복합적인 영향에 관해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그 주제를 강렬하게 체험하게끔 쓰였기 때문이다. 북유럽 신화, 인도 신화, 달라이 라마와 히말라야 산맥 이야기, 죽은 빙하 이야기 등 이 책에는 다양한 풍경들이, 무엇보다 시간과 물에 대한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노승영 옮김/북하우스/1만7000원

 

 

 

 

 

 

 

페미니스트 비긴스

 

‘배트맨 비긴스’ 같은 히어로물 시리즈의 서막 같은 제목이 독특하다. 『페미니스트 비긴스』는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라고 일컬어지는 2010년대 중반 이전부터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살아온 여성 7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판이 시끄러워지기 전부터, 페미니스트로 호명하는 일에 더 많은 검열이 필요했던 시기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 균열을 내온 이들에 주목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여성 이슈에 관해 다루는 시간적 범위는 지난 30여 년을 아우른다. 책에 담긴 페미니스트들의 연령대도 60대부터 20대까지 다양하고, 어떤 의제에 대해서는 입장도 다를 수 있다. 다만 이들의 공통점은 일상에 공기처럼 스며든 성차별적인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왔다는 것,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몸으로 부딪쳐 연대와 투쟁을 실천해왔다는 점이다. 

잡지 《이프》를 창간한 기자이자 60대 페미니스트 유숙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활동가 이효린, 대학 내 총여학생회를 시작으로 대전 지역 여성단체 활동가로 반성매매 운동을 해온 영페미니스트 박이경수, 대학입시를 거부하고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양지혜, 청년 국회의원을 거쳐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로 일하는 장하나,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 호명되며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고은영, 뿌리 깊은 가족신화를 해체하는 글을 쓴 저자이자 고위직 여성 공무원 조주은. 페미니스트이자 생애사 작가인 이은하가 진행하고 엮은 7인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페미니스트 모먼트’를 다시금 체험할 수 있다. 이름과 직업 앞에 ‘페미니스트’가 붙는 이들의 생애를 통해 넓고 다양한 의제들과 고민들, 또 무엇보다 앞선 이들이 닦아둔 페미니즘의 생생한 역사를 감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은하/오월의봄/1만5000원

 

 

 

 

어떤 엄마 저런 사람

 

“워킹맘이라고 불리지만 워킹맘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싱글맘”의 만화 에세이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출간된 책이다.

이혼 후 부모님과 함께 아이를 키우는 효재는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만화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작업하는 프리랜서 작가이자 그림 교육자로, 육아 생활 웹툰 ‘그날의 히요’를 통해 알려져 있다. 표지의 귀여운 그림체로 그려진 코믹한 만화와 함께 30대 ‘싱글맘’의 유쾌한 일상과 성장 일기가 들어 있다. 젊은 여성이자 싱글맘으로 맞닥뜨릴 편견에 굴하지 않고 “‘보통의 선택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방식의 삶이란 따로 없다”는 말을 건넨다.

우리 모두 나름의 사정, 마음속 상처 하나쯤 품고 살아가지 않느냐고, 오히려 이혼 후의 삶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래서인지 소제목에 ‘어떤’ ‘저런’이 많이 들어가 있다. 저렇게 살아도, 어떻게 살아도 다 자연스럽고 괜찮으니 눈치 보지 말자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효재/서울문화사/1만1500원

 

 

 

 

 

 

 

 

 

가난의 문법

 

“이제는 가난의 문법이 바뀌었다. 도시의 가난이란 설비도 갖춰지지 않은 누추한 주거지나 길 위에서 잠드는 비루한 외양의 사람들로만 비추어지지 않는다.” (28쪽)

도시사회학 연구자인 소준철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여성 도시 노인의 가난 문제를 현장에서 연구했다. 그의 연구 대상은 길거리에서 재활용품과 폐지, 고물 등을 수집하는 여성 노인들이다. 우리 시대 가난의 상징적 표상인 이들은 어떠한 경로를 거쳐 가난에 이르렀나? 가난의 문법, 가난의 구조는 개인의 노력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들에 이어 저자는 묻는다. 젊은 날에 충분히 저축을 못 한 것, 노후 대비를 못 한 것, 자식이 있어도 부모에게 생활비를 댈 능력이 없는 것은 과연 노인들의 잘못인가? 

사회보장제도에서 여러 이유로 탈각된 노인들, 그중에서도 생애 경로와 평균수명 등의 차이로 인해 여성 노인의 빈곤 문제는 더 길고 더 심각하다. 소준철은 가상의 인물 ‘윤영자(실제로 1945년 출생 등록 이름 중 가장 흔했던 여성 이름)’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마치 소설처럼 그녀의 하루를 챕터 삼아 논의를 전개해 간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현장 조사를 통해 얻은 자료를 조합해 만든 현실의 인물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 우리가 마주하지 않으려 하는 이 두 가지 두려운 현실에 관해 저자는 치밀한 분석을 해낸다. 제도의 빈틈과 사회적 인식의 사각지대, 도시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 노인을 위한 기초소득 문제, 그리고 존엄하게 늙어갈 권리라는 묵직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초상을 대면하게 될 것이다.

소준철/푸른숲/1만6000원

 

 

 

천장이 높은 식당

 

“용기란 누군가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다소 낭만적으로도 느껴지는 제목과 달리, 경력 단절 여성들의 분투와 여성 노동자들의 비극, 사내 비리와 불의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다룬다. 이정연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자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다.

주인공은 파견직 영양사이자 워킹맘인 ‘승연.’ 전 영양사 ‘신유라’와의 미묘한 관계를 통해 동료의 고통을 외면하는 씁쓸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시스템이 노동자에게 가하는 불합리한 압력으로 인해 동료의 비극을 회피하도록 만든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는 자녀 양육과 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삶, 성폭력 사실을 폭로했다가 도리어 쫓겨나는 모습 등 여성으로서 맞닥뜨리게 되는 숱한 현실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러나 ‘을’들의 반격과 연대는 불가능하지 않다. 신샛별 문학평론가는 이 책을 추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의로운 선택을 위축시키는 시스템의 견고함을 직시하면서도 그것을 뚫고 나오는 공감의 힘과 진보의 가능성을 믿는 이 소설을 우리도 믿어보기로 하자.” 

이정연/한겨레출판/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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