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상회'서 키운 '개미정당'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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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민주화 염원으로 겨울마저 뜨거웠던 87년 12월. 집시법 위반으로 함께 구속된 16명 중 유일한 여자면서 가장 어렸던 스무살의 여대생이 있었다. 새까만 얼굴에 청바지 차림의 겁없는 그를 친구들은 <태백산맥>의 '소화'라고 불렀다.

16년이 흐른 지금 서른여섯살이 된 그는 정치 개혁의 최일선에 서 있다. 개혁국민정당 집행위원이자 국민통합개혁신당추진위원회(개혁신당) 여성대표추진위원인 오정례씨가 그 주인공. 오 위원은 내년 총선에 전북 전주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오 위원이 정치와 만나게 된 것은 90년 민중당 학생전국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91년에 민중당 전주시지구당 총무부장도 역임했던 그지만 90년 동구권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정치 활동은 '일단' 접었다.

“정치는 학생운동의 연장이었죠. 사회주의가 끝장나는 모습은 너무 큰 충격이었기 때문에 모든 희망을 잃었어요.” 92년 도피하듯 선배이자 운동 동지였던 남편 김형철(41)씨와 결혼, 생계를 위해 가게 운영을 시작했다. 특이하게도 그 가게 이름은 '개미상회'였다.

개미상회는 그가 사회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거점이나 다름없다. “가게 벽에 붙어 있는 여성의전화 상담원 모집 공고를 봤어요. 사회운동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던 제게 그 공고는 하나의 빛이었죠.” 상담원 교육을 받은 뒤 전북 여성의전화에서 사회활동을 재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개미상회를 운영하면서 지방의원에 출마할 동기도 얻었다.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통해 지역에 대한 여러 소식을 들었어요. 그런 시간들이 계속되면서 정치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되살아났죠.”

'사나운'의원에서 '상냥한'의원으로

95년 지방선거. 오 위원은 28살에 9명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전주시의원에 당선됐다. 최연소 당선이었다. “두려움이 없었고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넘쳤어요.” 남편이 기획한 선거 전략도 대성공이었다. “제가 사는 동네는 맞벌이 부부가 많거든요. 그래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남편과 단둘이 선거운동을 했어요.”

용기백배했던 기상은 의정활동에 여실히 드러났다. “절망 열심히 했어요. 낮에는 의정활동, 밤에는 슈퍼 주인으로 살면서 말이죠.” 오 위원은 당시 학생운동가 티를 벗지 못해 '폭로'하는 일에 주력한 나머지 “쟤한테 걸리면 끝장난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하지만 쓰레기 종량제 문제가 한창이던 90년대 후반, 지역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오 위원은 '환경'에 눈떴다. 전북대에서 환경대학원을 수료했고 지금도 전북수질보전대책위원, 전북환경분쟁조정위원 등을 맡고 있다.

98년 전주시의원에 다시 뽑힌 오 위원은 '사나운' 의원에서 '상냥한' 의원으로 변신했다. “공무원들과 많이 대화하고 개선될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맞췄어요. 나름대로 이미지 관리 기술을 배운 것이죠.”

16대 총선은 오 위원이 '정치'를 제대로 알게 된 기회였다. “전주시의원을 하던 중 전주시 덕진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어요. 지방의원으로 활동하며 절실히 느낀 '절름발이 지방자치'를 깨기 위해 중앙정치 속으로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한 거죠.”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두터웠다. 그가 속한 지구당의 위원장인 정동영 의원도 버거운 상대였다. 결국 낙선했지만 그에겐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지역사회가 여전히 '엘리트' 국회의원을 원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여성할당 내공으로 지킬 것

오 위원은 다시 내공을 키우기 시작했다. 김희선 의원의 특별보좌역을 맡으며 중앙정치를 간접 경험했고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후보추대 전북본부 여성특보였다. 정치에서 배제된 여성 정치인을 양성하기 위해 전북여성정치발전센터 설립에도 한몫 했다. 그리고 지금 개혁당과 개혁신당에서 몇 안 되는 여성 가운데 하나로 일하고 있다.

오 위원은 지방분권에 관심이 많다. “지역 사람들도 서울에 살면서 고향이라는 것만 내세우는 지역구 출마자들에게 거부감이 많아요.” 36년간 전북 토박이로 살아온 오 위원은 이런 지역 정서가 힘이 된다. 그가 '지방대' 출신이라는 것을 되레 '홍보문구'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신당이 창당됐을 때 개혁당이 간직하고 있던 양성평등 기조가 제대로 지켜질지 불확실한 면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신당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관철되도록 목숨걸고 뛸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남편마저 만류했던 '신당 참여'를 끈질기게 지켜온 오 위원은 '책임감'으로 어려운 파고를 견뎌내고 있다. “유권자들은 새로운 정치를 원하고 있어요. 지방대 출신에 엘리트도 아닌 제가 뛸 수 있는 건 국민들이 갖고 있는 그 희망을 믿기 때문이죠.”

▲67년 전북생 ▲91년 전북대 졸업 ▲95년 전북여성의전화 대외협력부장 ▲95·98년 전주시의원(2선) ▲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치위원 ▲2000년 국회의원 출마(무소속) ▲2002년 노무현후보추대 전북본부 여성특보 ▲2002년 전북여성정치연대 대표 ▲2003년 전북여성정치발전센터 이사, 개혁국민정당 집행위원.

혜원 기자nanca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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