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효과 없는 ‘출산장려’ 대신
개인 ‘삶의 질 제고’ 초점
성평등노동권, 아동기본권
성·재생산건강 보장 포함

한국이 출산율 OECD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국내 저출산율 문제가 심각하다. 대안으로 제시된 '싱글세'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부가 저출산 대책의 목표로 ‘출산 장려’ 대신 ‘삶의 질 제고’로 잡았다. 출산율 제고를 정책 목표로 삼고 지난 14년 동안 총 185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합계출산율이 오히려 0명대로 곤두박질치자 정부는 이제서야 정책 방향을 틀었다. ⓒ여성신문 

 

정부가 저출산(저출생) 대책의 목표로 ‘출산 장려’ 대신 ‘삶의 질 제고’로 잡았다. 출산율 제고를 정책 목표로 삼고 지난 14년 동안 총 185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합계출산율이 오히려 0명대로 곤두박질치자 정부는 이제서야 정책 방향을 틀었다.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11월 26일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 시안을 발표했다. 기본계획에는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에 대응한 정부의 중·장기 정책 목표와 방향이 담긴다.

정부는 지난 2015년 말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2020년 합계출산율을 1.50명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합계출산율: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 5년이 지난 2020년 3분기 합계출산율은 0.82명. 목표 달성 실패다. 합계출산율 0명대는 여성이 평생 아이를 1명도 낳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대로라면 연간 합계출산율도 2018년(0.98명), 2019년(0.92명)에 이어 또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1~3차 계획은 결혼과 출산을 막는 장애물 해소에 충분하지 않았고 당사자인 여성·청년 목소리를 배제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국가가 출산을 주도하며, 여성의 몸을 도구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내년 시행되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은 확 달라졌다. ‘아이를 낳으면 삶의 질을 보장해준다’는 정책 구상을 버리고 ‘개인의 삶의 질이 보장돼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식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목표다. 박선영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성평등노동분과장(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1월 26일 서울 용산구 동자아트홀에서 열린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시안 공청회'에서 패러다임 전환에 대해 “결혼과 출산이 남녀에게 생애 경력의 장애가 되거나 한 사람의 부담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차 기본계획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 조성’이라는 비전 아래 △모두가 누리는 워라밸 권리 실현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 보장 △아동돌봄의 사회적 책임 강화 △아동기본권의 사회적 보장 △생애 전반 성·재생산건강 보장 등 구체적인 목표 5가지를 제시했다. 4차 계획은 저출산을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닌 ‘현상’으로 인식했다는 점, 저출산 주요 원인으로 ‘성차별적 노동시장’을 명시했다는 점, 성평등노동권과 성·재생산건강 보장을 추진계획에 새롭게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1~3차 기본계획보다 진일보했다.

특히 ‘생애 전반 성·재생산 건강 보장’은 여성을 출산의 주체로 존중하고, 안전한 피임과 임신 중지, 건강한 임신과 출산까지 여성의 자율적이고 평등한 성·재생산 권리를 보장하자는 의미가 담겼다. 기본계획에는 건강보험 급여에 포함해 피임과 임신 중지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포괄적 성·재생산 건강보장을 위한 모자보건법 등 관련 법제 개정, 아동부터 청년기까지 생애주기에 따른 성·재생산 건강 예방 서비스 제공, 수요자 중심의 안전한 난임지원 강화 등이 포함됐다.

김새롬 시민건강연구소 젠더와건강연구센터장은 공청회에서 “그간 출산과 양육 비용만 다뤘던 기본계획이 성·재생산 건강 보장이라는 내용을 담았다는 것을 두고 ‘획기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출산을 예비하는 몸을 보호하는 가임기 중심적 관심에서, 생애 전반에서 성과 재생산 건강을 보장해야 한다는 생애주기적 관점으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한순간에 이뤄지기는 어렵기 때문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며 “임신 출산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성과 재생산이라는 건강과 권리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공론화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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