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정치인사이드] 피해자 절대주의라는 유니콘
[W정치인사이드] 피해자 절대주의라는 유니콘
  • 신지예 젠더폴리틱스 연구소장
  • 승인 2020.12.08 19:45
  • 수정 2020-12-09 1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해자 절대주의에 피해본다고 주장하는 서울시 전 비서실장
정작 2차 가해에 피해를 입고 사이버 불링을 당하는 것은 피해자
20년 전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에서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나아갔나

‘여자는 오로지 종의 번식을 위해서만 창조되었다.’
여성혐오적인 말을 많이 했던 것으로 유명한 독일 근대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논리학’과 ‘토론술’을 구별했다.
'논리학'은 이성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진리의 추구를 궁극적인 목표로 하지만, '토론술'은 의지와 감정의 문제이고 논쟁에서 승리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그가 사망한 뒤 미발표로 남겨 놓은 원고들은 추려져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이라는 소책자로 출간되었다.

보편적 진리보다 실질적인 논쟁을 기준으로 이기는 토론술의 방법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내용만 보면 황당한 면이 많다.

1. 확대해석하라
2. 동음동형이의어를 사용하라
3. 상대방의 구체적인 주장을 절대화하고 보편화하라
4. 당신의 결론을 상대방이 미리 예측하지 못하게 하라
5. 거짓된 전제들을 사용하라
6. 은폐된 순환 논증을 사용하라
7. 질문 공세를 통해 상대방의 항복을 얻어 내라
8.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어라
9. 상대에게 중구난방식의 질문을 던져라
10. 역발상으로 상대방의 의표를 찔러라
11. 낱낱이 사실들에 대한 상대방의 시인을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시인으로 간주하라
12. 자신의 주장을 펴는 데 유리한 비유를 재빨리 선택하라
13. 상반되는 두 가지 명제를 동시에 제시하여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라
14. 뻔뻔스런 태도를 취하라
15. 안개 작전을 사용하라
16. 상대의 견해를 역이용하라
17. 미묘한 차이를 이용하여 방어하라
18. 논쟁의 진행을 방해하고 논의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라
19. 논쟁의 사안을 일반화하여 그 부분을 공격하라
20. 서둘러 결론을 이끌어 내라
21. 상대방의 궤변에는 궤변으로 맞서라
22. 상대가 억지를 쓴다고 큰소리로 외쳐라
23. 말싸움을 걸어 상대로 하여금 무리한 말을 하게 하라
24. 거짓 추론과 왜곡을 통해 억지 결론을 끌어내라
25. 반증 사례를 찾아서 단칼에 끝내라
26. 상대방의 논거를 뒤집어라
27. 상대가 화를 내면 바로 거기에 약점이 있는 것이다
28. 상대방이 아니라 청중을 설득하라
29. 상대방에게 질 것 같으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라
30. 이성이 아닌 권위에 호소하라
31. 당신의 말은 형편없는 내 이해력을 넘어서는군요
32. 상대방의 주장을 증오의 범주 속에 넣어라
33. 그것은 이론상으로는 옳지만 실제로는 거짓이다
34. 한번 걸려들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35. 동기를 통해 상대방의 의지에 호소하라
36. 의미 없는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 내라
37. 상대가 스스로 불리한 증거를 대면 그쪽을 공격하라
38. 상대가 너무나 우월하면 인신공격을 감행하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방조 혐의로 고발된 전 비서실장 중 1명인 김주명 서울시 평생교육진흥원장이 피고발인 조사를 마친 후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방조 혐의로 고발된 전 비서실장 중 1명인 김주명 서울시 평생교육진흥원장이 피고발인 조사를 마친 후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현재 대한민국에서 쇼펜하우어의 토론술을 그 누구보다 기가 막히게 잘 쓰는 이들이 있다.
바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했던 김주명 전 비서실장(2017~2018년), 오성규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2018~2020년)이다.

두 전 비서실장은 지난 2일과 3일 국가인권위에 박 전 시장 성추행 조사와 관련한 의견서를 제출하고 그것을 공개했다. 12월 중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의 인권위 직권 조사 결과 발표가 예상되자, 피해자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왜곡하는 것으로 보인다.

 

16. 상대의 견해를 역이용하라
36. 의미 없는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 내라

김주명, 오성규 전 비서실장들은 본인들이 ‘피해자 절대주의’에 의해 인권침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권력차이로 인해 가해자의 보복 등이 쉬운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에서 피해자의 진술과 관점을 중시하는 것을 뜻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본 따 ‘피해자 절대주의’라는 근본 없는 개념을 들이밀고 있다. 나는 차라리 피해자 중심주의가 실제하면 좋겠다. 그러면 피해자들이 흘리는 피눈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테니 말이다.

 

14. 뻔뻔스런 태도를 취하라

두 비서실장은 그들이 모셨던 박 전 시장에 대한 예단과 편견이 인권위 조사 과정에 전제되고 있어 부당하다 계속해 주장하고 있다. 한 사람의 말에 의존해 고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과정 자체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며 거꾸로 피해자의 진실을 검증하려고 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는 피해 입증을 강제 받고 있고, 심지어 ‘피해 호소인’으로 호명되며 2차 가해에 노출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자신들의 인권이 훼손되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접하고 나니 성추행, 성폭력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서울시청 내 조직 문화가 어땠을지 상상된다.

 

38. 상대가 너무나 우월하면 인신공격을 감행하라

지난 10월 2천 명 정도의 회원이 모여있는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 밴드 등에 피해자 실명이 공개되는 사이버불링 범죄가 이뤄졌다. 고발뉴스, 여러 유튜브 매체 등은 피해자를 의심하는 논조의 주장과 함께 한 행사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피해자가 찍힌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해당 정보나 자료들은 서울시 내부를 통하지 않고는 외부로 공개되기 어려운데도 말이다. 이런 인신공격은 피해자가 더 어떤 주장도 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아버리는 행위다.

 

ⓒ뉴시스·여성신문
신정휴 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뉴시스·여성신문

1993년 서울대 교수 신정휴의 성희롱 사건과 부당 해임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가 있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신교수는  "우 씨의 평소 근무태도가 성실치 못해 재임용에서 제외”했고, 피해자라고 칭하는 이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해당학과 일부 대학원생도 반박하는 대자보를 붙여 반박하는 행렬에 동참했다. 피해자가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 홍익대를 졸업하고 나서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유급 조교직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평소에 지각하는 등 근무에 태만했던 내용을 들며 재임용 탈락 과정의 근거를 들었다. 

가해자와 사적, 공적인 관계로 얽혀있는 인물들은 피해자 자체를 공격함으로써 피해주장을 무력화시켰다. 서울대 총장이자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했던 정운찬은 총리 후보자 시절 한명숙 당시 여가부 장관을 만나는 자리에서 “재계약 탈락에 앙심을 품은 피해자에 의해 억울한 사람이 매장된 사건이었고, 피해자를 지원한 여성운동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억울하게 매장됐다고 한 신정휴는 2008년 정년퇴직했다.  

벌써 20년이 지났다. 당시 사건과 가해자 측이 보이는 모습과 박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을 둘러싸고 집권여당 권력자들과 시장 측근들이 보이는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6년이 걸린 법정 공방 끝에 신정휴가 패소했고, 한국에서도 ‘성희롱’이 실정법에 도입됐지만, 피해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2차 가해는 변하지 않았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방조 혐의로 고발된 전 비서실장 중 1명인 오성규 전 비서실장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에서 조사를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방조 혐의로 고발된 전 비서실장 중 1명인 오성규 전 비서실장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에서 조사를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고소인 측은 박 전 시장이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4년 동안 추행을 했고, 이를 주변 동료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렸으나 조직적인 방조에 의해 무시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은 신빙성 있는 사실관계를 통해 밝혀진 바 없고, 나아가 있지도 않은 것에 대한 방조를 주장한 것은 서울시와 박 전 시장과 함께했던 사람들에 대한 무고이자 정치적 음해”라고 오성규 전 비서실장은 주장한다. 그러나 피해자는 자신이 입은 피해 사실을 이미 20명이 넘는 주변 직원들에게 토로했고,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들은 사실이 있다고 진술한 직원들도 있다. 피해자는 김재련 변호사를 만나기 전 자신의 휴대전화를 포렌식 하면서 올해 2월 11일 자신이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받은 피해를 상세히 적은 문자를 서울시 직원에게 전송한 바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오성규, 김주명 실장, 두 사람은 일관되게 피해자의 피해는 없었다. 고소인이 없는 사실을 가지고 자신들을 모함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인권위가 직권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사에 충실히 임하기보다는 언론에 계속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사건의 진실보다는 대중을 설득해 진실을 만들어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피해자가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속옷 사진과 ‘너도 나 같은 사진 보내봐’라는 문자를 받고 두려움에 떨 때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피해자 구제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피해자가 마라톤 동참, 속옷 정리 등 부당한 사적 노무를 강요받고 있을 때, 공무원 지침을 지키며 상사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처벌을 피하기 위해 나는 몰랐다고 하는 것을 넘어 성폭력 자체가 없었고, 피해자가 거짓을 주장하고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명백한 피해자에 대한 가해행위이고 사회의 공적 윤리를 파괴하는 폐륜적 행위이다. 

오성규씨와 김주명씨는 자신들이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비서실장으로서 박 시장의 위력 성폭력으로부터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것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공적 인간의 도리다. 이마저도 할 마음의 능력이 따르지 못하면 침묵하며 인권위 조사 결과를 기다려라. 그것이 당신들의 의식주를 세금으로 지원했던 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