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더 분노했으면 좋겠어요” 한국 첫 여성 록 컴필레이션 탄생
“우리가 더 분노했으면 좋겠어요” 한국 첫 여성 록 컴필레이션 탄생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0.12.03 11:18
  • 수정 2020-12-03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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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여성 록 컴필레이션
‘We, Do It Together’ 음반 발매
최근 온라인 공연도 성료
기획·참여한 뮤지션 김민정 씨
“이 음반이 해방의 실마리가 되길”
지난 11월 28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생기스튜디오에서 열린 ‘2020 We We We Festa’ 공연 현장. ⓒ김민정씨 제공
지난 11월 28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생기스튜디오에서 열린 ‘2020 WeWeWe Festa’ 공연 현장. ⓒ김민정씨 제공

국내 최초의 여성 록 컴필레이션 ‘We, Do It Together’ 음반이 최근 발매됐다. 스스로 창작하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록 음악가 12팀의 목소리를 담았다. 황보령, 향니, 티어파크, 카코포니, 천미지, 에고펑션에러, 애리, 아마도이자람밴드, 아디오스 오디오, 빌리카터,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다브다가 참여했다.

판을 바꾸는 ‘조력자’가 되고픈 남성들이 들어봐야 할 음반이며, 인디 음악계 내 성차별·성폭력에 지친 팬들에게 전하는 연대와 위로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추진해온 에고펑션에러 멤버 김민정씨는 “홍대엔 ‘탈덕’ 유발자들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안전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진정성을 갖고 훌륭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고 알리고 싶었다”며 “우리의 말하기가 다른 여성들에게 가 닿아서 ‘더 또렷하고 용감한 목소리를 내도 괜찮다’는 격려가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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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록 컴필레이션 ‘We, Do It Together’ ⓒWeWeWe 기획단
여성 록 컴필레이션 ‘We, Do It Together’ ⓒWeWeWe 기획단
지난 11월 28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생기스튜디오에서 열린 ‘2020 WeWeWe Festa’ 공연 현장. ⓒ김민정씨 제공
지난 11월 28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생기스튜디오에서 열린 ‘2020 WeWeWe Festa’ 공연 현장. ⓒ김민정씨 제공

코로나 19 시국이지만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며 온라인 콘서트도 열었다. ‘2020 WeWeWe Festa’ 공연은 지난달 28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생기스튜디오에서 최소 인원만 참여한 가운데 개최됐다. 빌리카터, 아디오스오디오, 애리, 천미지, 카코포니, 황보령이 강렬하고 매력적인 무대를 펼쳤다. 유튜브 생중계도 진행돼 음악 팬들과 동료 음악가들이 응원과 지지를 보냈다. WeWeWe 기획단이 주최·주관하고 여성가족부, 버터나이트크루, 서울문화재단, 서울라이브가 후원했다.

이번 프로젝트 기획자이자 참여 음악가인 민정씨가 여성신문에 이번 프로젝트 소감을 보내왔다. 전문을 소개한다.

 

김민규 일렉트릭뮤즈 대표, 김민정 에고펑션에러 보컬, 김지원 빌리카터 보컬 ⓒ홍수형 기자
(왼쪽부터) 김민규 일렉트릭뮤즈 대표, 김민정 에고펑션에러 보컬, 김지원 빌리카터 보컬 ⓒ홍수형 기자

지난 주 토요일 ‘2020 We We We Festa’ 공연이 마무리됐을 때 모라 씨가 등 떠밀어 준 기운으로 무대에 올라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 제작 프로젝트를 ‘We, Do It Together’로 지은 이유를 얘기했어요. 인디 씬, 특히나 라이브 씬은 ‘Do It Yourself’가 미덕인 곳이고, 모두들 참 고단히도 D.I.Y하며 살고 있지요. 그렇게 잘 지내다가 가끔 뜻이 필요한 일에 우리가 모여 ‘We, Do It Together’를 하자는 마음으로 프로젝트 이름을 정했다고 말했습니다.

‘25년 동안 왜 여성 록 뮤지션 컴필레이션 앨범은 없었을까? 왜 우리에겐 그들을 기념하는 앨범이 없나?’ 계보를 찾기 어려운 것이 이상했습니다. 성추행과 성폭력에 얼룩져 홍대를 떠나겠다는 분들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 속이 쓰렸습니다. 바이러스 못지않게 우리의 안위를 위협하는 게 젠더 문제인데, 이에 대해서 자주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록 뮤지션들이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시작으로, 여성 음악가를 뮤즈나 여신 같은 프레임으로만 바라보거나, 대상화로 소비해 버리는 것들에서 벗어나, 2020년대의 목소리를 주체적으로 내는 록 음악가를 기억할 수 있는 앨범이 필요하다,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8월 중 ‘분노’를 주제로 신곡을 창작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각자의 향후 작업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고, 마스터링이 끝난 10월 중순에는 12팀이 소화한 여러 형태의 ‘분노’를 들을 수 있었어요. 목메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하고, 속이 시원해지기도, 위로를 얻기도 했지만, 아직 우리에게 용기가 더욱 필요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디 씬의 여성 뮤지션들에게도 직설적이고 즉각적인 분노는 아직 쉽지 않은 걸까’ 싶다가도 ‘그래도 분노하고, 저항할 것에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는 만들어져야 한다. 아마도 이제 시작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막연한 표현일 수 있지만 저는 분위기가 곧 문화라고 생각해요. 우리 각자가 활동하고 있는 지금 여기 인디 씬에서 성폭력에 대해 관대하지 말아야 할 분위기, 음악가의 커리어를 성적 역할로 판단하고 한계를 짓거나 유리천장을 만들지 말아야 할 분위기, 성 정체성을 차별하지 말아야 할 분위기, 다름을 인정할 분위기, 개성을 존중한 분위기, 독창성을 맘껏 실험하고 독려할 수 있는 분위기, 안전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길 바라요. 속도는 더딜지라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한국 사회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혹 자신에게 부당한 일이 일어났을 때 크게 목소리를 내고 저항하는 것을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컴필레이션에 수록곡 ‘소녀’를 쓴 카코포니 씨는 지난 11월 28일 WeWeWe Festa2020에서 곡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폭력을 당한 입장에서는 분노로 감정이 이어지지 않고, 항상 자책으로 먼저 이어지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그런 소녀들이 분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어요. 무척 공감했습니다. 왜 여성들은 사회의 일원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낯설고 어색할까요. 여성을 가부장제의 2등 시민으로 길러냈었던 20세기 교육과, 크게 진보하지 못한 21세기의 현재 상황이 여전히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억압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번 음반 수록곡들은 저와 많이 닮았어요. 날 미워하지 말아달라 괴롭히지 말아달라 버티기 위해 낮춰야만 했던 나(카코포니-소녀), 불쑥 찾아오는 불안과 우울에 두려워하던 나(천미지- I've Never Invited Her), 생각할수록 분노할 일들도 슬픔으로 직결돼 자꾸만 죽고 싶지만, 사실은 내 옆의 너와 잘 살고 싶던 나(애리- 나는 깜빡), 대체 사랑이란 게 뭔지 괴로운 기분이 멈추지 않았던 (황보령-What is Love) 수많은 밤들과 싸웠던 나였습니다(무궁화 - 다브다).

허무함과 분노가 더 이상 나를 갉아 먹지 못하게 명랑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나였고(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사적인 복수), 애쓸수록 깨어지고 부서지는 마음들을 다독여주고 손잡아주는 누군가가 있었고(아마도이자람밴드- Good Night), 숨을 뱉으라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말하고(아디오스오디오 - 숨), “이상적인 여성”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가는 방향으로 같이 걸어주겠다는 동료가 있었기에(티어파크-Roll Model), 안전한 관계 안에서라도 솔직하게 말하기 위해 노력했어요(향니-솔직하게 말해줘요). 연대 안에서 훈련된 목소리로 왜 가해자에게 관대하냐며 말도 안 되는 변명하지 말라 꼬집어 말할 수 있게 됐고(에고펑션에러-판), 권력에 무참히 살해된 어린 소녀의 죽음에 즉각적으로 분노하고(빌리카터-Hell) 반복되면 안 될 일들이 무엇인지, 왜 바꿀 수 없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둘러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손잡아주고 같이 걷겠다는 분위기가 있어 길러진 모습이었어요.

이 음반이 부디 2020년을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해방의 실마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 프로젝트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도움 주신 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한 분 한 분에게 감사함을 잊지 않고 또 다른 창작으로, 기획으로 이어가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 음반과 연대를 많은 사랑으로 길러주시길 다시 한번 부탁드려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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