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착취’ 조주빈 징역 40년]
재판부 “‘박사방’ 범죄집단 맞다”
성착취물 제작·배포 공범들 7~15년형
7일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결정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조주빈이 지난 3월 25일 검찰로 송치되는 가운데 종로경찰서 앞에서 텔레그램 성착취범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여성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조주빈이 지난 3월 25일 검찰로 송치되는 가운데 종로경찰서 앞에서 텔레그램 성착취범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여성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텔레그램 성착취’ 가해자 조주빈(25)에게 1심에서 징역 40년형이 선고됐다. 검찰이 요청한 무기징역보다는 낮은 형량이지만, 당초 법조계가 예상한 15년형보다는 중형이다. 그동안 성착취물 제작·유포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던 재판부가 디지털 성범죄를 강력범죄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의미 있다. 다만 “이례적 판결”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는 요구가 뜨겁다. 디지털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강화하고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돕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이현우)는 11월 26일 아동을 포함해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를 비롯해 범죄단체조직, 유사강간, 강제추행 등 14개 혐의로 구속기소된 조주빈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범죄수익금 약 1억604만원 추징과 신상정보 공개·고지 1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30년 등도 함께 명했다. 재판부는 “사안의 중대성, 피해자 수와 피해 정도, 범행으로 인한 사회적 해악 등을 고려할 때 엄히 처벌하고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조주빈 사건 1심 재판부가 40년형을 선고한 이유는 조주빈이 운영한 ‘박사방’을 형법 114조에서 말하는 ‘범죄조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범죄단체로 인정되면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한 경우 그 목적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할 수 있어, 공범까지 무기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다. 다만 재판부는 공범들에게 징역 7~15년을 각각 선고했다.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여성신문·뉴시스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여성신문·뉴시스

 

성범죄 징역형 선고 26.1% 그쳐
디지털 성범죄 48.9%는 집행유예

이번 판결은 “이례적”일 정도로 그동안 성범죄에 대한 형량은 매우 낮았다.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는 판결이 나오자 SNS에 “사법부가 조주빈과 공범들의 형량을 모두 감형했다. 죄에 맞지 않은 선고 결과”라고 비판했다. eNd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공론화하는데 앞장선 단체로 꾸준히 가해자 재판 감시와 방청연대를 해왔다.

청소년성보호법 11조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법정에서는 평균 3년2개월형이 선고됐을 뿐이다(여성가족부 ‘2017년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추세와 동향분석 결과’).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8년 경찰은 아동 성착취물 20여만개를 유통한 손정우를 국제 공조로 어렵게 붙잡았다. 손정우는 사이트 홈페이지에 ‘성인 음란물은 올리지 마시오’라는 공지를 게시하고, 새 영상을 올리는 회원들에게 포인트를 지급하는 등 아동 성착취 영상 제작을 유도·독려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내려진 실형은 고작 징역 1년6개월이었고, 손정우는 지난 4월27일 형기를 마쳤다.

성인 대상 성범죄까지 넓혀봐도 솜방망이 처벌은 그대로다. 법무부 ‘2020 성범죄백서’를 보면 2008~2018년 10년간 성범죄 판결에서 징역형이 선고된 비율은 26.1%에 그쳤다. 그 중 67.3%는 1년 이상 6년 미만의 가벼운 형이 선고됐다.

디지털 성범죄로 범죄 양상을 좁히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디지털성범죄 1심 재판 결과를 보면, 집행유예 비율은 2015년 27.7%에서 올해 6월 기준 48.9%로 21.2%P나 높아졌다.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ReSET)과 ‘n번방’을 세상에 처음 알린 ‘추적단 불꽃’은 시민 7509명 대상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응답자의 99.8%가 디지털 성범죄 처벌 수준이 솜방망이라는데 동의했고, 98.8%는 ‘사법부가 디지털 성범죄를 진지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들은 설문조사 결과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전달했다.

양형위는 오는 7일 오후 2시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을 최종 의결할 예정이다. 이번에 양형 기준을 강화해 특정 재판부가 유별난 양형을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강화된 양형으로 공식화해야 한다.

앞서 지난 9월15일 양형위가 발표한 기준안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의 기본 양형을 징역 5년~9년형으로 상향했고,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영리 목적으로 여러 차례 판매한 범죄에 대해서는 최대 징역 27년형까지 선고가 가능하도록 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2차례 이상 조직적으로 제작한 범죄에 최대 징역 29년3개월을 선고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26일 오전 조주빈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신문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26일 오전 조주빈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신문

 

활동가·변호사 “40년형 의미 있지만
양형 기준 높여 형량 강화해야”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쏟아지는 국민적인 관심 때문에 재판부가 눈치를 봤다가, 관성대로 ‘n번방이 먹고 자랐던’ (부당한) 판결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여전하다”며 “성착취 근간을 찾고, 발본색원하고, 가해자들이 죗값을 받을 수 있게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대위는 또 “조주빈에 대한 선고는 n명의 ‘n번방’ 가해자 중 하나에 대한 선고에 불과하다”며 다른 성착취 가해자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효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는 “특히 유포와 소지에는 아직도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 범죄는 유포하지 않아서, 유포 범죄는 영리 목적이 없어서, 영상제작 범죄는 얼굴을 또렷하게 만든 것이 아니어서 감경해주고 있다”며 “피해자 관점으로 양형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변호를 맡은 조은호 변호사는 “더 이상 피해자의 눈물과 절규를 사회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며 “수사기관과 법원은 박사방 사건 외에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다른 디지털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지위와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피해자 존중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입장문을 통해 “오늘 선고가 끝이 아님을 안다. 공범들 사건은 진행 중이고, 몇몇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공범들에게도 엄벌을 내려주고 이런 사회악적인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본보기를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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