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광주지법, 전 씨에 징역8월·집유 2년 선고
“계엄군 헬기 사격” 첫 인정 판결
오월단체 “형량 너무 낮다” 반발도

전두환씨가 5·18 헬기 사격을 목격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재판을 받은 뒤 30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0.11.30. ⓒ뉴시스·여성신문
11월 30일 전두환 씨가 5·18 헬기 사격을 목격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후 광주지방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4년 만에 또 유죄 판결을 받았다. 5·18 헬기 사격 목격자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실제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음을 인정한 첫 판결이라 의미가 깊다. ‘5·18 당시 발포는 무장 폭도에 맞선 자기 방어’였다는 신군부의 주장은 격파됐다.

광주 오월단체들은 “형량이 너무 낮다”고 반발하면서도 국가 공권력의 민간인 살상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으로 가는 길에 한 기점이 될 이번 판결을 의미 있게 평가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5·18 성폭력 실태 조사와 진상 규명도 신속하게 추진하라는 목소리도 높다. 

사자명예훼손죄로 기소된 전두환 씨의 1심 재판 선고일인 11월 30일 안성례 전 오월어머니집 이사장이 '살인죄 처벌' 이라는 문구를 목에 걸고 광주지법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사자명예훼손죄로 기소된 전두환 씨의 1심 재판 선고일인 11월 30일 안성례 전 오월어머니집 이사장이 '살인죄 처벌' 이라는 문구를 목에 걸고 광주지법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5·18 헬기 사격 목격자 “거짓말쟁이” 비난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 씨

1심 “헬기 사격 알고도 자기 정당성 확보하려 해” 유죄 판결

전 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에서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향한 헬기 사격을 했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인 광주지법 형사8단독(김정훈 부장판사) 재판부는 지난 11월 30일 전 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앞서 전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재판의 쟁점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실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를 가리는 것이었다. 이날 재판부는 목격자 진술, 군 관련 문서들과 국과수 감정결과 등에 비추어 봤을 때 “1980년 5월 21일 500엠디(MD) 군용헬기가 사격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미 많은 시민들의 증언과 조사를 통해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드러났다. 검찰은 이번 재판에서 당시 목격자 진술 외에도 광주 전일빌딩 10층에서 발견된 탄흔에 대한 국립 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 조사 결과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전 씨 측은 끝까지 부인했다. 검찰과 전 씨 측은 올해 10월까지 열린 공판 과정에서 증인 36명을 소환하며 법정 공방을 벌였다.

재판부는 “5·18 당시 지위, 행위 등을 종합하면 전씨가 헬기 사격이 있었음을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고록을 작성했다”며 전 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또 “피고인은 재판 내내 한 차례도 성찰하거나 사과하지도 않아 특별사면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며 “5·18에 가장 책임 있는 피고인이 고통받아온 많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 씨는 지난 재판 때처럼 이날도 법정에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였고, 광주 법원으로 출발하기 전에는 서울 자택 앞에 몰려든 시민들에게 “말조심해, 이놈아”라고 욕설을 했다. 지난해에도 지인들과 강원도에서 골프를 치거나 12·12 군사반란 가담자들과 함께 서울 강남의 고급 중식당에서 요리를 즐기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돼 분노를 샀다.

앞서 전씨는 반란(내란)수괴·내란·내란목적살인 등 혐의로 기소돼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으나,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광주 헬기 사격 여부도 당시 주목받았지만, 검찰 조사 결과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해 이 혐의로는 처벌하지 못했다.

30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전두환 씨의 사자명예훼손혐의 재판이 열린 가운데 5·18 단체 회원들이 구속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30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전두환 씨의 사자명예훼손혐의 재판이 열린 가운데 5·18 단체 회원들이 구속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1월 30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전두환 씨의 사자명예훼손혐의 재판이 열린 가운데 5·18부상자회 회원들이 전 씨 측 차량에 계란을 던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1월 30일 오후 광주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전두환 씨의 사자명예훼손혐의 재판이 열린 가운데 5·18부상자회 회원들이 전 씨 측 차량에 계란을 던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광주 오월단체들 “전두환 형량 너무 낮아”

“헬기 사격 인정 환영...추후 엄중 판결 기대”

5·18 성폭력 진상 규명도 신속히 추진해야

전 씨의 법정구속을 요구하던 5·18 희생자 유가족들은 집행유예 소식에 크게 반발했다. 고소인이자 조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는 재판 후 광주지법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 씨가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역사 왜곡에 대한 반성과 사죄 없는 태도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형량이 너무 낮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조 신부의 법률대리인인 김정호 변호사도 이에 동의하면서도 “이번 재판을 통해 80년 5월 21일과 27일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역사가 인정됐다는 데 의미가 있고 사필귀정의 판결을 내린 재판부를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박재만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는 “검찰에서 항소하겠지만 앞으로 엄중한 판결이 있기를 기대한다”며 “전씨를 법정구속하라는 국민적 열망을 재판부에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5·18 성폭력 진상 규명도 신속하게 조사하라는 목소리도 높다. 2018년 10월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행 피해 총 17건과 연행·구금된 피해자와 일반 시민에 대한 성추행과 성고문 등 여성 인권침해 행위를 다수 발견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11월 정경두 당시 국방부 장관은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에 대해 사과하며 “무고한 여성분들께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상처와 고통을 드린 점에 대해 정부와 군을 대표하여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지난 5월 출범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가해 부대로 지목된 관련자 등 추가 조사 계획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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