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 3월 검거 이후 247일 만에 첫 판결
‘범죄단체 조직죄’ 최대 무기징역 구형 가능
검찰, 무기징역 구형… 법원은 40년형 선고
공대위 “성착취 끝장은 이제 시작일 뿐”
​​​​​​​eNd “죄에 맞지 않은 선고 결과에 분노”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26일 오전 조주빈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신문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26일 오전 조주빈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신문

 

미성년자를 포함해 여성 70여명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하고 돈을 받고 판매·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가 박사방을 ‘범죄조직’으로 인정하면서 이번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40년형이 선고될 수 있었으나, 여성들은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 보다 낮은 형량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이현우)는 26일 범죄단체조직 및 아동·청소년성보호법(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주빈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1억600만원의 추징도 명했다. 또 12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 신상정보를 공개·고지하고, 10년간 취업을 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조주빈이 1심에서 받은 징역 40년은 법원이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 등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 판결로 보인다. 청소년성보호법 11조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법정에서는 평균 3년2개월형이 선고돼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 씨 ⓒ뉴시스<br>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 ⓒ뉴시스·여성신문 

 

손정우 1년6개월 VS 조주빈 40년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가 대표적인 ‘솜방망이 처벌’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18년 아동 성착취물 20여만개를 유통한 손정우를 국제 공조로 붙잡았다. 손정우는 사이트 홈페이지에 ‘성인 음란물은 올리지 마시오’라는 공지를 게시하고, 새 영상을 올리는 회원들에게 포인트를 지급하는 등 성착취 영상 제작을 유도·독려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내려진 실형은 고작 징역 1년6개월이었고, 손정우는 지난 4월27일 형기를 마쳤다.

조주빈 사건 1심 재판부가 40년형을 선고한 이유는 조주빈이 운영한 박사방을 형법 114조에서 말하는 ‘범죄조직’으로 인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범죄단체로 인정되면 사형, 무기 또는 장기 4년 이상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한 경우 그 목적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벌할 수 있어, 공범까지 무기징역으로 처벌할 수 있다.

재판부는 “박사방은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배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닉네임’으로만 특정 가능한 집단이며, 다수 구성원들이 그 범행을 목적으로만 구성·가담한 조직으로 판단된다”며 형법 114조의 범죄단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구성원들은 성 착취 영상물 제작, 박사방 관리 홍보, 가상화폐 수익 전달 등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계속해서 조주빈을 추종하고 조주빈의 지시에 따라왔다”고 판시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끝장, 이제 시작일 뿐이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26일 오전 조주빈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신문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26일 오전 조주빈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성신문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이날 선고 직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외쳤다.

권효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활동가는 이 자리에서 “전보다 높은 형량이 내려지고 있는 상황을 보며 (이전에도) 검찰과 재판부가 성폭력 근절 의지를 보였다면 충분히 이러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는 사실에 씁쓸하기도, 분노스럽기도 하다”며 “하지만 여성들의 목소리가 분명한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린 더 나아간 판결을 원한다”면서 “이전과 달라진 판결을 마냥 환영할 수 없는 상황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하며 “가해자 중심의 양형기준 대신 피해자의 현실을 반영하는 양형기준과 적극적인 재판부의 해석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이날 발언문을 통해 “피해자들은 조주빈만이 아니라 공범들, 아직도 잡히지 않은 중간 가담자, 유포하고 다운로드 받은 가해자들을 계속 맞닥뜨리고 있다”며 “디지털 성범죄가 플랫폼마다 특정 패턴과 특성을 가지고 이뤄지는 만큼 정부는 해당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온라인에서 나타나는 피해물에 대한 모든 텍스트, 댓글, 링크까지 차단할 수 있도록 빠른 삭제를 계속 이끌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은호 변호사(민변 여성인권위원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의 모든 법원이 디지털 성폭력 사건을 대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기를 원한다”며 “앞으로 있을 디지털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공대위는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에서 “공대위를 비롯한 시민들은 결코 이것이 끝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면서 “피해와 가해를 법과 제도 안으로 불러들이는 노력은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죄에 맞지 않은 선고 결과에 분노”

‘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eNd)’는 1심 판결에 대해 SNS에 “사법부가 조주빈과 공범들의 형량을 모두 감형했다”며 “죄에 맞지 않은 선고 결과”라고 비판했다. eNd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공론화하는데 앞장선 단체로 꾸준히 가해자 재판 감시와 방청연대를 해왔다.

eNd는 앞서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가해자들이 강력 처벌을 받을 때까지 절대로 끝나게 두지 않을 것”이라며 가해자 전원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리라고 촉구했다.

단체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난 3월 조주빈이 검거된 날로부터 벌써 247일이나 지났지만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았다”며 “대한민국 온 사회가 분노에 들끓었던 3월의 일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고요해졌고 가해자들은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들을 쫓아 전국 곳곳 재판을 감시하며 매 순간 크게 분노했다”며 “많은 가해자들이 명백한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를 받거나 구형의 절반도 미치지 않는 판결을 받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했다.

단체는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것을 언급하면서 “사법부가 그들을 조금이라도 감형해 준다면,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할 의지가 조금도 없는 것”이라며 “사법부가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과 같은 주범이라는 지탄을 외면하지 않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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