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천 징역 5년6월 확정
사기 혐의 등만 인정...성폭력 혐의는 ‘무죄’
피해자 호소에도 대법원마저 원심 판결 유지
여성·시민단체 “‘윤중천 성범죄 무죄’ 판결한 대법원에 분노”
“성인지 감수성 잃지 말라더니 스스로를 부정”
피해자 “김 전 차관·윤씨 다시 고소...꼭 책임 묻겠다”

'김학의, 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사법정의 실현을 위한 시민 공동행동이 2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중천 대법원 선고(징역 5년6개월)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0.11.26. ⓒ뉴시스·여성신문
'김학의, 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사법정의 실현을 위한 시민 공동행동이 26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중천에 대한 대법원 선고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성폭행, 성추행, 불법촬영과 유포 협박, 폭행.... 2006년부터 약 2년간 가해자의 통제 아래 벌어진 일들이다. 피해자의 용감한 고발로 세상에 알려진 ‘별장 성폭력’ 사건은, 그러나 14년이 흐르도록 아무도 처벌받지 않은 채로 끝났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함께 ‘별장 성폭력’ 사건의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59)이 징역을 살게 됐다. 사기 혐의 등만 인정된 결과다. 성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끝내 ‘무죄’가 선고됐다.

이번 사건을 두고 끊임없이 제기된 게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와 부실·조작 수사 논란, 법원의 ‘판단 회피’ 논란이다. 피해자와 연대해온 시민단체들의 모임 ‘김학의, 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사법정의 실현을 위한 시민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수사기관의 ‘그들은 반드시 처벌될 것이다’라는 말을 믿고 용기를 내 성폭력 피해를 진술했던 피해자에게 오랜 시간 걸려 내 놓은 대법원의 답은 한국 사회에 사법 정의가 있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갖게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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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천 징역 5년6월 확정
사기 혐의 등만 인정...성폭력 혐의는 ‘무죄’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6일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윤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5년6개월과 14억8700여만원의 추징금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건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해자 A씨는 2006년 7월 지인과 아는 교수 등에 의해 윤씨 소유의 별장에 가게 됐고,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김 전 차관과 윤 씨 등으로부터 약물·폭행·협박을 수반한 성폭행과 불법촬영 등을 겪었다.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이 이후 공개되며 파장이 일었다.

2013년 경찰은 “영상 속 인물은 김 전 차관”이라고 발표하고, 피해자 30여 명의 진술을 토대로 김 전 차관과 윤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특수강간죄 등을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김 전 차관과 윤씨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영상 속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듬해 피해자가 다시 김 전 차관과 윤씨를 고소했으나 검찰은 또 무혐의로 처분했다. 법원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피해자의 재정 신청마저 기각했다.

2018년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 발족 후 이 사건 재조사가 시작됐다. 김 전 차관과 윤씨는 지난해 5월 구속됐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은 ‘뇌물죄’로, 윤씨는 ‘성범죄’와 사기, 알선수재 등 ‘비리’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여성·시민단체들(공동행동)은 “엄연히 ‘사람’인 피해자가 존재하는 성폭력 사건을 ‘액수 불상’의 ‘뇌물’죄로 둔갑시켜 기소한 김학의 사건”, “수년간의 극악한 성폭력 중 단지 몇 건만을 추려 기소한 윤중천 사건 모두 애초에 검찰 조직의 면피용 기소”라고 비판했다.

(자세한 내용은 ▶'성범죄' 빠진 '김학의·윤중천 사건' 7년 어떻게 흘렀나 www.womennews.co.kr/news/203633)

23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故 장자연씨 사건’ 등 권력층에 의한 반인륜적인 범죄, 은폐·조작 자행한 검찰 규탄 기자회견이 열려 참가자들이 검찰수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해 5월 22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故 장자연씨 사건’ 등 권력층에 의한 반인륜적인 범죄, 은폐·조작 자행한 검찰 규탄 기자회견이 열려 참가자들이 검찰수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2심 모두 사기 혐의 등만 인정
성범죄는 공소시효 지났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
“윤중천, 권력으로 인생 무너뜨려...엄하게 판결해달라”
피해자 호소에도 대법원마저 원심 판결 유지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1심과 2심 모두 윤씨의 사기 혐의 등만 인정했고, 성폭행·무고 등 혐의는 무죄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에 의문을 품고 “영상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고 피해자가 주장하는 영상의 실제 존재 여부에 관해 의심이 든다” “협박을 당했는데 지인에게 전화해 교제 사실을 알려 진술이 모순된다는 의문이 든다” 등 판결을 내렸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 및 공소기각을 선고했다. “가해자 인생의 서사를 판결문에 기술해 공감을 표하면서 그 과정에서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한 여성들이 있음은 철저히 무시했다”(공동행동)는 비판도 나왔다.

2심 재판부 역시 “피해자가 매우 고통스러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점을 깊이 공감한다”면서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되려면 범행들이 윤씨의 폭행과 협박에 의한 것인지,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 등이 입증돼야 한다”며 “사실 인정과 법률 판단이 공소 제기된 범행에 국한될 수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가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설명해 실망을 안겼다.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피해자와 시민 2311명은 재판부에 탄원서를 냈다. 피해자는 탄원서에서 “한 여자의 인생을 권력이라는 힘으로 성폭행·강간으로 무너트리고도 너무나 당당한 두 사람이 절대적으로 용서가 안 된다”며 “너무나 가혹한 1·2심 판결은 저를 주저앉히고 말았다. 판사님 지금 저의 간절함이 무너지지 않도록 현명한 판결을 해달라. 부디 윤중천의 죄를 엄중하게 판결해 주실 거라 믿는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절박한 기도에 대법원은 응답하지 않았다. “강간 행위로 인해 상해가 발생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본 원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김학의, 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사법정의 실현을 위한 시민 공동행동이 26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중천에 대한 대법원 선고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김학의, 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사법정의 실현을 위한 시민 공동행동이 26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중천에 대한 대법원 선고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피해자·여성단체 “‘윤중천 성범죄 무죄’ 판결한 대법원에 분노
성인지 감수성 잃지 말라더니 스스로를 부정”

피해자 “김 전 차관·윤씨 다시 고소...꼭 책임 묻겠다”

공동행동은 이날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 판결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성범죄 사건 발생 맥락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판결했던 대법원은 스스로를 부정했다”며 “‘그들은 반드시 처벌될 것이다’라는 수사기관의 말을 믿고 용기를 내 성폭력 피해를 진술했던 피해자에게 오랜 시간 걸려 내 놓은 대법원의 답은 한국사회에 사법 정의가 있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갖게 한다”고 비판했다.

피해자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대법원 판결에 대한 울분을 토했다. “도대체 얼만큼 힘을 내야 하나요? 길을 가다가도 김학의 윤중천이 따라다닙니다. 그들이 구속돼 있어도 항상 따라다니는 것 같습니다. 언제쯤 대한민국 사법부는 억울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가슴의 한을 풀어 줄 수 있을까요?”

피해자는 김 전 차관과 윤씨를 다시 경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일관된 진술을 했지만 검찰은 윤중천은 3건의 성폭력, 김학의는 뇌물로 기소했다. 두 사람은 성폭력으로 경찰에 다시 고소했다”며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진실이 권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꼭 김학의, 윤중천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동행동도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피해자 옆에 서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멈추지 않겠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는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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