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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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희 감독 <고추말리기> 포스터.▶

여성영화의 힘은 개인적인 문제를

풀어내는 영화적 화법과 시각

여성영화에 대한 새로운 분류, 범주화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지난 9월 26일부터 28일까지 '여성영화, 이해와 오해'라는 주제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가 바로 그 진원지. 여성이란 주제에 초점을 두어 상영된 총 12편의 작품은 이미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작품들이다. 미처 보지 못했다면 한번쯤 봐둘만하고 보았다면 다시 한번 챙겨 감상할만한 작품들이다.

프로그래머 김노경(30)씨는 “독립영화와 여성영화에 대한 접근을 다른 시각에서 해보고 싶었다. 솔직히 여성문제를 다룬 여성감독의 영화를 보고도 그 소통방식에 있어 불쾌함이나 폭력성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여성을 소재로 하거나 여성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지만 거기서 풍겨 나오는 뉘앙스가 다분히 여성적인 남성감독의 영화가 존재한다”면서 “굳이 여성영화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아도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뿐 아니라 영화적 화법에 있어 '이미' 좋은 영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선별된 작품은 이러한 방식에 충실한 영화들이다. 장희선 감독의 <고추말리기>는 1999년 한국독립단편영화제 우수상과 2000년 여성영화제 우수상,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 영화는 고추를 말리는 집안 행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가족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세 여자 할머니, 어머니, 딸의 관계를 다룬다. 이들은 시어머니, 며느리, 딸이라는 각각의 역할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에 대한 기대를 강요한다. 일상 속에서 담담하게 그려지는 갈등은 곧 가족을 역할 분담의 구성원이 아닌 개개인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갈등의 원인은 인터뷰 형식으로 찾아진다.

박경태 감독의 <나와 부엉이>는 미군 기지촌에서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갔던 박인순씨를 중심으로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삶을 다룬 이야기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쉼터 두레방에서 일하는 박씨의 일상을 섬세하게 묘사한 영화는 우리 사회가 기지촌 여성들을 대해왔던 방식인 '고발과 폭로'보다는 가슴을 열고 다가가 그네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따뜻한 시각을 보여준다. 2003년 제 7회 인권영화제 상영작품.

2001년 야마가따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넷팩(netpack)상을 수상한 <팬지와 담쟁이>(계운경 감독), 2000년 서울 다큐멘터리영상제 신진 다큐멘터리스트 수상작 <땅 밥 만들기>(김진열 감독)는 엄밀히 말해 여성영화라기보다 소수자의 영화에 속한다.

<팬지와 담쟁이>는 자신의 아이를 낳아 이 아름다운 세상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는 장애인 자매 수정과 윤정의 일상생활을, <땅 밥 만들기>는 도시로 떠난 7남매가 모내기와 가을 추수기를 맞아 부모님의 일손을 도우러 내려와 있는 동안 겪게 되는 갈등을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접근한다.

박은영 감독의 <오르기>는 2003년 서울여성영화제 '새로운 물결' 부문에 초청된 에니메이션 작품이다. 산을 오르는 한 여자의 움직임을 통해 여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좀더 당당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감독 자신의 의지를 담았다.

그 외 <연분>, <이퀄>, <새 집이라고 했는데 이 얼룩은 뭐죠?> 등 기타 상영작은 프로그래머 김씨의 말대로 기존의 여성영화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작품들이다. 김씨는 “노동, 여성, 청소년 등 테마적인 성격을 들이대는 영화들은 기존의 기득권 영화에 대한 다른 시각이다. 그러나 메이저가 아니라고 다 마이너는 아닌 것 같다”면서 “마이너로서의 가치가 있으려면 애초의 마음에 대한 점검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인숙 기자isim123@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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