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조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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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기태>

“이렇게 손은 일만 하고 발은 물 조절만 하는 거야. 얼마나 재미있고 절수도 잘 되는지 나는 쓸 때마다 감탄한다구.”

김예애(74·이지밸브 대표)씨는 마치 울림 페달을 밟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처럼 씽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아니, 적당히 가속을 즐기며 운전하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지난 달 26일 서울무역전시장에서는 첨단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들이 참가한 '서울벤처박람회 2003'이 열렸다. 벤처기업과 투자자의 만남을 주선하는 이 자리에서 김씨도 생활 속 아이디어를 착안해 만든 제품으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김씨가 개발한 발로 밟는 수도장치 '발바리'는 온도와 수량까지 조절하는 특허 제품으로 출시된 지 4개월째다. 발로 페달을 살짝 누르면 물이 조금씩만 흘러나오고 페달을 세게 누르면 물이 콸콸 쏟아진다. 또한 발로 오른쪽 파란 선을 누르면 찬물, 왼쪽 빨간 선을 누르면 더운물, 파란 선과 빨간 선의 경계지점을 누르면 미지근한 물이 나온다.

“우리는 물을 낭비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서 살고 있어. 손으로 물을 틀거나 잠그는 그 잠깐 사이 하던 일을 멈추고 물을 그냥 흘려보내야 하잖아? 나는 그게 아까운 거야.”

수도꼭지는 손으로 조절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씨. 발바리는 페달을 누름과 동시에 바로 설거지를 하기 때문에 손으로 물을 조절하는 사이에 발생할 지 모를 물의 양을 최고 80% 가량 줄일 수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이와 같은 절수장치 관련 특허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98년부터 2002년까지 모두 576건. 정부가 신축 건축물에 대해 절수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어 물 절약 기술 개발은 계속될 전망이다.

1999년 김씨는 물 절약 아이디어로 국내뿐 아니라 중국, 미국, 일본에서까지 특허를 받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많은 기술자를 만났지만 자신의 의도를 그대로 파악해 완성품을 만들어낸 사람이 없었다. 그 때부터 수도꼭지 파는 가게란 가게는 눈에 보이는 대로 들어가 물어보았고 대학교, 연구소 등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을 법한 곳은 다 뒤져 발바리의 탄생을 뒷바라지했다. 개발에서 제품화까지 3년, 제품개발비용만 3억 원. 직원 3명만으로 판매운영이 어려워 기술박람회, 벤처투자지원회, 행정기관 등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곳이 없다.

“나는 지금까지 지하철 표를 꼭 사서 끊었어. 그런데 어느 날 65세 이상 노인들에게는 표가 공짜로 주어진다는 걸 알았지. 그 때 사회가 날 이렇게 대우해 주는데 나도 사회에 뭔가 보탬을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늘날까지 살아왔어.”

병원에서 신체나이를 측정한 결과 두뇌는 50대, 몸은 60대로 나올 만큼 젊어보이는 김씨는 도전의식과 승부욕 또한 젊은 사람 못지 않다. 앞으로 10년 내 모든 아파트며 건물마다 발바리를 설치해 전세계인들에게 물 사랑, 물 절약 실천을 가르치겠다는 김씨. 다음 프로젝트는 세면대와 샤워기에 발로 조절하는 수도꼭지를 다는 거라며 벌써부터 바쁜 마음을 내비친다.

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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