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게 묵묵부답인 민주당과 이낙연 대표
사과와 조사에는 2G, 공천을 위한 당헌 개정은 5G 속도
정당성 없는 당헌 개정과 공천 결정, 공당의 자세 아니야
민주당은 살아있는 박원순이다

“박시장 사망 소식을 듣고 피해자가 어땠는지 아셔요? 저는 사람이 그렇게 절규하는 모습을 처음 봤어요.”
김재련 변호사의 말이다.

이 말을 전하는 김재련 변호사의 표정도 힘들기 그지 없어 보였다.
피해자는 몇년 간 가해자의 일상적이고 오래된 성폭력 속에서 숨죽이고 살았다. 그 고통과 절망이 목까지 차올라 낮은 숨조차 쉬지 못하게 됐을 때 용기 내어 사법기관을 찾아갔다. 그러나 제대로 된 조사도 이뤄지기 전에 가해자는 자살을 통해 책임을 외면해버렸다. 그리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코 앞인 오늘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는 아직 제대로 된 사과 한 줄을 받지 못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마지막 글을 통해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며 피해자를 뺀 모두에게 사과했다. 최근 재보궐선거 관련 민주당 당원 투표를 치루기 전 이낙연 대표 또한 서울, 부산 시민을 비롯한 국민들께 사과했다. 보다 못한 피해자가 물었다. “도대체 무엇에 대해 사과한다는 것인가, 당 소속 정치인의 위력 성추행을 단속하지 못하신 것인가, 지지자들의 2차 가해 속에 저를 방치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사과하는 것인가” 그러나 민주당과 이낙연 대표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박원순은 죽지 않았다. 박원순은 민주당을 통해 살아있다. 살아있는 박원순은 전 방위적인 2차 가해를 용인하고, 묵인하고, 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시간을 미투 이전으로 돌려놓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오전 대구 북구 산격동 호텔인터불고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현장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0.11.04. ⓒ뉴시스·여성신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오전 대구 북구 산격동 호텔인터불고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현장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0.11.04. ⓒ뉴시스·여성신문

넉 달이 넘도록 지지부지한 공당 차원의 사과와 성폭력 사건 조사에 비해 재보궐 선거 입후보를 위한 당헌당규 개정은 빛의 속도로 처리됐다. 자당 소속 지자체장들이 벌인 성폭력으로 인해 열리는 재보궐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단 5일 만에 당헌을 개정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번에 개정한 당헌 96조 2항은 이른바 ‘문재인 조항’으로 불린다. 지난 2015년 보궐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내년 재보궐선거 후보를 공천하기 위해 당 소속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 선거를 할 경우 후보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무공천 조항이다. 민주당인 해당 조항에 '단, 전당원 투표를 통해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추가했다.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공천하겠다는게 워낙 정치적 명분이 없다보니 민주당은 당원에게 공을 넘긴다며 당원 투표를 제안했다. 이낙연 대표는 지난 29일 의원총회에서 "후보 추천의 길을 열 수 있는 당헌 개정 여부를 전당원투표에 붙여 결정하기로 했다" "그 이후의 절차는 전당원투표의 결과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적 책임을 당원에게 미루는 깜짝 투표의 투표율은 겨우 26.35%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당원 투표율 26.35%을 높은 참여라고 당당히 내걸며 당원의 높은 참여와 압도적 찬성에 감사드린다고 공표했다.

민주당이 자화자찬한 이 개정 과정은 민주적 절차 상 문제가 있다. 전당원 투표는 당헌 개정 요건인 ‘전당원 투표를 통해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기 전 시행되었기 때문에 선거를 할지 안할지 다시 한번 전당원투표를 다시 열어야 한다. 민주당은 이를 예상했는지 ‘10월31일과 11월1일 이틀 동안 시행된 권리당원 투표로 개정된 당헌에 규정된 권리당원 투표를 갈음한다’는 부칙을 이날 신설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이번에 시행된 권리당원 투표율이 낮아 당원투표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당규에서 "전 당원 투표는 전 당원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와 유표투표 총수 과반수의 찬성으로 확정한다"고 규정되어있다. 전당원투표가 성사되지 않았으니 이낙연 대표의 29일 발언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번 보궐 선거에 후보자를 공천하면 안된다. 전 당원 투표가 성사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일자 민주당은 투표가 ‘전당원투표’가 아니라 여론조사일 뿐이였다고 말을 바꿨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불꽃페미액션이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졸속 당헌개정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2020.11.04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제공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불꽃페미액션이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졸속 당헌개정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2020.11.04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제공

이번 과정을 보며 선거 전 위성정당을 만들 때 편법, 위법을 일삼으며 속전속결로 움직였던 민주당, 그에 부화뇌동했던 일부 정당들이 떠올랐다. 당시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앞세워 공천을 진행했다. 더불어시민당 후보자 공천 명단을 작성할 때에도 당내 민주적 절차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당대표와 최고위 선출도 당대회 대의원 투표를 거치지 않고 합의추대로 진행했었다.

민주당은 선거라는 상화 앞에만 서면 체면과 염치를 내버리는 모습을 계속 보이며 이것이 현실정치이고, 유연한 태도라는 입장을 반복하는 중이다. 민주당 신동근 최고위원은 “국민도 사실은 시장 후보를 낼 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걸 결단해서 현실화한 것일 뿐”이라는 뻔뻔한 말을 하며 국민들이 스스로의 귀를 의심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당은 헌법상 그 목적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지금의 민주당을 헌법을 지키는 정당이라고 볼 수 있을까? ‘민주’라는 이름을 갖기에 충분히 민주적인가? 386세대 정치인들은 권력에 눈이 멀어 본인들이 세운 민주주의도 허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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