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자동차 기술이 일천한 한국이 당시 세계 최고 안전한 차로 유명한 볼보를 만드는 스웨덴에 자동차를 판매한다고 했을 때 크게 신경 쓰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1, 2위를 놓고 삼성과 경합한 현대였지만, 세계적 브랜드와는 견줄 수 없는 한 수 아래의 기업으로 치부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스웨덴에서 유학생활 2년차에 스웨덴 일간지 신문에 난 현대자동차 광고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을 날 정도로 큰 감동이었다. 바로 그 때 사용한 구호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생각의 틀!” 이었다. 

‘더 강한 스웨덴을 위한 새출발’ 보고서.
스웨덴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새출발위원회가 지난 8월 발표한 ‘더 강한 스웨덴을 위한 새출발’ 보고서.

 

스웨덴 전문가들이 내놓은 보고서
‘더 강한 스웨덴을 위한 새출발’

스웨덴에서 코로나가 차차 잦아들던 8월 중순 새출발위원회가 318쪽에 이르는 전략보고서를 발표했다. 4월에 결성되어 활동한 새 출발위원회는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사태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기존의 무역과 경제, 기존 상품으로는 생존경쟁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스웨덴의 각계 최고 전문가들을 모아 국가전략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시작했다.

경제사와 혁신경제전문가인 클라스 에크룬드(Klas Eklund) 위원장이 주축이 된 이 위원회는 국가재정, 녹색혁신, 디지털경제, 노동시장, 교육, 주택시장, 교통, 기업가 정신과 산업, 조세제도, 세계 속 강한 국가를 위한 정책 등 다양한 주제별 연구를 진행한 책임연구원들은 스웨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최고 전문가로 구성되었다. 유럽 산업정책집행관이었던 세실리라 말름스트렘(Cecilia Malmström)은 유럽과 미국의 무역전쟁을 총 지휘한 경력을 가진 최고의 행정가 출신이자 4년 동안 스웨덴 유럽장관을 역임하면서 대유럽 전략을 책임지던 지략가이기도 했다. 국가재정분과위원장을 맞은 라스 크람포스(Lars Cramfors)는 스톡홀름대학교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노벨경제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국제경제최고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환경 분야 책임자인 마리아 베테르 스트란드(Maria Wetterstrand)는 녹색당 당수를 11년간 수행하면서 당의 인기와 지지도를 끌어올려 녹색당 최고 인기정치인이자 환경전문가로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미래항공연료와 환경오염문제 국가전략관으로 임명되어 활동할 정도로 국가적 인지도 매우 높은 인물이다. 여타 분야 전문가들도 최고의 전략이론가로 인정받고 있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어 위원회 활동은 처음부터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이 위원회가 활동 4개월 만에 ‘더 강한 스웨덴을 위한 새출발’이라는 보고서를 들고 나왔다. 이 보고서는 서두에서 코로나로 인해 기존의 경제, 정치, 무역, 산업은 이제 더 이상 국가를 지탱하지 못하고 국제경쟁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절박감으로 위원회 활동을 진행했다고 적고 있다. 이 위원회는 형식적으로는 스톡홀름 상공회의소(Stockholms Handelskammare)가 주도해 결성되었지만 연구활동에 있어 완전히 독립적 기구로 운영되었다. 이 보고서는 10개 분야의 정책혁신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양극화 줄이는 가장 핵심 복지전략은
교육과 주택정책 통한 노동시장 조정

핵심적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코로나 시대가 도래 하자 기존의 국제연합(UN), 세계무역기구(WHO), 세계은행, IMF, G7, G20 등 국제기구와 다자간 회의체제가 기존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진단한다. 유럽연합 조차 코로나의 확산에 공동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브렉시트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은 유럽의 미래에 암초로 작용될 수 있다고 보았다. 초기 의료장비, 마스크, 검사키트 등의 확보를 위해 국가적 경쟁이 심화되면서 국가 간 갈등도 고조되었고, 국가 간의 불신은 극에 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응급위기 대응에서 미래전략으로의 전환을 모색한 이 보고서는 현행 법제도, 관행, 정치체제, 정책수립과정에서부터 집행, 노동시장의 대전환, 무탄소에너지정책과 제로탄소배출, 순환경제, 소비행태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혁신적인 국가개혁모델을 주문하고 있다. 기업과 개인 파산에 대비해 최종 보험회사 역할을 자임하는 국가의 역할은 시장, 개인, 제3섹터와 함께 새롭게 책임을 나누고 분담하는 체제로 나아가야 할 것을 권장하고 있는 이 보고서는 미래복지국가의 새로운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 이후 노동시장은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고 보았다. 전 세계적 위기 시 언제든 대량해고가 발생할 수 있고, 회사의 생존은 이제 더 이상 고용안전과 평생직장보다는 유동적 안정성(Flexsecurity)의 균형을 맞추며 대학과 직업교육을 통해 빠르게 직장이동이 가능한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개인 간 격차해소와 양극화를 줄이는 가장 핵심적 복지전략으로 교육과 주택정책을 통한 노동시장의 조정을 든다. 교육과 주택양극화가 곧 모든 사회의 양극화의 주 원인으로 보고 있다. 교육과 실업기금과의 유기적 접목도 해법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노동시장 관행의 변화가 가장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새 출발위원회의 활동을 보면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각계 전문가들이 사상과 이념적 경계를 허물고 함께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며 한 배를 타고 논의하는 모습이다. 사민당, 자유당, 녹색당, 보수당 등에서 활동했거나 연계되어 있는 각계 전문가들이 국가의 위기 앞에서 함께 미래전략을 논하는 모습은 모든 국가의 귀감이 될 만하다.

30년 전 현대자동차가 스웨덴에 진입하면서 사용했던 ‘새로운 시대, 새로운 생각의 틀’은 공교롭게도 코로나 시대 이후 모든 국가에서 필요한 전략적 구호처럼 들린다. 우리나라는 지금, 새로운 시대를 고민하고 새로운 생각의 틀로 접근할 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박선이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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