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디지털성범죄 피해지원사업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시행 1년
상담·수사·법률·치유까지 원스톱 지원
1년간 피해자 162명 1471건 지원
경기도·성남·대전 등 벤치마킹 잇따라

나무여성인권상담소 ⓒ홍수형 기자
서울시 디지털성범죄 피해지원사업 ‘찾아가는 지지동반자’가 시행 1년을 맞았다. (왼쪽부터) 지지동반자로 활동하는 이희정 나무여성인권상담소 팀장과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장을 지난 23일 서울 중구 나무여성인권상담소에서 만났다. ⓒ홍수형 기자

 

그들은 모두 10대~20대 초반 남성들이었다. 코로나19로 집에만 있던 10대 여성들에게 게임, 채팅앱, SNS 등으로 접근했다. 배우가 꿈인 A(19)에게는 영화 출연을 시켜준다며 사진을 받아내 유포 협박, 성폭행, 금품 요구까지 했다. 홀로 게임을 하는 시간이 많던 B(11)에겐 ‘엄마 잔소리 듣기 싫겠다’며 접근했고, 초등학생 C(13)에게는 ‘노예 놀이, 야한 놀이를 하자’며 접근해 신체가 노출된 사진이나 영상물을 착취했다.

이 가해자들은 최근 모두 경찰에 붙잡혔다. ‘찾아가는 지지동반자’의 지원으로 가해자를 검거한 첫 사례다. 찾아가는 지지동반자는 서울시와 나무여성인권상담소가 운영 중인 디지털성범죄 피해구제 1대1 지원 서비스다. 2019년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약 1년간 피해자 162명(중복 포함)의 사건 1471건을 지원했다.

“디지털 성범죄의 특징은 말 못하고 숨어있는 피해자가 많다는 거예요. 심리적 안정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찾아가는 지지동반자는 피해자 곁에서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정서적 지지, 수사, 소송, 치유까지 유형별 지원을 제공하고, 그런 점에서 타 지원체계와 차별성을 가진 사업입니다.”
사업 담당인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여성정책담당관 여성안심사업팀 김지현 주무관의 설명이다.

서울시 사업이지만 지지동반자의 활동 범위는 수도권 전역에 가깝다. 지리적 경계를 넘나들고, 신속한 대응이 중요한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 때문이다. 성공적인 사례로 조명되면서 전국 지자체에서 관련 문의가 쇄도했다. 경기도, 성남시는 찾아가는 지지동반자를 벤치마킹해 지난 10월 28일 자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통합 지원체계를 선보였다. 대전광역시도 내년부터 비슷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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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영상 채증·경찰 수사와 공판 동행도

“n번방 사건 이후 유포 불안 상담 늘어”

디지털 성범죄는 극심한 불안과 충격을 동반한다. 남들이 내 영상을 봤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집을 벗어나길 두려워하는 피해자, 보호자를 대동해야 하는 어린 피해자의 경우 지지동반자가 직접 피해자들을 찾아간다. 피해자가 괴로워하는 불법촬영 영상 채증도 돕는다. 경찰 수사 과정에도 동행해 피해자 진술을 돕고, 불필요하거나 2차 가해성 질문이 나오면 적극 개입해 피해자를 보호한다. 공판 동행, 피해자 신문 시 신뢰관계자로 동석하는 등 소송 과정도 지원한다. 심리치료·의료지원도 연계한다. 지지동반자인 이희정 나무여성인권상담소 팀장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후로 불법촬영 유포 불안을 호소하는 상담이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아동·청소년을 노린 온라인 그루밍 등 악질적 범죄도 눈에 띈다”며 “매달 평균 10~20명가량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자조모임도 추진 중이다.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장은 “가족 등 주변의 정서적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10대 피해자는 사건 이후에도 또 온라인으로 낯선 사람과 채팅을 하다가 자기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개인정보를 남에게 보내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주변의 지지가 없는 상황에서 ‘너 힘들지’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기대고 사진을 보내게 되는 것”이라며 피해자 간 연대가 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디지털성범죄 피해지원사업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서울시
서울시 디지털성범죄 피해지원사업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서울시

 

피해자 일상 회복 위한 지속가능한 지원 필요
현행 1년 단위 위탁사업 형식은 아쉬워

찾아가는 지지동반자 사업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1년 단위의 분절적이고 불안정한 위탁사업 형태를 유지하는 현실은 아쉽다.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는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한만큼 지속가능한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현장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 센터에서 삭제, 상담, 수사, 법률, 의료 지원을 종합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왔다. 

지속적인 연구와 교육을 통한 현장의 역량 강화도 중요한 과제다. 김 소장은 “신기술과 만나 빠르게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는 기존 성폭력 피해 지원과는 무척 다른 영역이라서 경찰 포렌식 전문가, 검찰, 법조계 등 전문가들에게 꾸준히 보수교육을 받고 있다. 다른 현장도 이런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잡을 수 없다’ ‘피해자 본인이 동의했다면 불법촬영도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과 다른 통념을 바로잡는 것도 현장의 과제다. 지난 5월부터 ‘n번방 방지법’으로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돼 디지털 성범죄 처벌도 강화됐다. 변화하는 법제도 내용을 포함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 피해 지원의 첫 단계다.  

지지동반자들은 피해자들에게 ‘홀로 이겨내려 하지 말고 꼭 지원기관에 연락해달라’고 당부했다. “모든 폭력피해가 그렇듯이 드러내야만 지지받을 수 있어요. 내 피해를 깨달았을 때의 충격과 좌절감은 너무나 크죠. 그럴 때 정말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으로 얻기 힘들다는 걸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강 소장) “일단 전문 지원기관에 전화하세요. 여러분의 사건을 지지하고 일상의 회복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있으니까요.” (이 팀장)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입어 도움이 필요하면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지지동반팀 (02-2275-2201, digital_sc@hanmail.net, 트위터·인스타그램·카카오플러스친구 @sc_2201) 등에서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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