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주최
‘코로나 시대 사회적 돌봄의 위기와 여성 노동’ 컨퍼런스 열려
6개국 여성 노동 전문가 참석해 사례 공유
“여성주의 관점에서 ‘돌봄사회’ 모색해야”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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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자가격리 대상이 된다면? 스웨덴에서는 양육자가 연차휴가와 별도로 유급휴가를 내고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다. 임금은 정부가 보전한다. 학교와 보육시설이 문을 닫아 아이를 집에서 돌봐야 한다면? 캐나다 정부는 양육자들에게 최대 26주까지 주당 500 캐나다 달러(약 43만원)를 지원한다. 가족을 곁에서 돌보느라 일자리를 잃을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재택근무와 고용 유지 지원도 늘렸다. 

코로나19 시대 여성이 도맡아온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여성들의 ‘돌봄 독박’을 해소하며, 저임금·불안정 노동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각국 정부가 맞춤형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성의 관점에서 체감할 만한 변화는 아직 멀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일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주최로 열린 ‘코로나 시대 사회적 돌봄의 위기와 여성 노동’ 웹 컨퍼런스에서 나온 얘기다. 한국 포함 6개국 여성 노동 정책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코로나 시대에 노동과 돌봄까지 떠안은 각국 여성의 현실을 진단하고 지역별 대응 사례와 과제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백미순 서울시여성가족재단 대표는 “여성은 임금노동을 하면서 가족 돌봄의 이중고에 시달리거나, 고용 중단 또는 포기 상황에서 돌봄을 전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올 상반기만 봐도 개학 연기, 온라인 수업 등으로 집에서 아이를 돌보게 된 여성들이 급증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4월 초까지 가족돌봄휴가 비용을 신청한 5만3230명 중 69%가 여성이었다. 올해 상반기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1년 전보다 34.1% 늘었지만, 여전히 여성의 1/3 수준(전체의 24.7%)에 불과하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지난달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36.4%는 “돌봄 위기가 지속될 경우 일을 그만둘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통계청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기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1.2%P ↓)과 고용률(1.5%P ↓)은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큰 폭으로 감소했다. 여성 취업자 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줄어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했는데, 남성(0.7%P ↓)의 3배 수준이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일시휴직자 통계에서도 여성 비율이 두드러졌다. 코로나19 여파로 숙박·음식·교육·서비스업 등 대면 접촉이 많은 업종에서 일시휴직자가 급증했는데, 이들은 여성 종사자의 비율이 높은 업종이기도 하다.

외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엥 총 말레이시아 페낭주 가족 발전·젠더 통합실장은 “페낭주의 인구 성비는 1:1 가량이지만,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54.1%로 남성(80.5%)에 비해 낮다. 소득과 무관하게 여성의 무급 돌봄노동 종사 비율은 훨씬 높다. 코로나19 속 여성들은 이중 노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낭주는 맞벌이 부부 중 한 명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젠더 관점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농업인·창업가 등 다양한 여성들의 고용·돌봄 수요와 현황을 파악하고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제2차 코로나19 대확산을 겪는 캐나다에서도 여성의 돌봄 부담과 고용 불안이 정책 현안으로 떠올랐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아예 9월 23일 “캐나다식 아이 교육·돌봄 시스템을 구축해 어떤 양육자도, 특히 어떠한 여성도 커리어를 중단할 필요 없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달 초부터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집에서 아이를 돌보느라 일주일에 절반 이상은 임금노동을 할 수 없는 양육자는 최대 26주까지 주당 500 캐나다 달러(약 43만원)를 지원받을 수 있다. 의료인, 보육시설 종사자 등 코로나19 속에서도 대면 노동을 멈출 수 없는 필수노동자를 위한 양육 지원도 도입했다.

유럽에서도 여성 고용과 돌봄은 정책 결정자들의 주요 관심사다. 라우라 페레즈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의회 사회 권리, 글로벌 정의, 페미니즘과 LGBTI 위원회 부위원장은 “바르셀로나 여성들은 저임금·대면 일자리 종사 비율이 높은데다가 돌봄 노동까지 맡게 되면서 코로나19 국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성 성소수자들은 더더욱 힘들다”며 “바르셀로나 시의회는 여성단체 등과 협업해 여성 취업·고용·돌봄 지원, 성별임금격차 해소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소피아 외스마르크 스웨덴 국제개발협동조합 ‘유니언 투 유니턴’ 사무국장은 “(성평등 선진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에서도) 코로나19로 재택근무와 양육을 병행하게 돼 스트레스를 받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많다”며 젠더 관점의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여성 노동’, ‘그림자 노동’으로 여겨진 돌봄노동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에바 페더 키테이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석좌교수는 “인간은 날 때부터 상호의존적인 존재이며,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돌봄에 의존해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며 “돌봄으로 형성된 유대는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우리의 가장 연약한 면이 우리를 지키는 힘이다. 하지만 돌봄이 여성의 전유물이 돼선 안 된다. 남성에게도 어릴 때부터 돌봄의 가치를 교육하고 참여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필수 사회서비스로 만들고, 모든 사람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거대한 변화 같겠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빠른 시간 내에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도 민간 주도로 제공되던 돌봄서비스를 공공 영역에서 제공하고, 돌봄 종사자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고용·사회안전망 강화에 총 28조4000억원을 투자하겠다며, 대선공약이었던 사회서비스원 설립과 치매국가책임제, 지역사회 통합돌봄 등 추진 의지를 재차 밝혔다. 백 대표는 “서울시도 긴급 보육·돌봄 서비스 제공, 재택근무 지원, 여성 취업 프로그램 확대, 보육·사회복지 시설 종사자 등 필수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해 조례 제정 등을 추진하고 있다”며 “여성주의 관점에서 ‘돌봄사회’를 모색하고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엘렌 우즈워스 전 밴쿠버 시의원·WTC(Women Transforming Cities) 의장은 “돌봄노동은 필수노동으로 인정돼야만 한다”며 “지금은 ‘여성주의 뉴딜’이 필요하다. 여성단체들이 더 활발히 참여하고 협력해 정부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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