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역차별·인구 감소 이유로
고개 드는 여성 징병제
KBS 조사서 50% 여성 징병제 동의
전문가들 “현실적으로 불가능...
세계적 추세는 기술군 지향,
의무사병 비율 줄이는 추세
징·모혼합제서 모병제로 나아가야”

 

군인들. ⓒ뉴시스.여성신문
KBS ‘시사기획 창’은 16일 모병제와 징병제에 대해 다루며 이에 앞서 병역제도에 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61.5%의 사람들이 모병제 도입을 찬성했고 반대는 35.4%로 나타났다.  ⓒ뉴시스.여성신문

 

‘여성 징병제’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모종화 병무청장이 인구감소에 따른 사병의 축소를 생각할 때 모병제 전환을 구체적으로 준비할 때라 생각한다고 밝히면서다. 거기에 더해 KBS 시사기획 ‘창’이 KBS 공영미디어 연구소와 성인남녀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징병제를 찬성하는 비율이 과반을 넘었단 사실이 전해진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징집에 대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인구 감소로 사병 줄어드니 여성을 징집해야 한다?

KBS ‘시사기획 창’은 지난 16일 모병제와 징병제에 대해 다루며 이에 앞서 병역제도에 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61.5%의 사람들이 모병제 도입을 찬성했고 반대는 35.4%로 나타났다. 찬성 측의 이유와 반대 측의 이유 모두에 인구 감소가 포함됐다. 찬성 측에서는 ‘인구 감소 대비 병력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21.8%)’. 반대 측에서는 ‘필요 병력 모집이 어려울 것이다(28.4%)가 제시됐다.

’여성 징병‘에 관한 논쟁도 인구 감소와 관련돼 있다. 20세를 기준으로 현역 입영 자원이 현재는 29만 명이지만 2030년에는 20만 명으로 줄어든다. 2040년에는 14만 명까지 급감할 것으로 예측된다. 당장 매년 줄어드는 사병의 수를 생각할 때 여성 징병도 주요한 선택지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도 사병 축소 상황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 모종화 병무청장도 지난 13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2032년 이후부터 사병이 20만 명대로 줄어드는 만큼 이에 따라 병력 제도 전반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모 병무청장은 “중장기적 측면에서 모병제 전환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모병제는 강제 징병 없이 본인의 지원에 의한 직업 군인을 모병해 군대를 유지하는 제도를 말한다. 현재 전세계 107개국이 시행 중이다. 그러나 모병제를 반대하는 이들은 결과적으로 모병제를 시행 중인 나라의 많은 수가 목표한 모병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사실상 저소득층 청년들의 ’경제적 징병제도‘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사람들은 여성 징병이 일종의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재 “남성 중심으로 짜인 군 조직... 성희롱 등 범죄나 기강해이 발생 우려돼”

’여성 징병‘에 대한 요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19일 오후 현재 청와대 국민동의 청원에 게시된 여성 징병을 요구하는 청원은 총 1056건에 달한다. 지난 2017년 실제로 12만 명의 동의 수를 얻은 청원도 있다. 대체로 인구 감소에 따른 필요를 들기 보다는 북한과의 휴전 상황이기 때문에 여성 또한 전시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 또는 남성에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성차별적이라는 주장에서다.

여성 징병을 요구하는 헌법 소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다섯 차례 있었다. 2010년, 2011년, 2014년 세 차례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 병역법 3조 1항이 성차별적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됐으나 세 번 모두 재판관 전원이 '합헌' 결정을 내렸다. 2번의 소원 제기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헌재는 "남성이 전투에 더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성도 생리적 특성이나 임신과 출산 등으로 훈련과 전투 관련 업무에 장애가 있을 수 있다"며 "최적의 전투력 확보를 위해 남성만의 병역의무자로 정한 것이 자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남성 중심으로 짜인 현재의 군 조직에서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면 상명하복과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희롱 등 범죄나 기강해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지적한 대로 실제로 군대 내 성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5년간 군대에서 파면된 장교 58%는 여성을 성폭행, 추행하거나 부적절한 관계를 맺거나 강요해 파면됐다. 16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국방부에서 제출받은 ‘장교 파면 징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 6월 30일까지 파면된 군 장교 26명 중 15명은 성비위 문제로 최고 징계 수위인 파면을 당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7년 “상관에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 후 극단 선택한 여군 장교 사건이 알려진 후 6개월 간 직권조사를 벌였다. 당시 인권위 발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군사재판에서 선고된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 부적절한 법 조항이 적용되거나 가해자에 온정적 처분이 내려졌다. 군사법원에서 선고한 전체 성폭력 사건 가운데 피해자가 여군인 사건의 선고유예 비율은 무려 10%를 넘어섰다. 일반법원 1심 판결에서 선고유예 비율인 1.36%의 8배에 가까운 수치다. 심지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현역 군인이기 때문에 군형법을 적용해야 하는 데도 일반 형법을 적용하는 사례도 흔했다.

인권위 설문조사에서 군대 내 성폭력이 "심각하다"거나 "매우 심각하다"고 답한 여군은 전체의 절반 이상인 54.1%에 달했다. 특히 피해자 가운데 61.9%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유는 "대응해도 소용없다", "여러 사람이 알게 되는 것이 싫었다", "장기선발 등 인사에 악영향" 순으로 높았다.

해당 조사 직후 국방부는 ‘국방개혁 2.0’을 발표하고 여군 비율을 늘이고 근무 여건을 보장하겠고 밝혔다. 전문 성폭력 예방교육의 확대, 성폭력 예방 전담 조직 강화, 성범죄자에 대한 무관용 원칙 적용 등이 내용이다. 그러나 2018년 성소수자 해군 여성이 2명의 상관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일을 고발하고도 군사법원이 두 상관 모두에 ‘무죄’ 판결을 내리는 등 별반 달라진 바는 없다.

경례하는 군인들의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경례하는 군인들의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실제로 여성징병제 주장에 있어 가장 문제되는 부분이 상명하복식 남성중심적인 군 문화에서 오는 성폭력 문제다. 김신숙 국방부 부이사관(인력정책과장)은 저서 『역사와 쟁점으로 살펴보는 한국의 병역제도』에서 여성의 사병 징병제는 전문병사제 등이 먼저 도입되었을 때 정책 결정에 따라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전문병사제는 징집 된 일부는 12개월을 복무하고 모병된 일부는 12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월 최저시급 전후의 금액을 받으며 복무해 전문적인 전투력을 갖추는 방식의 징모혼합제다.

다만 여성의 사병 복무를 위해 내무반 등 각종 생활관 시설을 증축하고 야간조 등 근무형태와 병 훈련 형태, 체계 등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감당할 천문학적 비용의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성 징병제의 실제 가능성에 대해서는 높게 보지 않는다. 이미 한국과 유사하게 인구 감소를 경험한 유럽 각국이 기술군을 지향하며 의무병의 비율을 최소한으로 낮추며 전문 직업 군인 중심의 군대를 꾸리는 추세인 탓이다. 대규모 인력전이 필요했던 과거와 달리 소규모 교전 중심으로 바뀐 현대전의 양상에서는 오히려 전문적인 군인이 사병보다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군인권센터 방혜린 상담지원팀장은 “여성징병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퇴보이며 현대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 팀장은 “현재 우리 군대의 편제와 조직은 6.25 시기의 고전적 군사체계를 답습하고 있다. 흔히 생각하는 대규모 군인이 맞부딪히는 형태의 재래식 전쟁에 적합했던 조직체계로 소규모 교전과 군사무기를 중심으로 하는 현대전과 다른 형태”라며 “우리 군은 고전적 조직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라면 당연히 면제됐을 사람도 현역으로 뽑고 있는데 이는 결국 실제 사병 부대에서 ‘이 사람이 군인으로서 적합한 상황인가?’ 혼란을 주고 훈련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필요한 것은 사병 수를 확대하기 위한 여성 징병제가 아니라 현대전에 맞는 형태의 군사 조직 개편과 모병제나 징모혼합제를 시행하기 위한 논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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