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진관기숙사 앞에서 ⓒ고 이이효재 여성장 공동장례추진위원회
1989년 교정에선 이이효재 선생. ⓒ고 이이효재 여성장 공동장례추진위원회

 

한국 현대 학문의 역사는 남성 주류 학자들의 역사였다. 그러나 한국사회학의 역사에서 이효재는 여성으로서 동시대 남성 사회학자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이효재는 미국 유학을 통해 사회학에 입문했지만 점차 가치중립적 현실분석에 한정된 주류사회학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현실 개혁을 위한 실천적 비판사회학을 모색했다. 흔히 한국 비판사회학 형성에 기여한 대표적 학자로 한완상과 김진균을 들지만 이효재는 비판사회학과 여성학을 결합시킨 한국 ‘비판사회학의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다.

그의 사회학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 6.25전쟁과 분단의 고착, 4.19혁명과 5.16쿠데타, 유신독재와 광주항쟁으로 이어지는 20세기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지적 대응이었다. 일찍이 1948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57년 콜롬비아대학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그는 고황경, 이만갑, 이해영 등과 함께 농촌 가족에 대한 표준적인 조사연구에 참여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한국의 궁핍하고 절실한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조사연구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여성의 주체적 삶과 공동체 운동에 관심이 있던 그는 1966년 이스라엘의 여러 공동체를 방문하고 돌아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대졸 여성과 도시 중산층 주부들에 대한 의식 조사를 바탕으로 소비자 협동조합운동 등 지역사회에서 여성들의 활동을 조직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권위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이효재의 사회학은 가부장제의 철폐, 가정의 민주화,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 중진, 한국사회의 민주화, 분단 체제의 극복이라는 실천 지향성을 지닌 비판사회학으로 확장되었다.

1990년 1월 군축 평화통일을 위한 여성운동을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에서.
1990년 1월 군축 평화통일을 위한 여성운동을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에서. ⓒ고 이이효재 여성장 공동장례추진위원회

 

크게 보아서 이효재의 사회학은 가족사회학에서 노동사회학을 거쳐 분단시대의 사회학으로 변화를 겪었다. 우리 사회가 겪은 역사적 체험의 맥락에서 문제의식을 도출하고 경험적 연구를 축적하여 이를 토대로 실천을 모색한 이효재의 사회학은 한국 비판사회학의 큰 줄기를 형성했다. 그는 한국의 사회학자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비주류 흑인사회학(Black Sociology)에 일찍이 관심을 가졌다. 1974년 미국 남부의 흑인대학 피스크대학(Fisk University)에 가서 억압받는 흑인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흑인사회학과 만났다. 이후 이효재의 사회학은 억압받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사회를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일에 기여하는 공공지식의 생산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런 학문적 경험과 더불어 극심한 탄압 속에 전개된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이라는 한국사회의 현실과 만나면서 그의 비판사회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효재는 여성 노동자만이 아니라 농민과 도시빈민들 삶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후 남북 이산가족 문제를 접하면서 분단현실에 대한 문제 의식은 더욱 분명해졌고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으로 구성되는 민중에 대해 연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에 따라 조선시대에서 시작하여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한국 여성노동사를 연구하고 노동자 계급 현실에 대한 연구도 진행했다.

이효재의 사회학은 ‘분단시대의 사회학’으로 널리 알려졌다. 분단사회학은 가부장제 권위주의와 분단체제가 결합하여 민중, 특히 여성들의 삶을 왜곡시키는 현실을 드러내고 민중과 여성이 억압에서 풀려나는 데 필요한 해방적 지식을 추구했다. 이효재의 사회학은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연구에 한정되지 않고 늘 억압의 구조를 극복하는 주체의 형성을 지향했다. 보기를 들어 그의 가족 사회학은 가부장제와 가족 이기주의를 벗어나 민주화된 가족이 지역사회를 민주화하고 한국사회를 민주화하는 기초 단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혈연과 혼인에 근거한 전통적 가족 형태를 벗어나 비혈연 가족, 여성들의 공동체형 가족 등 새롭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모색했다.

이효재의 사회학은 주로 해외에서 수입된 사회학이라는 외래 학문을 한국현실 속에 뿌리내린 학문적 실천이었다. 그는 서구의 관점이 아닌 우리 사회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문제의식을 찾고, 한국 현실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축적하고, 이를 토대로 실천 지향적 학문을 전개했다. 남성 주류 사회학자들은 이효재의 사회학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이효재는 끝까지 꿋꿋하게 비주류 비판사회학의 길을 걸었다. 오늘날에는 ‘공공사회학’Public Sociology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효재의 비판사회학이 남긴 학문적 유산은 문제의식에 근거한 연구과 해방적 실천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강조이다. 삶 속에서 지식을 구성하고 그 지식을 현장에서 실천하면서 사회적 삶을 변화시키는 순환 과정에 대한 강조는 한국 비판사회학이 계승해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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