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트라우마 치유 전문가 김선현 제주국제평화센터 센터장/
차의과대학교 미술치료 대학원장

임상·연구 당시 효과적이었던 명화 78점 엄선
명화 보며 받는 강렬한 감정과 느낌으로
마음 치유하며 자존감 키울 수 있어

 

김선현 제주국제평화센터 센터장 ⓒ홍수형 기자
김선현 제주국제평화센터 센터장 ⓒ홍수형 기자

 

『그림의 힘』의 표지는 한 폭의 그림으로 둘러싸 있다. 표지를 둘러싼 그림인 모네의 ‘정원의 여인’(Lady in the garden, 1867)은 봄날 화사한 햇살을 받는 어린 나무와 이를 똑바로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따스하고 환한 기운이 그림을 보는 이에게도 오늘이 봄인 듯 설렘을 준다. 그림이 전해주는 강렬한 희망의 메시지 때문일까, 김선현 제주국제평화센터장(차의과학대학교 교수)는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꼽으라면 이 그림”이라고 말했다. 

클로드 모네, 정원의 여인(Lady in the garden, 1867)
클로드 모네, 정원의 여인(Lady in the garden, 1867)

 

지난 9월 재출간한 『그림의 힘』은 심리치료 전공 교수이자 트라우마학회장인 김선현 제주국제평화센터 센터장이 지난 25년간 현장과 연구에서 가장 효과가 있었던 총 78점의 명화를 엄선해 담은 책이다. 지난 2015년 초판 발행 후 꾸준히 사랑받은 책은 수많은 독자들의 후기로 이어졌다. 5년 만에 재편집과 수정을 거쳐 책이 재출간 된 데에는 2020년 전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계기가 됐다.

“저는 예술이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 2015년 책을 낼 때는 모든 국민이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 하고 우울한 때였어요. 코로나19가 덮친 지금은 정말 위험한 상황이에요. 경제와 생계가 불안해지고 마음도 몸도 아픈데,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운동을 하거나 사람을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 됐죠. 좋은 그림은 말이 아닌 느낌으로 다가와요. 언택트의 시대에 홀로 내면을 다질 때가 필요한 지금 명화를 엄선해 보는 것이 분명 힘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위에서부터 로버트 리드의 ‘서머 걸(Summer girl, 1896)’과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The maids of honor, 1656)’.

 

‘작은 미술관’. 김 센터장은 책에서 그림의 의미, 미술사적 의의, 작가의 배경과 같은 것들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림을 바라봤을 때 보는 이의 감정 길잡이가 되어준다. 로버트 리드의 ‘서머 걸(Summer girl, 1896)’에서는 푸른 한낮 당당한 자세로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확신’을 집중해보길 권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The maids of honor, 1656)’에서는 그림 속 누구에게 집중하고 있는지, 왜 그에게 집중하는지 묻는다. 김 센터장의 상냥한 안내에 따라가다 보면 끊임 없이 그림을 보며 나 자신과 문답을 나누게 된다. 과거의 상처, 지금의 고민, 미래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는 동안 어느새 막힌 감정이 탁 풀린다.

김 센터장은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 김 센터장은 지난 2016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캠프에 영입된 여성 1호 영입인재였다. 그는 입당 당시 "국가는 재난과 사고로부터 상처를 받은 국민을 치유하고 사회로 정상적인 복귀가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갖추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 이보다 앞서 있었던 300여 명의 학생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가 전국민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준 때였다.

세계미술치료협회 회장이자 대한트라우마학회 학회장이기도 한 그는 지금 더 걱정이 깊다. 이어지는 코로나19의 국면에 모두 갇혀버리는 것도 걱정이지만 종식 이후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나오는 때도 걱정스럽다. 김 센터장은 과거 스트레스 수치가 가장 높을 것으로 생각되는 집단들을 조사한 결과 의외로 ‘결혼을 앞둔 신부‘의 스트레스가 가장 높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앞두면 사람들은 긴장하고 불안해 해요. 코로나가 종식하면 희망이 있을 것 같지만 우린 사실 알 수 없지요. 게다가 지금은 이 긴 싸움이 언제 끝날지도 몰라요. 지금 필요한 건 혼자 서는 연습이 필요해요.”

서구권에 비해 동양권은 유독 개인 행동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홀로 서는 건 쉽지 않아요. 단체 행동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감, 타인을 통한 치유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려면 자존감이 높아야 해요. 여기에 도움을 주는 게 바로 예술이에요. 독서, 예술, 산책처럼 혼자 하는 것들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김 센터장은 제주국제평화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그가 제주로 내려간 것은 ‘제주4·3사건‘에 대한 연구 때문이었다. 남조선로동당 무장대, 미군정, 국군, 경찰 등 각 집단의 충돌 속에서 일어난 주민들에 대한 학살과 방관이 1947년부터 1954년까지 7년간 이어진 사건이다. 이때의 기억은 아직 제주도민들에게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2005년 처음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4·3 사건에 대해 사과를 했고 정부로부터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지정됐다. 센터는 평화에 대한 연구, 홍보 등을 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제주도 밖에서 온 사람이 30년을 제주도에서 살아도 육지인이라고 불러요. 4·3사건 등을 겪으며 너무나 마음에 상처가 깊은 거죠. 아직 전통적 관습이 남아서 현대적인 문화와 끊임없이 충돌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평화감수성, 평화 인지교육 이런 것들이 필요하겠단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김선현, 『그림의 힘』, 에이트 포인트
김선현, 『그림의 힘』, 에이트 포인트

 

 

전쟁과 분단, 군사정권, 대규모 참사 등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큰 상흔을 남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상흔을 치료할 틈 없이 급하게 달려오기만 했는 지도 모른다.

“평화를 안다는 것은 타인의 상처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고 동시에 내 마음과 주변환경, 트라우마에 대한 안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힘은 나 자신에게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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