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희 감독의 단편 ‘파마’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 여성 서사를 담은 영화, 젠더이슈와 성평등 가치를 신선한 시각으로 담아낸 영화, 바로 ‘여성영화’입니다. [여성영화 사랑법]은 앞으로 여성영화 스트리밍 플랫폼 ‘퍼플레이(purplay.co.kr)’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성영화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다채로운 매력이 넘치는 여성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파마> 스틸컷 ⓒ인디플러그
<파마> 스틸컷 ⓒ인디플러그

 

당신은 차별주의자입니까? 이 질문에 곧바로 예, 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불쑥 화를 내는 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 너 나를 그런 사람으로 봤니? 깨어있는 시민인 내가 차별을 한다고? 말도 안 돼. 참 나.

한국엔 차별 같은 거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 인종차별이 어디 있어?” “성차별은 다 옛날 말이지” 그 해맑은 말들에 메슥거림을 느끼곤 한다. 그런 말을 아무 의심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특권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까. 유머랍시고, 친근함의 표시랍시고 흑인을 ‘흑형’ ‘흑언니’라 칭하는데. “오늘은 짱깨나 먹을까?”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일상적으로 하는데. 누군가를 비하하기 위해 “동남아같이 생겼네”라고 말하는데. 그럼에도 한국은 정말 차별 청정국가일까? 

최근에 벌어진 사건들을 생각한다. 의정부고 남학생들의 ‘관짝소년단’과 그것을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한 방송인 샘 오취리 씨를 몰아세워 도리어 사과를 받아낸 한국사회, 그리고 필리핀에서 일어난 반한 운동 ‘#CancelKorea(캔슬 코리아)’까지. 이 사건들은 특정 인종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한국 내에서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다시금 상기시켰다. 

파마 스틸컷
<파마> 스틸컷 ⓒ인디플러그

일련의 사태들을 보며 이란희 감독의 단편 <파마>(2009)가 떠올랐다.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로안(윤보라)이 주인공인 이 영화는 로안을 향한 주변인들의 무례한 발언을 통해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끈덕진 혐오를 보여준다. 동남아 국가,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멸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영화는 미용실에 앉아있는 로안을 비추며 시작한다. 시어머니(윤순자)의 손에 이끌려 미용실에 오게 된 로안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다. 본인의 긴 머리를 유지한 채 파마만 하고 싶었던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머리가 잘리니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런 로안을 달래던 시어머니는 로안이 계속 울며 자신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자 “뚝 그쳐! 시끄러워 죽겠네”라고 소리친다. 그리고서 정작 본인은 로안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말을 다다다 쏟아낸다. 

로안을 4살짜리 아이 또는 물건 대하듯 하는 시어머니의 태도를 곱씹게 된다. 로안의 취향은 그에게 알 바가 아니고, 의사는 물을 생각조차 않는다. “베트남에서 파마는 해봤겠어? 먹고 살기도 힘들 텐데”라며 로안의 고향을 낮잡아 보는 말엔 내가 다 상처를 입었다. ‘돈 들여서 파마 해주고 옷 사주고 잔뜩 해주는데 고마운 줄 알아야지’라는 마인드가 기저에 깔려있는 이의 태도에서 로안이 읽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친절일까 혹은 모멸일까. 

미용실 주인 신은숙(김정아)과 세탁소여자 강영순(송연수)이 로안을 두고 하는 말들은 어떤가. 영순이 로안의 국적을 맞혀보겠다며 여러 국가들을 읊는 도중 필리핀이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은숙의 대답이 이어진다. “필리핀은 더 시커메.” 그리고 뒤이은 대사들. “이쁘면 뭐하냐? 팔려온 건데. 그 집은 딸 팔아서 팔자 폈네.” 미용실 안을 가득 채운 혐오의 말들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마치 누군가를 찌르는 것 같다. 이름이 어렵다는 이유로 ‘얘, 쟤, 젊은 애, 아가씨, 저런 물건’이라 불리는 로안. 머리카락과 이름을 빼앗긴 그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할지 감히 헤아려본다. 

<파마>라는 작품이 세상에 나온 뒤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을까. 대놓고 차별을 하고 있음에도 그것이 차별인 줄 모르는 사람들, 그런 자신을 옳다고 믿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창비)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차별하는 사람에겐 차별이 보이지 않는다”고. 차별당하는 사람에게만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바로 차별인 것이다. 누군가의 지적에 ‘내가 차별주의자라니!’라며 버튼 눌리지 말고 ‘나는 차별주의자인가?’ 차분히 자문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때도, 이제는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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