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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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쓰러진 후 의식을 잃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살게 된 아내의 산소호흡기를 뗀 남성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당사자가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평소 가족에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수차례 가족에 밝혔다고 주장했지만 입원기간이 일주일에 불과한 점과 법적 절차를 거쳐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음에도 이를 기다리지 않은 점이 징역형의 이유가 됐다.

춘천지법 형사2부(재판장 진원두)는 10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모(59)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씨는 지난해 6월4일 충남 천안시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아내 A(56)씨의 기도에 삽관한 인공호흡장치를 손으로 완전히 뽑아 저산소증으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재판은 오전 11시부터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이씨 측 변호인은 A씨의 소생가능성이 없었던 점과 A씨가 생전 연명치료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이씨와 자녀들에게 알린 점, 하루 20~30만원에 달하는 병원비가 한국 국적이 아닌 이씨 가정에 부담이 된 점 등을 설명했다. 

이씨는 A씨와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중환자들의 연명치료에서 오는 고통이 장기간 본인과 가족에까지 심리적·경제적 고통으로 오는 것을 봤다고 밝혔다. 이에 A씨가 종종 가족 모두에게 ‘다른 가족에 짐이 되고 싶지 않으니 아파도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의사를 거듭 밝혔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병원 측 과실도 주장했다. 이씨가 A씨의 인공호흡장치를 손으로 뽑은 직후 이씨는 의료진의 제지로 중환자실에서 나갔다. 그러나 30분간 의료진 사이에서 인공호흡장치 삽관 여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씨 측 변호인은 “장치를 삽관하라는 담당 의사와 보호자가 재 삽관을 거부한다는 다른 의료진 간 의견 충돌로 피해자가 응급조치를 받지 못했으나, 이씨는 재 삽관을 거부한 사실이 없다”면서도 의료진 과실을 탓하는 것은 아니며 양형 참작사유로 고려해 달라고 밝혔다. 

검찰은 연명치료 기간이 일주일에 불과했던 점과 합법적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이씨 가족이 병원 쪽에 연명치료 중단 가능 여부를 문의해 법적 절차가 진행 예정이었으나 이를 기다리지 않은 것은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앞서 2년간 루게릭병으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던 남편의 호흡기를 제거한 아내가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판례를 들어 더 높은 형을 받아야한다고 밝혔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9명은 모두 ‘유죄’라고 판단했다. 양형은 배심원 5명이 징역 5년을 선택했고, 3명은 징역 4년, 1명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택했다.

재판부는 “인간 생명은 가장 존엄한 것으로서 가치를 헤아릴 수 없다. 국민참여재판 도입 취지에 따라 배심원 의견을 존중해 징역 5년을 선고하며, 도주 우려가 있어 법정구속한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존엄사’ 제도를 시행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2월 ‘호스피스·완하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화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을 도입했다.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놓거나 말기·임종기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계획서'를 쓰면 된다.

또 가족 2명 이상이 '평소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일치된 진술을 하거나 환자의 뜻을 모를 때는 가족 전원이 동의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31일 기준으로 국내에서 이 의향서에 서명한 이는 53만2667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가 도입된 2018년 9만1210명이 의향서를 작성했던 것에 견줘 1년 새 5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특히 지난해까지 서명한 이들 가운데 실제로 연명치료 중단 등의 결정이 이뤄진 사례는 약 15%인 8만여건에 이른다. 

이보다 앞서 2009년 대법원은 식물인간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연명치료를 이어가던 80대 김모씨에 대해 '존엄사 허용' 판결을 내리고 법제화를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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