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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을 다져야 할 국가가 사교육 시장까지 관리한다(?)<사진·민원기 기자>▶

교육현장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교육 실태와 대안을 모색했던 〈김정희의 교육실태 보고서〉가 이번호로 마칩니다. 이 칼럼은 지난 717호부터 지금까지 총 24회에 걸쳐 연재됐습니다. 필자는 생명여성주의자이며 공동육아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했고, 〈눈높이 엄마, 꿈높이 아이〉(책이 있는 마을)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이야기 하나. 한 사립고등학교의 운영을 몇 년 동안 책임졌던 관선 이사진은 학교 운영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 새로운 재단을 들이고 물러나기로 했다. 이 학교의 재단으로 두 곳이 신청을 했다. 한 곳은 학원 운영으로 천억원대의 돈을 벌은 모 학원 재단이었다.

다른 한 곳은 한국 기업으로는 매우 드물게 내수를 바탕으로 은행 대출 없이 흑자를 내고 있고 몇 년 전부터 회사 수익의 일정 비율로 장학 사업을 벌이고 있는, 그 기업 아이템 쪽에서는 국내 1위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 유수의 기업이었다. 모 고등학교 교장인 관선 이사장과 나머지 관선 이사진, 그리고 당시 고등학교 교감(새 이사진이 들어선 후 교장으로 발령됨)은 새로운 재단으로 전자를 선택했다.

교육위원 선거, 눈귀 막고 알아서 찍어

따라서 학원 강사로 출발해 거대 학원 재단의 이사장이 된 K씨가 그 고등학교의 새로운 이사장이 됐고 교장 이하 모든 교사들은 그 이사장을 학교의 최고 어른으로 모시게 됐다. 학교에 비영리적인 공적 투자를 할 마인드를 새 재단에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젖혀두고라도 학원장이 학교의 총수가 되는 것이 교사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관선 이사장과 학교의 교감은, 같은 동료 교사들에게 집단적 모욕을 안겨 주면서 무엇을 얻으려 한 것일까? 교사의 사기가 바닥인 학교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야기 둘. 작년 7월의 4기 교육위원 선거는 처음으로 학교 운영위원 전체 투표로 치러졌다. 그러나 선관위의 '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과열 선거운동 방지책은 마치 투표권을 지닌 운영위원들의 눈귀를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꽁꽁 막으려는 데 있는 듯했다. 선관위는 선거운동 방법으로 공보발송과 2차례의 소견 발표 및 언론사 등의 토론회 참여만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소견발표회는 낮에 열리기 때문에 직장이 있는 학운위원은 원천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등의 이유로 학운위원의 참여율은 50%에도 못 미친다. 전화와 개인 접촉은 물론 인터넷 홍보마저도 차단돼 서울지역 후보자 3명은 선관위 지적에 따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이력과 교육소신 등을 삭제해야 했다.

토론회를 개최하고자 하는 언론사도 거의 없거니와 시민단체에서 언론 토론회를 개최하려고 한 경우, 후보자들의 거부(사실은 무실)로 무산되기도 했다.

이런 식의 교육위원 선거에서 운영위원이었던 나는 우편으로 받은 공보 자료를 보고 대충 내 지지성향일 것 같은 후보를 어림짐작으로 찍어 투표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운영위원들은 교장 선생님께 '누구 찍을까요?'라고 물어서 추천 받은 그대로 혹은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찍었다고 했다.

국가가 사교육시장 질 관리까지

아이 학교의 급식문제(본지 722호)로 교육청에 몇 차례 진정서를 내고 교육위원들을 찾아가 해결책을 구하던 나는 도와주려는 몇몇 교육위원들로부터 교육위원회에서 '사립학교 진상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제대로 조사하겠다는 답을 들었다. 당시 아이가 다니던 학교의 급식 사례 말고도, 진정이 들어오는 사립학교의 부실 운영 사례가 한두 건이 아닌 듯 했다.

그런데 진상조사위원회 결성은 찬성 7, 반대 8로 부결됐다. 선거인단의 눈귀를 꽁꽁 막고 교육위원 선거를 치르게 한 '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의 위력이 상당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법률을 만든 국회의원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다음 선거 때, 운영위원들은 어떤 후보들이 이런 개혁안에 찬반표를 던졌는지, 그리고 이런 저런 개혁안을 지지하고 밀고 나갈만한 사람인지 알고 투표할 수 있을까?

이야기 셋. 작년 10월 규제개혁위원회는 “서울과 대구·경북·충북·강원 등 5개 시·도교육청에서 조례로 학원교습시간을 밤 10시나 12시까지로 제한한 것은 상위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규제”라면서 삭제하거나 법령개정을 요구했다. 그리고 규제개혁위원회의 이 요구에 따라 해당 교육청들은 심야교습 단속을 중지했고 교습시간을 제한한 조항도 삭제해가기로 했다.

규제개혁위원회는 1998년 4월 행정규제기본법에 의해 불필요한 행정규제를 폐지하고, 비효율적인 행정규제의 신설을 억제함으로써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 경쟁력의 지속적인 향상을 위해 대통령 자문기구로 신설됐다.

국무총리(당연직 위원장), 민간공동위원장, 민간위원 12인, 정부위원 6인(재정경제-행정자치-산업자원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공정거래위원장, 법제처장) 등 총 20인으로 구성된다. 우리 사회 최고의 민·관 엘리트들이 사교육 팽창을 지지하는 조처를 국가 경쟁력 향상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이번 달 초 교육인적자원부는 '학력경시대회 실태'에 관한 세미나를 열고 “사교육비 증가를 불러온 학력경시대회를 정비하기 위해 연말까지 인증제 도입방안, 인증 형태, 기준, 주최 등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대학교육협의회 선임연구원은 “대회가 난립하면서 경시대회 주최기관은 참가자를 늘리려 응시자의 절반에게 상장을 남발하고 이 때문에 경시대회가 신뢰를 잃어 대학에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고교 교사는 대학교육협의회 주관으로 경시대회 등록을 받는 방식의 인증제를 제안했으며, 엄기형 교육부 국민제안참여센터 소장도 “인증제는 사교육시장의 질을 국가가 관리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지난 번 대선 때 당선되면 교육인적자원부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대통령 입후보자가 떠올랐다. 그 후보자를 지지하진 않았지만, '교육 정책 하나는 정곡을 짚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교사, 교육인적자원부 모두들 제정신이 아닌 듯 싶다.

대학이 경시대회를 인정하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경시대회 열풍은 저절로 사그러들 걸, 국가가 인증제까지 시행하면서 사교육 질을 관리해주겠다니.

규제개혁위원회나 교육인적자원부의 조치를 보면서 국가와 대학과 최고 엘리트들, 공인과 공공기관까지 자기편으로 만드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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