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섀도우캐비넷을 만든 이유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시는 분들이 제일 멋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미뤄두고 있던 일을 나서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며칠 전 회사 창업 소식을 알렸을 때 받은 응원 메세지다

회사를 하나 만들었다. 이름은 섀도우캐비닛이다. “정부 운영은 기업 경영과 다릅니다.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것과도, 글쓰고 주장하는 것과도 다릅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정책 간의 연계성을 확보하여 한정된 국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일입니다. 시민들과 국회행정부, 기업과 단체 등 국가를 구성하는 여러 주체들에게 국정운영 계획을 명확하게 제시하여, 국가를 합리적효율적통합적으로 이끌어가는 일입니다. 정교하고 종합적인 문제해결 능력과 팀워크가 필요합니다. 체계적인 훈련과 공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회사 소개글에 담은 내용이다

 

시민단체, 대학 부설 연구소, 아카데미 등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하다가 지난 몇 년 동안 시간제임기제 공무원과 별정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그 때 한 단어를 알게 되었다. ‘어공이라는 단어였다. ‘어쩌다 공무원의 준말로, 시험을 쳐서 공무원이 되는 직업 공무원 말고, 임기제 공무원 같은 개방형 직위나 선거로 취임하거나 임명할 때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정무직 공무원과 정무직 공무원을 보좌하는 업무 수행을 맡은 별정직 공무원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국가공무원법 제2조 제3항에서는 정무직 공무원에 대해 고도의 정책결정 업무를 담당하거나 이러한 업무를 보조하는 공무원으로서 법률이나 대통령령(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의 조직에 관한 대통령령만 해당한다)에서 정무직으로 지정하는 공무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구체적인 직급을 놓고 보면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국회의원 등 국가의 정무직 공무원, 지방자치단체의 장, 지방의회의원 등 지방자치단체의 정무직 공무원과 이들이 임명하는 임명직과 이들의 보좌하는 별정직 공무원들이 있다. 시험을 쳐서 공무원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간단한 기준만을 놓고 보면, 이 직급에 해당하는 공무원들이 다 이 어쩌다 공무원에 포함된다

전통 직업 공무원 트랙과 임명직, 별정직, 개방직 등으로 행정부에 들어오는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된 말 같지만, 나는 이 단어가 내 못마땅했다. ‘어쩌다라는 단어에 정규 트랙이 아닌데, 할 깜이 아닌데,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운이 좋아 됐는데라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아서다

오랜 세월, 사회 속에서 리더십을 검증 받아 시민들을 섬길 수 있는 자리에 오른 사람들을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라고 호명하는게 맞는가라는 질문이 들었다. 선출직 공직자들이 시민들에게 약속한 바들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보좌 역할을 맡은 임명직과 별정직 공무원들을 어공이라고 호명하는 것이 적절한 일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직업 공무원들이 행정이라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정무직들은 그 기술을 이용해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어떤 항구를 향해 나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들이다. 시대 흐름을 읽고, 여론을 이끌고,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해가는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다. 이런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이들을 어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들을 믿고 정부를 운영할 권한을 위임해준 시민들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실 이 단어는 어공 출신들이 더 많이 썼다. 내가 만난 어공 대부분이 크게 문제의식 없이 어공 출신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왜일까. 왜 우리 안에 어공이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이 없을까 고민해봤다. 결론은 시스템의 부재였다. 정무직, 임명직, 별정직 등의 공직에 오르기까지의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어쩌다 공무원이 되었기 때문에 본인도 어공'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크게 거부감이 없는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개별사례들을 보면 각자 자기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결과이지만, 인재 육성 시스템에 의한 것이 아니다보니, 그 직위를 맡는 것이 자신에게도 혹은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서도 랜덤 혹은 로또 같아 보이는 것이다

정무직, 임명직, 별정직 공무원 트랙이 이렇게 랜덤이고 로또 같은 것은 국가 전체로 봤을 때 마이너스다. 시스템이 없다보니 국정 운영 기술이 축적되지 못한다. 앞서 국정을 운영해본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배울 수 없으니, 매번 비슷한 경우를 똑같이 겪고 지나간다. 그 좌충우돌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진 못해도 다음 세대들이 국정을 운영할 때는 지금과는 다르길 바랬다. 그래서 섀도우캐비닛을 만들었다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

 

*연재명 [회색지대] :  세상의 많은 일은 흑백, 선과 악으로 정확하게 구분지을 수 있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습니다. 우리의 삶이 매우 복잡하고 때론 모순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상대방을 악마화하지 않으면서도, 사회 공익을 위해 협력할 수 있을까’. 내 주장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삶의 많은 부분이 선명한 흑백이 아닌 회색에 더 가깝다는 걸 인정할 때, 서로 힘을 합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더 많은 회색지대가 만들어졌으면 또 인정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연재 제목을 '회색지대'로 정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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