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처벌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후 1년4개월
여전한 사회적 낙인과 ‘부르는 게 값’인 중절수술
원치 않는 임신한 여성들은 지금
감염병 확산·의료계 집단휴진 겹쳐 ‘발 동동’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처벌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여성이 안전하게 섹스하고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세상’은 아직도 멀어만 보인다. 재생산 건강권 보장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서두르지 않는다면, 여성이 임신중지의 위험을 홀로 감내해야 하는 상황은 변치 않으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Freepik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처벌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여성이 안전하게 섹스하고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세상’은 아직도 멀어만 보인다. 재생산 건강권 보장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서두르지 않는다면, 여성이 임신중지의 위험을 홀로 감내해야 하는 상황은 변치 않으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Freepik

 

코로나 19, 의료계 집단휴진,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법제도 미비. 한국 사회에서 임신중지를 고민하는 여성들이 당장 맞닥뜨리는 문제다. ‘낙태는 죄’라는 사회적 낙인에, 최근 감염병 확산·의료 공백까지 겹치면서 적절한 도움을 제때 받기 어려워진 여성들은 불법유통 약물이나 위험한 자가 낙태를 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미국에서 거주하던 한국 여성 A씨는 올해 초 미국 내 감염병 확산을 피해 귀국,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해외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고립됐다는 불안과 외로움이 컸다. 우연히 전 애인이 한국에 있음을 알게 됐고, 연락을 이어가다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최종 음성 판정을 받고 격리 해제된 직후에야 A씨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깨달았다. 아이를 함께 기르자던 남자는 연락을 끊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임신 4주차에 접어들었다. A씨는 “비록 단 한 번이었지만 외로움을 못 견디고 자가격리 수칙을 위반했고, 그 결과 원치 않은 임신을 했다. 살면서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일들이 겹쳐 일어나 너무 당황스러웠다. 가족에게조차 말하기가 부끄러웠고, 도움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도 잘 몰랐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A씨는 임신중지를 결심했고, 온라인 상담을 거쳐 몇몇 병원을 찾아갔다. 처음 찾아간 병원에서 “모자보건법상 허용 사유가 아니”라고 퇴짜맞았다. 다른 병원은 “위험 부담”을 들어 타 병원 제시 비용의 2배를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에선 임신 합병증 소견이 있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 사이 의료계 집단휴진이 시작됐다. A씨가 찾아간 몇몇 상급 종합병원들은 “지금은 여력이 없어 신규 환자를 받을 수 없다” “담당 전공의가 휴진 중이라 원하는 진료를 받으려면 기다리셔야 한다”고 했다.

어느덧 A씨는 임신 10주차가 됐다. 임신중지 비용도 위험도 그동안 몇 배로 치솟았다. 미국으로 돌아가 시술을 받기로 했다는 A씨는 “저처럼 힘들어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여준 한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선 임신중지를 고민하는 여성 10여 명이 모여 각자의 고통을 호소하고 정보를 나누고 있었다. “성공한 분도 있지만, 지금처럼 코로나19에 의료계 집단휴진까지 겹치는 때에는 필요한 도움을 신속하게 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처벌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여성이 안전하게 섹스하고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세상’은 아직도 멀어만 보인다. 헌재가 정한 개정입법 시한까지 겨우 4개월 남았다. 재생산 건강권 보장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서두르지 않는다면, A씨가 그랬듯이 여성이 임신중지의 위험을 홀로 감내해야 하는 상황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이어보기 ▶ 수술비 200만원 올리고 진료예약 “안돼요”...안전한 임신중지 더 어려워져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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