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웹툰 ‘오빠가 사라졌다’ 경선 작가
텔레그램 성착취·안일한 사법집행에 분노해 그린 만화
일상의 범죄 깨달은 여성들의 변화·연대에 주목
“가해자·피해자 아닌 달라질 ‘우리’에 집중”

경선 작가의 웹툰 ‘오빠가 사라졌다’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문제와 과제를 따져 묻는다. ⓒ경선 작가
경선 작가의 웹툰 ‘오빠가 사라졌다’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문제와 과제를 따져 묻는다. ⓒ경선 작가

오빠가 사라졌다. 성착취물 소지만 해도 징역 3년에 처하는 디지털 성범죄 특별법 시행 후, 오빠를 포함해 무수한 남성들이 체포됐다. 남은 이들은 당혹과 분노에 잠긴다. 내 가족, 남편, 동료가 성범죄 가해자임을 하루아침에 깨닫게 된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

“이 시국 웹툰”으로 불리는 ‘오빠가 사라졌다’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문제와 과제를 따져 묻는다. 디지털 성범죄가 거대 산업이 된 사회, 26만명이 텔레그램 성착취에 가담하는 사회. 만화는 일상에 스며든 범죄를 깨달은 여성들의 분노와 고뇌, 변화와 행동에 주목한다.

젊은 한국 여성이자, 소수자의 시선으로 만화를 그려온 경선 작가에게 ‘오빠가 사라졌다’ 작업은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높이는 경험이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접하고 말을 얹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그린 만화다. 한국에서 만화를, 프랑스에서 만화와 미술사를 공부한 경선 작가는 2018년 프랑스 유학 중 겪은 차별과 혐오 문제를 그린 웹툰 ‘데일리 프랑스’로 데뷔한 이래 작품과 SNS를 통해 여러 사회 문제에 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냉정한 현실 인식을 보여주면서도, 작가는 다양한 세대와 처지의 여성들 간 연대와 변화에 주목한다. ‘오빠가 사라졌다’ 속 여성들은 ‘n번방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젊은 여성 캐릭터들은 물론, 성범죄 가해자 아들을 둔 중년 여성 캐릭터도 고질적인 성차별에 눈뜨고, 스스로 공부하며 변화하는 모습이 긴 여운을 선사한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범죄 묘사는 한 컷도 없다.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복잡한 고민을 남기지만, 그래도 이 만화가 반가운 이유다. 자신을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경선 작가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최근 종이책으로 출간된 웹툰 ‘오빠가 사라졌다’의 경선 작가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최근 종이책으로 출간된 웹툰 ‘오빠가 사라졌다’의 경선 작가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넥서스북스

 

- ‘오빠가 사라졌다’ 완결과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 작품을 그리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n번방’ 사건을 접하고 그 안에서 일어났던 인권유린과 성 착취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저도 많은 이들처럼 분노했고 억울했고 슬펐습니다.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사건임에도 많은 여성들이 함께 분노했던 것은, 그동안 사회가 보여줬던 성범죄에 대한 안일한 인식, 가벼운 처벌 탓이 컸을 겁니다. 사법부는 성범죄 가해자가 얼마나 미래가 창창한 청년인지, 성실한 가장인지에 더 주목했고, 그런 건실한 구성원을 강력 처벌하면 사회에 큰일이라도 일어나는 양 굴었죠. ‘오빠가 사라졌다’는 그들을 모두 잡아들이면 정말 그렇게 큰 혼란이 오고 우리 사회가 무너질까? 하는 조금은 과격한 상상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데뷔작 연재 중이었고, 차기작도 생각 중이었지만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말을 얹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저를 소개할 때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많이 써왔는데, 이번에도 그런 순간이었던 거죠.”

경선 작가의 웹툰 ‘오빠가 사라졌다’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문제와 과제를 따져 묻는다. ⓒ경선 작가
웹툰 ‘오빠가 사라졌다’ 속 텔레그램 성착취에 분노한 여성들의 시위 장면. ⓒ경선 작가

- ‘오빠가 사라졌다’는 여성들의 연대로 시작되는 구조적 변화의 가능성에도 주목합니다. 마지막 장을 덮은 독자들이 어떤 논의를 이어가기를 기대하시나요?

“20대, 30대, 50~60대의 각자 다른 시선을 담아보려 노력했고, 세대 간의 다름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는 담지 않았어요. 이 이야기에서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달라질 ‘우리’에 더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참 많은 시위에 참여했어요. 피해 당사자들과 연대하고 지지하고,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서로를 껴안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은과 영인 자매처럼 우리도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나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목 ‘오빠가 사라졌다’는 잡혀간 영재를 가리키지만, 여성 연대로써 가부장제가 무너지기를 바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 전작 ‘데일리 프랑스’에서 젊은 아시아 여성의 시각으로 본 프랑스 사회, 인종차별·여성혐오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내셨습니다. 연속해서 여성의 이야기,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계십니다. 차기작은 어떨까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원래 ‘데일리 프랑스’에 이어 여성 우주탐험가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는데, ‘오빠가 사라졌다’를 계기로 비슷한 결의 기획이 들어와 논의 중입니다. 확실히 앞으로도 여성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를 그리게 될 것 같아요.”

웹툰 ‘오빠가 사라졌다’의 한 장면. ⓒ경선 작가
웹툰 ‘오빠가 사라졌다’의 한 장면. ⓒ경선 작가

- 최근 ‘여성서사’를 요구하는 대중문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사회적 현상으로 떠올랐습니다.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여성이 소외되지 않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셨을 듯해요.

“현실의 여성들처럼, 작품 속에도 다양하고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있겠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통해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싶은가’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귀여움’을 이용해 취업에 성공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할 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약자 혐오’는 아닌지, 현실의 위계에 의한 성범죄를 부정하는 것인지 숙고하는 게 창작자의 일이라고 믿습니다. 작품 속에서 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실수하고 부족하더라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리고 싶고, 독자분들도 그렇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간 잔인한 악플들도 받아봤어요. ‘데일리 프랑스’ 독자 후기 중 “작가 본인 이야기라는데, 여자치고는 너무 감정적이지 않다. 티나게 담담한 척 하는 것 같다”는 내용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제 작품 속에서 저는 평범한 여성들처럼 아무 생각이 없기도 하고, 무기력하기도 하고, 희망차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여자라면 얼마나 감정적이어야 하는 걸까?” 생각하며 웃음이 났죠.”

- 좋아하는 ‘여성서사’, 혹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가 있다면 하나 말씀해주세요.

“너무 많은데... 다드래기 작가님의 ‘얼렁뚱땅 병상일기’ 를 추천하고 싶어요. 독신 여성의 산부인과 질환 투병기를 재미있게 그리면서도, 독신, 직장인, 여성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면도 담아내고, 중간중간 유용한 정보도 들어있어요. 웃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많이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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