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명인·남자아이돌도 입은
페미니스트 문구 티셔츠
유독 여자아이돌만 논란
“여성 아티스트 언행 하나만 보고
페미니스트 여부 가르는 잣대 문제적”

사진=조이 인스타그램

최근 그룹 레드벨벳 멤버 조이는 정장 재킷 안에 입은 티셔츠로 인해 황당한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탈퇴하라"는 악성댓글까지 받은 이유는 해당 티셔츠가 이른바 '페미니스트 티셔츠'이기 때문이었다. 해외 유명인이 입을 때는 전혀 문제되지 않던 옷이 여성 아이돌이 입자 달라졌다. 여성 아이돌을 향한 유별난 잣대가 작동한 탓이다. 

조이는 지난 1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몇 장의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에서 조이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WE SHOULD ALL BE FEMINISTS)는 뜻의 영어 문구가 써진 티셔츠를 재킷 안에 입고 있었다. 사진이 공개되자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걸그룹 멤버가 페미니스트 티를 내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힐난이 지속됐다.

그가 입은 티셔츠는 패션 브랜드 ‘디올’(Dior)의 최초 여성 수석 디자이너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의 작품이다. 국내에서 논란이 된 문구는 치우리가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의 저서 ‘We Should All be Feminists’의 제목을 티셔츠에 새긴 것이다. 아디치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뽑은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선정된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다. 그는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것이라며 남성에게도 연대를 요청한다. 이 책은 스웨덴에서 청소년 교육 필독서로도 선정됐다. 

치우리는 젊은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디자인을 표방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패션쇼에 대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디올의 화이트 티셔츠가 런웨이를 강타했을 때 그것이 바로 제가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였다”며 “패션은 메시지를 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세계의 관중들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디올 뿐 아니라 타 명품 브랜드에서도 패션과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2015년 이후 글로벌 럭셔리 업계는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명품 브랜드 ‘샤넬’(CHANEL)도 앞장서고 있다. 평생을 여성해방을 위해 노력한 브랜드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에 이어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고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는 2015년 봄 컬렉션에서 “여성이 먼저다(레이디스 퍼스트)”, “History is Her Story”와 같은 페미니즘 메시지를 패션에 선보였다. 최근에는 화장하는 남자 ‘보이 드 샤넬’ 메이크업 라인을 내놓아 성 고정관념을 붕괴시켰다.

페미니즘 문구가 적힌 디올 티셔츠를 입은 유명인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조이만?…국내외 셀럽들이 즐겨 입은 티셔츠

디올 티셔츠는 조이만 입은 것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배우 김혜수·정유미, 가수 현아, 가수 겸 배우 수지 등이 입었다. 해외에서는 가수 리한나, 래퍼 에이셉 라키, 배우 샤를리즈 테론·제시카 채스테인·제니퍼 로렌스, 모델 켄들 제너 등 수많은 셀럽들이 입었다. 특히 해외에서는 특정 시선 없이 자유롭게 셀럽들이 해당 제품을 일상·화보 등에서 착용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왼쪽)과 진이 입은 맨투맨 티셔츠에 성평등 관련 문구가 적혀 있다. 해당 맨투맨 티셔츠는 패션 브랜드 '아크네 스튜디오'의 제품이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그룹 뉴이스트의 렌이 착용한 페미니즘 문구가 적힌 티셔츠.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남성 아이돌도 페미니즘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 그룹 방탄소년단 지민과 진은 ‘GENDER EQUALITY’, ‘RADICAL FEMINIST’라고 적힌 아크네 스튜디오 제품의 맨투맨 티셔츠를 착용했다. 그룹 뉴이스트 렌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A girl is a gun’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출연했다.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티셔츠이지만 논란은 조이가 입었을 때만 커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남성 팬덤을 가진 걸그룹 멤버가 페미니스트 티셔츠를 입는다니, 이해가 안 간다”며 비난했다. 

앞서 조이는 방송인 곽정은이 올린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다가 일부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여성 아이돌에게 엄격한 페미니즘 잣대

조이뿐 아니라 여성 아이돌에게 유독 비슷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조이와 같은 그룹 멤버 아이린이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밝히자 일부 남성 팬들이 탈덕을 선언하며 악성댓글을 남겼다. 그룹 에이핑크 멤버 손나은은 ‘GIRLS CAN DO ANYTHING’(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이라고 적힌 휴대폰 케이스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을 때 일부 누리꾼들은 그가 ‘페미니스트’라며 비난 댓글을 쏟아냈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적이 없는데도 페미니즘 굿즈를 착용하고 관련 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설에 올랐다. 

티셔츠 한 장으로 페미니스트인가 판가름 받는 문화

페미니즘 구호가 적힌 옷을 입었다는 것이 페미니스트 여부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는 것은 문제적이다. 은사자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활동가는 “여성 아티스트의 행동 하나, 말 하나에 페미니스트가 맞는지 아닌지 여부를 가르는 잣대 자체가 문제적”이라며 “유독 여성 아티스트에게 가해지는 문제적인 행태”라고 설명했다. 

그룹 마마무 멤버 솔라는 솔로앨범 의상 콘셉트가 ‘아동스럽다’며 일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나 이전에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여성 할례의 문제점을 알리는 동영상을 올렸을 때는 그들로부터 페미니스트라고 지지를 받기도 했다. 

특히 여성 아이돌에게 엄격한 잣대가 작용되는 것에 대해서는 “여성 아이돌을 소비하는 방식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성 아이돌들은 보통 페미니즘 이슈가 아니어도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면 비난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여성 아이돌은 개인이 아닌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이미지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이미지가 아닌 의견을 낼 수 있는 개인이라는 사실과 마주할 때 분노를 터트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성 아이돌이 페미니즘 의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이전과 달리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직접적으로 내는 여성 아티스트가 많아진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여성 아이돌을 문제적인 방식으로 소비하고 재현되는 한국사회에서 여성 아티스트 스스로가 겪는 수많은 부딪침이 있을 것”이라며 “부딪침이 많다는 이야기도 되고, 이 같은 현실에 대해 부정하고 싶어하는 자기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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