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가 20일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을 펴냈다. 지난해 인권위가 접수한 성희롱 진정 사건은 역대 최다인 303건을 기록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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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간에 발생하는 일반적인 성희롱 행위는 현행법에서 성폭력범죄로 규율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성폭력범죄 아닌 성희롱은 1차적으로는 기관이나 단체 내에서 발생하는 통상적인 비위행위와 마찬가지의 절차를 거쳐 징계의 대상으로서 다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말인즉 이는, 특정한 행위가 성희롱인지 아닌지에 관해서는 수사기관을 거쳐서 곧장 사법부의 당부 판단을 받기는 어렵고, 많은 경우 일단 비법률가들의 손에서 징계 여부가 결정된 연후에 법원의 민사 또는 행정 재판부를 통해서 그 징계의 당부 판단을 사후적으로 받을 수밖에는 없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사기업체든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이든 간에 그 내부에서 초기 단계의 성희롱 사건조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특별한 법적 훈련을 받은 바가 없거나 조사 경험이 많지 않은 경우는 매우 흔하다. 오히려 그 반례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물론, 반드시 법률가만이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형사재판에 있어서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으로 배심재판 제도가 시행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사실 여부에 대해서만큼은 합리적인 상식을 갖춘 평범한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진지한 관찰과 숙고를 통해서 얼마든지 온당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 낼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이 배심제도의 기틀이다. 그러한 믿음이 올바르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숱한 사례들을 통해서 확인되어 왔다. 성희롱 사안에 대해서도 다르게 볼 이유는 없다.

그러나 어쨌건 성희롱 사안에 관한 조사와 심의, 조치사항의 결정까지 그 절차 전반에 대해서 주로 비법률가들이 대부분의 역할을 도맡아야 하는 것이라면, 혹시 모를 법적 오류 가능성을 항시 염두에 두고서 아주 조심스럽게 한 단계 한 단계 절차를 진행해 나갈 필요가 매우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와 같은 연유에서 오늘은 성희롱 사안의 판단원칙에 관한 중요한 대법원 판결을 함께 읽어보기로 하자. 실무상 혼선을 빚을 가능성이 있는 내용이 담겨 있는 구절이어서 꼼꼼히 따져보면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이렇게 밝혀두고 있다.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에서 사실의 증명은 추호의 의혹도 없어야 한다는 자연과학적 증명이 아니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험칙에 비추어 모든 증거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볼 때 어떤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지도이념과 증명책임, 증명의 정도 등에서 서로 다른 원리가 적용되므로, 징계사유인 성희롱 관련 형사재판에서 성희롱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확신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소사실에 관하여 무죄가 선고되었다고 하여 그러한 사정만으로 행정소송에서 징계사유의 존재를 부정할 것은 아니다(2017두74702 판결).”

일견 간단한 내용 혹은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칫 잘못 읽게 되면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구절이다. 비법률가의 눈으로 위 문언을 행여 피상적으로 오독하게 된다면, 형사재판에서는 특정한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부정된 바가 있더라도, 다른 종류의 절차에서는 ‘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그 성희롱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서 징계나 그 밖의 조치를 취하더라도 무방하다는 식으로 생각할 여지가 없지 않다. 아래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비록 우리나라의 최고법원이 판시한 내용이기는 하나, 조금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최소한 문면상으로는 없지 않은 구절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발생 가능성이 좀 더 큰 경우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갑이라는 사람이 피해자 을의 면전에서 A라는 내용의 말을 했다는 이유로 을이 갑을 형사고소를 했다. 그런데 수사기관이 수사를 해 보니, 갑은 A라는 내용의 말을 한 사실은 있었지만 이를 통신매체 이용 음란행위로 볼 수는 없었고, 모욕죄가 성립한다고 보기에도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검사의 처분은 혐의없음 불기소처분.

하지만 잘 생각해 보자. ‘법리적 평가’에 의거하여 불기소처분이 있었다고 하여, 여기서 갑이 A라는 말을 한 ‘사실 그 자체’가 애초부터 전혀 없었다고 판단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특정한 행위가 통신매체 이용 음란행위죄 또는 모욕죄로 ‘평가’되기는 어렵다고 해서, 그 행위가 성희롱으로서의 법적 성격을 처음부터 가지지 않는다고 볼 이유 또한 없다. 다시 따져보아야 할 문제가 될 뿐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어떠한 사실이 있었다는 그 자체가 인정될 때 그에 대한 평가적 차원에 있어서 이를 형사범죄로서 인정하기는 어렵더라도 성희롱으로서는 충분히 인정이 가능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하지만 – 존재했었음이 인정되는 특정 행위에 대한 법리적 평가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 문제가 되고 있는 어떠한 행위의 ‘존재사실 그 자체’가 형사재판을 통해서 부정되었는데, 형사재판이 아닌 다른 형식의 절차, 이를테면 기관 내부의 징계절차나 민사 또는 행정소송 등에 있어서는 그 똑같은 행위가 실제로 존재했었던 것으로 인정되고, 평가상으로도 성희롱으로 판단될 수 있는 경우를 상정하기란 가히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숙고해 보건대, 현실 속에서 과연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성희롱’은 그 자체만으로는 형사범죄가 아니다. 따라서 특정한 사실관계가 사법부의 판단을 몇 번씩 거치게 된다 한들 그 내용상으로 성폭력범죄에 동시에 해당될 수 있는 행위사실이 아닌 한에서라면, 이는 ‘성희롱’으로서는 무죄판결이 나올 수밖에는 없다. 이 점에 있어서도 대법원의 위와 같은 판시사항에는 읽는 이에게 혼동을 유발할 수 있는 소지가 있기에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다.

대법원이 위의 판결을 통해서 밝혀두었다시피, 지도이념과 증명책임, 증명의 정도 등에서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에는 서로 다른 원리가 적용되는 것은 맞다. 사실로서 인정되는 어떤 행위가 성폭력범죄는 아니더라도 그 내용 여하에 따라서는 여전히 민사책임에 해당하는 성희롱일 수 있음은 분명하다. 이 점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주어진 자료에 비추어 볼 때 고도의 개연성이 확인될 수만 있다면 법률가이든 법률가가 아니든 간에 우리 모두는 합리적인 양식에 입각하여 그 사실 여부를 판단해 볼 수 있다. 최선의 주의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밝혀 둔 내용 중에서 “관련 형사재판에서 성희롱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확신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소사실에 관하여 무죄가 선고되었다고 하여 그러한 사정만으로 행정소송에서 징계사유의 존재를 부정할 것은 아니다.”라는 부분은, 아무리 반복해서 다시 읽어보아도 여기에 오해의 여지가 적어도 어느 정도는 포함되어 있음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행위가 있었다는 바로 그 점을 확신하기가 어려워서 무죄판결이 선고되었다는 것인데도 그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인정해도 좋다고? 이 구절은 정말로 이런 뜻인가?

먼저 이 구절을, “성희롱 행위와 관련된 형사재판에서 그 판단된 행위가 존재하였다는 점은 사실로 인정되었으나, 평가적 관점에서 볼 때 성폭력범죄에 이르는 내용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공소사실에 관하여 무죄가 선고되었다고 하여, 그러한 사정만으로 징계사유의 존재를 부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바꿔 읽어야 옳은 것은 아닐까? 보는 관점과 기준에 따라서 평가를 달리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여부 그 자체에 대한 인정을 애초부터 달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이례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 더 꼼꼼하게 읽어보면 위 대법원 판결은 ‘형사재판에서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사정만으로 바로 그 행위가 없었다고 볼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노파심에서 다시 강조하건대, 이것은 ‘바로 그 행위’가 존재했었다고 마음대로 달리 판단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형사재판에서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확신하기 어려웠다고 하더라도 ‘징계사유가 곧바로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라고만 밝혀두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고?

이를테면 특정한 민감신체 부위에 대한 접촉사실이 실제로 있었는지의 여부까지를 명명백백하게 확신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모든 자료를 종합해 보았을 때 모종의 부적절한 접촉행위는 있었다고 하는 자체는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형사상의 유죄는 아니더라도 징계사유의 존재는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의 위 판시취지는 이렇게 섬세하게 읽힐 때에야 비로소 그 복잡미묘하고도 까다롭기 그지없는 원래의 의미가 제대로 살아나게 된다.

그러나 위 판례가, 형사재판에서는 갑이 바로 그 시각 그 장소에 없었다는 취지로 판단되었는데, 형사재판 아닌 다른 절차에서는 갑이 바로 그 시각 그 장소에서 성희롱을 했다는 취지로 인정해도 좋다는 뜻으로 잘못 읽히는 순간, 우리의 결론은 저 멀리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를 향해서 떠나버리고 말 것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동시에 살아 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한 존재란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라면 이 기이한 이야기는 참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상식세계에서, 특정한 구체적 행위사실이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너무나도 미묘하고 중차대한 쟁점에 관한 대법원의 언명에 오독의 소지가 없지 않다는 점을 발견하곤, 오늘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한 번 머릿속에 떠올려 보게 된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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