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처한 고된 현실의 모순
보여주던 블랙 코미디 만화
여성이 어떻게 사회 살아내는지
이해와 숙고 없이 그려낸 ‘봉지은’
실패한 풍자이자 재미 놓친 실패작

기안84는 ‘복학왕’ 53화에서 여성 캐릭터 봉지은이 동아리 주점에 남학생들을 많이 데려오니 ‘룸나무’라고 표현한다. 룸나무는 룸살롱과 꿈나무의 합성어로 여성혐오 단어다. ©복학왕, 뉴시스
기안84는 ‘복학왕’ 53화에서 여성 캐릭터 봉지은이 동아리 주점에 남학생들을 많이 데려오니 ‘룸나무’라고 표현한다. 룸나무는 룸살롱과 꿈나무의 합성어로 여성혐오 단어다. ©복학왕, 뉴시스

 

기안84의 웹툰 <복학왕>이 또다시 논란에 올랐다. 지금은 대게로 수정된 조개 장면이 논쟁을 촉발했지만, <복학왕> 303-304화 ‘광어인간’ 에피소드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문제였다.

문제가 된 장면에서 그려진 ‘봉지은’은 주인공 우기명과 같은 ‘기안대’를 다녔던 학생으로, 우기명의 전 여자친구이자 우기명이 과거 ‘룸나무’라고 비하한 바 있는 캐릭터다. 밑바닥 인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봉지은과 우기명은 같은 선상에 있지만, 우기명은 기안그룹에서 중고차 사업을 살려내는 등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반면 봉지은은 취업에서조차 그저 성적인 대상으로만 남는 데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광어인간’에서 봉지은은 문서 작성 프로그램도 쓸 줄 모르는 데다 심지어 독수리타법으로 그려진다. 독자들은 댓글에서 봉지은의 이러한 모습을 ‘캐붕(캐릭터 붕괴)’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봉지은은 학창시절부터 수없이 피시방에서 밤을 지새웠던 이력이 있는 캐릭터다. 그가 아무리 긴장했다고 한들 손가락으로 키보드 자판을 하나하나 찾는 건, 전과 같은 인물이라고 도무지 믿기 어렵다. 40대의 미혼 남자 팀장과 사귄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미 구구절절할 정도로 봉지은의 연애사가 연재된바, 그 팀장은 아무리 회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봉지은이 사랑할 수 있는 유형의 남자가 아니다(봉지은은 이미 그와 비슷한 남성을 찬 이력이 있다).

‘광어인간’에서 봉지은은 일관된 특징을 갖고 등장하는 연속성 있는 캐릭터로서의 봉지은이 아니라 기안84의 (그때그때 달라지는 데다 정확하지도 않은) 문제의식을 투영하기 위한 ‘여성 캐릭터 1’로 활용된 데 지나지 않는다. 독자들이 기안84에 대해 분노한 건, 그가 사회적 약자 정체성을 그저 도구적으로 남용할 뿐인 데에 대한 강력한 저항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에 반해, 기안84를 옹호하는 일부 독자들은 <복학왕>이 ‘원래 그런 만화’라고 말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복학왕>은 본래 소수자들을 희화화하는 비윤리적 만화가 아니라, 많은 청년이 처한 고된 현실의 모순을 몇 가지 상황들로 형상화시켜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블랙 코미디 만화다. 누구든 자신의 조건(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조건)에 대해서는 그럴듯한 서사를 통해 낭만화하거나 합리화하곤 하는데, <복학왕>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판단하고 그것을 희화화하며 풍자하는 만화로서 독자들에게 큰 공감과 인기를 샀다. 고등학교에서 패션왕으로 날리던 우기명이 패션 모델로서 성공을 꿈꿨지만 계속해서 실패하며 현실의 맨바닥에 내던져지고, 이를 극복하려고 발버둥 치면칠수록 자신의 꿈과 더 괴리되며, 꿈에 그린 듯이 멋진 연애를 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부끄러운 밑바닥만 내보이는 것이 <복학왕>의 중심 서사다.

기안84 ‘복학왕’ 논란 장면들. ©복학왕
기안84 ‘복학왕’ 논란 장면들. ©복학왕

 

지금까지 <복학왕>은 우기명을 통해 마이너 감성을 유지하는 데에 성공해왔지만, 여성·장애인·외국인 노동자 등 기안84가 처해 본 바 없는 비남성·비시민의 자리에서는 계속 실패해왔다. 가장 큰 패인은 기안84가 자신이 경험해 본 바 없는 인물들마저도 자신의 직관에 의존해 그렸다는 데에 있다. 우기명을 그릴 때에는 최소한의 취재도 없이 그저 기안84가 겪어 온 경험세계를 밑바탕 삼아 창작했어도 충분히 독자를 설득하는 블랙코미디로 기능했지만, 봉지은은 그렇지 않다. 여성이 어떻게 사회를 살아내는지에 대한 이해와 숙고 없이 전제조차 틀려버린 자신의 좁디좁은 편견을 밑바탕 삼아 그려낸 캐릭터는 설득력이 없었고, 최소한 일관되지도 않았다. ‘광어인간’ 화의 봉지은은 기안84의 잘못된 현실 파악에 근거해 그려진, 말 그대로 실패한 풍자였고 그런데다 재미도 웃음도 놓쳐버린 총체적 실패작이다. 어떤 여성도 40대 팀장과 사귀게 된 봉지은을 두고, 가습기를 빵빵하게 틀어 둔 봉지은의 책상을 보고 웃지 않는다.

기안84가 실패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복학왕>의 세계 속에 다른 캐릭터를 지우고 오로지 한국 남성 청년들만, 우기명만 그리는 것이다. 여성도, 장애인도, 외국인 노동자도 없는 세계 속에서 우기명을 실패하고 좌절하다 성공하고 다시 실패하지만 끝내 살아남는 캐릭터로 그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기안84가 그런 세계를 그리는 것조차 실패하는 이유는, 그런 캐릭터들을 그려야만 우기명의 희노애락을 내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다양한 주체가 등장하는 <복학왕>의 세계를 오로지 감각과 직관에 의존해 그리는 것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지속적으로 터지는 논란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엿보이는 ‘캐붕’의 흔적도 이를 증명한다. 기안84가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만화를 창작한다면 이후에는 분명 우기명조차 제대로 그려내지 못할 것이다.

확실한 건 지금 이대로 <복학왕>이 계속 연재된다면, 이 논란 이후에도 여전히 같은 문제 제기가 반복되리라는 사실이다. 그런 기안84에게 계속해서 지면을 주는 일은 과연 옳을까? 이번 논란을 그저 입장문 하나로 퉁치지 말고, <복학왕>의 연재가 독자에게, 나아가 기안84에게도 정말 유익한 일이 맞는지 네이버웹툰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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