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경력개발센터가 진행하는 ‘이화-삼성 Essence 취업 워크숍’에 참석한 4학년 학생들이 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실무자로부터 면접준비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한 여대 재학 중인 4학년 학생들이 기업 실무자로부터 면접 준비에 대한 강연을 듣고 있다. ⓒ여성신문DB

 

기안84(35·김희민)의 웹툰 ‘복학왕’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12일 공개된 304화는 20대 여성 주인공 ‘봉지은’이 대기업 인턴 생활에서 계속 무능한 모습만 보였음에도 40대 남성 대기업 팀장과 잠자리 후 채용이 된 듯한 내용으로 꾸려졌다. 13일 공식 사과문이 발표되고서는 더 큰 논란이 일었다. 그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 귀여운 수달로 그려보게 됐다”고 황당한 해명을 내놨다.

쏟아지는 누리꾼들의 반응을 확인하다 보니 문든 하나의 상상이 떠올랐다. 여성 기자인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는 남성의 일자리를 얻기 위한 노력과 웹툰 작가로서의 취재다. 내용을 옮겨봤다. 어디까지나 모든 내용은 상상일 뿐이며 짧은 문학 작품(?)이다. 

<웹툰작가의 고뇌>

한 여성 웹툰 작가 A씨가 있었다. 사회를 냉정하게 바라보면서도 유머를 담아 표현하고 싶었던 작가는 어느 날 대학 동기를 만났다. ‘취업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한 여성 동기 B는 대학 시절부터 높은 학점에 고득점의 외국어 시험 성적, 화려한 공모전 수상과 대외활동 기록, 수십개의 자격증을 가졌기로 유명했다. B는 H은행과 K은행에 지원해 최종면접까지 갔으나 탈락했다.

A 작가는 취업 준비를 해본 적 없어서 잘 몰랐지만 B가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그 은행들의 남녀 합격자가 5.5 대 1인 것을 보고 상상했다. “아무래도 남자합격자들이 인사 담당자들과 모종의 관계를 갖거나 돈을 준 것 같다!” A 작가는 자신의 웹툰에 무능하지만 귀여운 남자 주인공이 인사 담당자들의 앞에서 귀엽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상추를 수십 장 건내는 모습을 그렸다.

웹툰은 공개와 동시에 비판이 빗발쳤다. 성실하게 공부하고 준비해 합격한 남자 취업준비생들을 무시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A 작가는 어리둥절했다. “취업에 스펙 말고도 중요한 게 더 있잖아? 그게 아니라면 B는 왜 합격할 수 없었던 건데?” 

 

부족한 점이 도대체 뭐길래?

지난 3월 한국여성노동자회가 404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채용과정에서의 성차별을 경험한 여성은 45.5%(184명)에 달한다. 승진이나 임금협상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밀린다. 몇 년을 일해도 항상 최저임금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54.5%(220명), 같은 일을 하는 남자보다 내가 임금을 덜 받는 것 같다 53.5%(216)명, 가장(생계부양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 44.1%(178명) 등 많은 내용들이 여성이 처한 현실을 말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2018년 9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채용 성차별 익명신고센터를 운영한 결과 4개월 간 122건이 접수됐다.

지난해 DB금융투자는 투자금융본부 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본부 인턴 모집 공고를 내며 지원자격을 ‘90년 이후 출생한 상경계열 남성’으로 한정했다. 전남도청도 청원경찰과 청원산림보호직도 남성만 지원할 수 있었으며 전북 익산의 한 신협은 여성 구직자에 “여성은 지원할 수 없다”고 안내했다. 취업 문턱을 넘은 여성도 차별을 감내해야 했다. 대전MBC 여성 아나운서들은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데도 남성 아나운서와 수백만원 차이 나는 급여를 받고 비정규직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머물러야 했다.

지난 2018년 하나은행과 국민은행 등은 점수조작 등을 통해 고의적으로 여성을 배제했다. 채용 성차별이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통해 실제로 드러나자 정부는 ‘채용 성차별 해소’를 위해 신규 채용 합격자 중 성별 비율을 공시하는 방안 등을 내놓았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누가 귀여움을 요구하나

귀여움으로 승부를 봐서 취업에 성공하는 게 가능할까? 채용 전문 플랫폼 사람인을 살펴보면 ‘용모단정’한 40대 미만의 젊은 여성만을 채용한다고 밝히는 기업들이 있다. 성별이 업무에 영향을 미치는 직업이 아닌데도 그렇다.

대표적인 직업 중 하나가 바로 ‘비서’다. 14일 현재 ‘서울 전체’에서 ‘비서’를 채용 중인 기업은 549개다. 여성만을 채용 중인 공고는 총 74건이며 남성만 채용 중인 공고는 6건이다. 14일 현재 만 29세까지의 여성만을 비서로 채용 중인 한 기업에 전화를 걸어 여자만 뽑는 이유를 묻자 “대표님이 그렇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확인해 본 바 대표는 남성이었다.

지난 6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고 박 시장은 전날 자신이 직장내 성희롱 및 강제추행으로 피소당한 사실을 안 후 출근하지 않고 그대로 죽음을 택했다. 그를 고발한 사람은 4년간 그의 비서로 일했던 여성이었으며 그는 일상적으로 비서실에 오는 사람들로부터 외모 칭찬을 빙자한 평가를 들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9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또한 자신의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3년6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 업계는 남자가 일하기 괜찮나?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각은 여성이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여성으로서 수많은 남성들의 눈초리 아래에서 적당한 균형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 명의 여성에게 누군가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귀여움’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당신이 성공하기에는 여성이 일하기 적절하지 않은 곳’이라고 조언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모두 여성이 여성 자신을 그대로 바라보는 시각이거나 여성이 남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기업 공채에 합격한 남성을 두고 ‘귀여움으로 승부봤구나’ 생각한 적 없다. 취업에 실패한 남성을 보면서도 ‘남자가 일하기에 적절한 곳은 아니니까’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문득 기안84가 일하는 웹툰 업계는 남자가 일하기에 어떤 곳인지, 성공을 위해 그가 어떤 식으로 관계자들과 지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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