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특급’ 기획 PD·MC 재재
케이팝 ‘고인물’ 강점 살려
‘숨듣명’으로 방송 트렌드 이끌고
출연자 인터뷰 시 애교·개인기
강요 않고 ‘안할 권리’ 존중
방송 관행·획일적 여성 이미지 넘어
다양성 보여주는 ‘빨간 숏컷 여성’

사진제공=SBS 문명특급
사진제공=SBS 문명특급

 

‘연반인’을 아십니까? 일반인이지만 연예인 못지않은 끼와 재능으로 연예인과 일반인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짬짜면처럼 ‘연예인반 일반인반’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TV 속 대표적인 연반인으로 ‘마마’(함소원의 시어머니), ‘홍선영’(홍진영의 언니), ‘김언중’(김승현의 아버지) 등을 들 수 있으며, 연예인 가족을 다룬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으로 관심을 받은 이들이 해당된다. 또 다른 연반인들은 펭수(자이언트 펭TV), 도티(도티 TV), 승헌쓰(느낌적인 느낌), 재재(문명특급)처럼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크리에이터들이다. 이들은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잡지 인터뷰, 방송과 라디오 게스트 출연, 앨범 발매 등 행동반경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 10대와 20대 사이에 최애(최고로 애정한다) 연반인으로 떠오른 재재의 방송 진행 스타일과 영향력은 주목할 만한다.

재재(본명 이은재)는 SBS의 온라인 콘텐츠인 ‘문명 특급’ 채널의 기획 PD겸 MC다. 그는 스브스뉴스에서 카드 뉴스를 제작하는 평범한 SBS 인턴이었다. 이후 콘텐츠 제작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SBS의 정직원이 되어 스브스뉴스 속 ‘문명특급’이라는 단독 코너를 만들어 ‘글로벌 신문물 전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코너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2019년 5월 독립한 단독 유튜브 채널이 ‘문명특급’이다. 2000년대 전성기를 가졌던 아이돌, 작사가, 안무가의 인터뷰를 주요 내용으로 한 ‘숨어듣는 명곡’(숨듣명)이란 코너는 비의 ‘깡 신드롬’을 먼저 조명해 방송계의 트렌드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기획력과 진행력을 인정받으면서 재재는 ‘2020년대 MC계의 신예’ 혹은 ‘뉴미디어계의 유재석’으로 불리는 대세 연반인으로 등극했다. 한편, 지상파 방송사의 회사원으로 월급과 회사 내 처우 향상을 토로하는 이야기는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보통 사람들과의 접점을 유지하는 그만의 강점이기도 하다.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 진행자 재재와 조연출 야니가 부른 패러디 곡 ‘유교걸’ 영상의 한 장면. ©문명특급 유튜브 캡쳐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 진행자 재재와 조연출 야니가 부른 패러디 곡 ‘유교걸’ 영상의 한 장면. 사진제공=SBS 문명특급

 

방송사에 소속된 PD지만, 강렬한 빨간 숏컷 헤어스타일의 그는 어디에서나 눈길을 사로잡는 꽤나 ‘쎈 언니’라는 이미지를 풍기는 연예인의 끼를 보여준다. 호락호락하지 않고 카리스마 넘칠 것 같은 겉모습과 달리, 진행을 위한 노력과 게스트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면서 ‘뉴미디어계의 유재석’이라 불리는 반전 매력을 보여준다. 재재는 게스트의 나이와 상관없이 존댓말을 사용하고, 게스트에 대한 방대한 양의 자료 조사로 해당 연예인조차 인지하지 못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그들의 춤과 안무까지 준비하는 열성을 보여준다.

방송 진행에 있어 그의 몇 가지 신념을 살펴보면, 게스트에게 결혼과 연애에 관한 질문 않기, 게스트에게 춤과 노래 강요하지 않기, 게스트의 애교 금지 등이다. 이는 여타 프로그램들이 가진 연예인 게스트 활용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자신만의 원칙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영화, 드라마, 앨범 홍보를 위해 출연하는 배우와 가수에게 프로그램들은 관습적으로 개인기와 춤, 노래, (특히 젊은 여성연예인에게) 애교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였다. 연예인들은 재미있는 방송을 위해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연예인들의 ‘안할 권리’는 무시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재재는 인격을 가진 존재로 연예인을 대하면서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본인이 먼저 노래와 춤을 보여주고, 게스트와 관련한 개인기를 펼친다. 게스트를 편하게 만드는 그의 진행 방식은 어떤 게스트와도 케미가 돋보이는 방송을 연출한다. 당연하게 여겨진 관행적인 진행 방식이 아니어도 재미있는 방송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방송 외적으로 보여주는 말과 행동 또한 시청자/구독자에게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길을 제시한다. 재재는 “이런 외양을 지닌 여성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발언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여성 이미지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다. 다양성을 담보로 한 온라인 세상에서도 빨간 숏컷 머리의 여성은 여전히 희귀하다는 점에서, 그가 미디어에 등장하고 인기를 모으는 현상 자체가 우리 사회의 천편일률적인 여성 이미지에 대한 기대를 깨뜨릴 수 있는 사례가 된다. 재재는 비혼주의에 대해 알아보는 ‘문명 특급’ 에피소드에서 지인들을 불러 자신의 비혼식을 방송하여, 자신의 삶을 통해 비혼이라는 다른 방식의 삶을 보여주었다.

방송의 관행과 여성에 대한 선을 넘어서려는 연반인 재재라는 존재는 수많은 영역에 군림하는 견고한 경계를 넘고자하는 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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