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법] ‘추행의 세계’
[모두의 법] ‘추행의 세계’
  •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 승인 2020.08.08 07:00
  • 수정 2020-08-08 0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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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가자” 손목 잡았다면
강제추행 맞다” 대법 판단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흥가 풍경.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이 없음.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시내 유흥가 모습.  ⓒ여성신문

 

법에서 말하는 추행이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뜻한다.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언뜻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만을 늘어놓고 있는 듯이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추상적인 개념을 또 다른 추상적인 용어들로써 정의해 두다 보니, 도대체 어디까지를 추행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인지 이것만으로는 도통 감이 잘 오지 않는 측면도 있다. 상식적으로는 추행인 것처럼 여겨지는 행위가 법률상의 추행으로까지는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실제로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추행 개념에 관한 대법원 판례가 변화하고 있다.

공장 소장인 피고인이 자신의 감독을 받는 하급직원인 피해자에게 캔맥주 1개를 건네주며 침대방으로 유인한 후, 피해자가 거절하였음에도 담배를 권했다. 그 분위기를 어색하게 느낀 피해자가 돌아가겠다고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이때 피고인은 한 손으로 위 피해자의 오른쪽 손목을 세게 움켜쥐어 피고인의 앞으로 당기면서 ‘자고 가요’라는 말을 했단다. 검사는 피고인을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로 기소했다.

위 사건에 관한 대법원의 2014년 판단이다. 피고인이 접촉한 피해자의 손목은 그 자체만으로는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체 부위라고 보기는 어렵고, 피고인은 피해자를 쓰다듬거나 안으려고 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손목을 잡은 것은 피해자를 다시 자리에 앉게 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행동에 추행의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피고인이 한 말을 희롱으로 볼 수는 있더라도,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를 법에서 정하는 추행에 이른다고 볼 수 없다. 즉,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은 무죄.

사실관계에 있어서는 유사하지만 최근에 발생한 새로운 사건 하나 더. 업무 상급자가 직장 내에서 회식을 한 후 입사 3개월차인 신입직원과 두 사람만 남은 자리에서 ‘모텔에 가자.’라며 추근덕거리기 시작했다. 신입 직원은 이를 거절했지만 상급자는 ‘모텔에 같이 가고 싶다. 안 갈 이유가 뭐가 있냐?’라고 하면서 피해자의 손목을 잡아끌었단다.

항소심 법원은 위 2014년 대법원 판결의 판시 취지를 그대로 따랐다. 손목만으로는 그 자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체부위라고 보기는 어렵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손목을 잡아끌고 몇 마디 말을 한 것 이외에는 성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볼 만한 다른 유형적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근거로 항소심 법원은 이번 사건의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번에는 대법원이 2014년과는 상반된 판단을 했다. 모텔에 가자고 하면서 손목을 잡아끈 행위에는 성적인 동기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설령 피고인이 피해자를 쓰다듬었다거나 안는 등의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이미 이것만으로도 추행죄 성립에는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대법원은 피고인이 접촉한 피해자의 신체부위가 어디인지만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는지 아닌지를 함부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분명히 했다. 사실, 대법원은 2004년의 한 판결에서 여성에 대한 추행에 있어서 신체부위에 따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던 바가 이미 있었다(2004도52).

대법원이 이번에 전원합의체를 거쳐서 기존의 판례를 정식으로 변경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이 선고된 판례는 향후 각급 법원의 추행죄 성립인정 범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추행죄 성립에 관한 법리 다툼에 있어서 접촉이 있었던 신체부위가 어디였느냐 하는 쟁점은 부차적으로만 다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의 최근 판결은 기본적으로는 환영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추행 개념을 둘러 싼 모든 문제가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먼저, 현행법 규정의 문언과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시행규칙 별표 1에서 ‘입맞춤, 포옹 또는 뒤에서 껴안는 등의 신체적 접촉행위’, ‘가슴·엉덩이 등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는 행위’를 신체적(육체적) 성희롱의 예시로서 두고 있다. 문자 그대로만 읽어보면 민사책임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성희롱에 대해서는 ‘특정 신체부위’에 대한 접촉 여부가 논해지고 있는데, 더욱 엄격한 기준에 의거하여 판단되어야 하는 형사책임에 해당하는 추행죄 성립여부에 관해서는 오히려 신체부위에 따른 차등을 둘 수 없다는 체계 부정합의 모순이 생긴다. 기존의 규율체계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에 관한 심도 깊은 고민과 조속한 해결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음으로, 대법원이 2013년 선고한 또 다른 판례를 보면 추행죄의 성립에 있어서는 성욕을 자극·흥분·만족시키려는 주관적 동기나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주관적인 성적 목적이나 동기, 의도를 고려할 필요가 없는 데다가 접촉한 신체부위에 있어서도 차등을 두지 않아야 한다면, 적어도 형식논리상으로는 모든 형태의 신체접촉이 추행의 포섭범위 내에 당연히 해당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이는 형사처벌의 대상으로까지 보기는 다소 어려운 경우들에 대해서는 추행이 아닌 ‘신체적 성희롱’ 개념을 적용해 왔던 기존의 체계와 잘 맞지 않을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신체접촉이기만 하다면 일단 형사처벌 대상에 포섭될 수 있는 가능성을 먼저 인정해 놓고 나서,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함으로써 형사처벌함이 마땅한지 그렇지 아니한지를 다시 따져보아야 하는 방식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해석을 통한 추행 인정범위의 확대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지의 문제도 있다. 예컨대 미국의 모범형법에서도 ‘성적인 접촉’은 ‘신체의 성적인 부위 또는 기타 은밀한 부위에 대한 접촉’으로 한정되어 있고, 모범형법 개정안에서는 ‘은밀한 부위’를 몇몇 특정한 부위로 더욱 구체화하여 열거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명문규정도 아닌 해석으로써 오히려 그 범위를 훨씬 넓혀놓게 된다는 데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

상식과 경험의 견지에서는 형사처벌이 절실해 보이는 경우에조차 형식적이고도 기교적인 법적 거름망을 거쳐서 무죄판결이나 불기소처분이 나오는 사례들이 왕왕 있어 왔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확립된 여러 법 원칙들과 전체적인 체계정합성의 틀 내에서 개선과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근본적으로는 여러 선진적 입법례를 참조해 추행죄 처벌조항의 구성요건을 우리 나름대로 구체화 하고 상세화 해 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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