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 치마 속 불법 촬영 시도 20대 남성
“안 찍었다” 발뺌하다 결국 구속
일부에선 피해자에 “옷차림 때문”
‘야하게 입어서’ ‘늦게 다녀서’ 등
‘피해자 유발론’ ‘피해자다움’ 강요 여전

PC방에서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던 여성 BJ의 신체를 몰래 찍은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아프리카TV 캡처
PC방에서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던 여성 BJ의 신체를 몰래 찍은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아프리카TV 캡처

 

 

여성 인터넷방송 진행자(BJ)를 불법 촬영 하려다 현장에서 체포된 20대 남성이 25일 구속됐다. 인터넷방송 시청자들의 제보와 PC방 내 폐쇄회로(CC)TV 덕에 가해자는 붙잡혔지만 피해자는 또 다른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경기 시흥경찰서는 BJ를 상대로 불법 촬영을 시도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로 20대 남성 A씨를 구속했다고 25일 밝혔다.

A씨는 전날 정오께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을 인터넷으로 생방송 하던 BJ의 치마 아래로 휴대전화 카메라를 대고 몰래 찍으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당시 시청자들의 제보를 받고 PC방 내 CCTV를 확인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피해자에게 적발된 직후 “아무것도 찍지 않았다”고 부인했으나, 경찰서에서는 혐의를 일부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안이 중대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 하는 등 여죄를 수사할 방침이다.

사건이 알려지자 엉뚱하게 불법 촬영 피해자인 BJ를 향한 악성 댓글이 쏟아졌다. 해당 사건 기사에는 “옷차림 조심해라 당연히 너한테도 책임있다”, “찍는 남자도 문제, 복장도 술집여자처럼 짧게 입은 것도 문제” 등 옷차림을 문제 삼거나 “유명해지려고 조작했다”는 식의 음모론을 펼치기도 했다.

피해를 입은 BJ는 자신의 방송 채널에 ‘오늘 몰카일에 대해’라는 글을 통해 심경을 밝혔다.

그는 “위로와 몰카범에 대한 욕이 더 많지만 주작(조작)이라는 말과 내 복장 탓을 하는 글도 있었다”며 “100% 조작이 아니다. 조작이면 무고죄를 받을 것이고 방송도 그만두겠다. 굳이 이런 것으로 홍보하려고 조작하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술집 여자’ ‘복장 때문에 당연히 찍을 수밖에 없다’ 등 오히려 피해자 탓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며 “그런 말 하시는 분들은 오늘 몰카범이나 키보드 워리어나 다름없는 똑같은 범죄다”라고 말했다.

 

“꽃뱀 아니냐” “왜 가만히 있었냐”

옷차림과 행실을 이유로 성폭력 범죄의 책임을 여성 탓으로 돌리는 ‘피해자 유발론’은 피해자가 겪는 대표적인 2차 피해다. 2차 피해란, 성폭력 사건 발생 이후 사건을 공론화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입는 문제를 가리킨다. 사건을 신고했을 때 경찰이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거나, 법정에서 판사가 가해자의 ‘전도유망한 미래’를 걱정하고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일,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는 기사도 2차 피해에 해당한다.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성폭력과 성희롱에 대한 잘못된 인식 및 표현 바로잡기’(성희롱·성폭력 사건 언론보도수첩) 사례를 보면 △피해자도 사건이 벌어진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 △피해자가 고소나 합의금을 언급한다면 피해자의 진정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왜 가만히 있었냐? 끝까지 저항하면 성폭력은 불가능 한 것 아닌가 △꽃뱀에게 당한 것 아닌가? 무고당한 남성은 누가 책임지나 등이 성폭력 사건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2차 피해로 꼽힌다.

 

따돌림·불편한 시선 등 직장에서도 2차 피해

피해자들은 1차 피해 이후 자신을 향한 왜곡된 시선으로 치유와 회복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이 2015년 ‘우리가 말하는 피해자란 없다’ 포럼에서 발표한 235명의 성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1.9%가 “네가 피해 사실을 주변 사람에게 알려봐야 너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답했다. 또 피해자들은 “너의 피해를 공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53.7%), “네가 남자에게 만만해 보였기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49.1%), “성폭력을 당했다는 것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48.6%), “성폭력을 당한 사람은 수치심과 자책감에 시달릴 것이다”(47.7%)는 성폭력 통념이 담긴 2차 피해성 말을 주변 인들에게 들어야 했다.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성인 남녀 근로자 2000명(여성 1700명, 남성 300명)을 설문한 결과에서도 2차 피해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응답자의 42.5%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성희롱 피해자들은 2차 피해 등으로 대인관계나 업무수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피해자 중 44%가 수면장애, 섭식장애 등 성희롱 피해로 인한 ‘신체적 어려움’을 겪었다. 53%는 분노와 수치심 등 ‘정신적 어려움’으로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성희롱 피해 뒤 직장 내 따돌림이나 불편한 시선 때문에 업무 협조가 어렵다는 응답도 37%를 차지했다. 성희롱 피해를 겪은 뒤 51%가 일을 그만두고 쉬었거나(12.8%) 이직(24.2%)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성희롱 이후 고용변동을 경험한 피해자일수록 이직·경력단절 의사가 높다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나 불이익 조치가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가해자-피해자 간 실질적 분리조치와 고충처리 담당자의 성인지 감수성 및 역량 강화, 신고에 따른 불이익과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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