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따가운 햇빛이 내려 쪼이는 집 마당에서 조촐한 티타임을 이웃과 가졌다. 매일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는 사이지만 초대받아 식사를 한 지도 2년이 넘어 언젠가 간단한 티타임이라 갖자고 아내가 제안해 우리 집 뜰 한편에서 넷이서 마주 앉았다.
7월의 강렬한 햇빛은 우리를 그늘 아래에 자리 잡게 했다. 아내가 플레데르 꽃으로 만든 주스에 맥주를 섞은 칵테일은 스웨덴의 여름에 제격이다.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폭넓게 서식하는 플레데르 나무가 스웨덴에 퍼져 있어 전통적으로 플레데르 꽃으로 주스를 만들어야 스웨덴의 여름이 끝난다고 할 정도로 가정마다 여름행사로 여겨진다.
우리 집 뒤편 마당에서 자라고 있어 나무에서 막 딴 꽃을 광주리에 담아 깨끗이 씻은 후 레몬즙과 설탕을 섞어 3-4일 숙성시킨 후 잘 걸러내면 향기로운 주스가 완성된다. 여기에 맥주나 술을 섞어 마시면 웬만한 칵테일바의 음료에 뒤지지 않는 맛이 완성된다. 갓 구운 커피케이크에도 플레데르 꽃 주스가 들어가 오늘은 플레데르 파티가 되었다.

옆집 아주머니는 작년부터 정년퇴직을 했지만 유산 상담 법률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일주일에 2-3일을 여전히 출근한다. 아저씨는 정년퇴직을 한지 7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집 공사를 도맡아 하고 지붕에 올라가 기와 교체 공사와 증축도 거뜬히 해 낸다. 호쾌한 옆집 아저씨는 스웨덴의 가장 추운 북쪽 지방에서 태어나 자라 스톡홀름의 겨울 날씨는 너무 따듯하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북쪽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즐긴다. 아주머니는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다. 자연스럽게 북쪽 지방 추운 날씨 이야기, 앞마당 농사 이야기, 코로나 이야기로 넘어갔다가 퇴직 전 직업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갔다. 어려서부터 아저씨는 50대 중반 지인의 권유로 스톡홀름에서 장의사의 길로 들어섰다. 특별한 자격증이나 경력이 필요 없어 직업을 바꾸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스웨덴에서는 장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장의 전문 회사인 포 뉴스(Fonus)가 마을마다 하나씩 있어 교회 안장이나 화장터 업무까지 책임을 진다. 옆집 아저씨는 포 누르를 경영하는 사업가였던 셈이다. 말이 사업이지 시신의 운반, 세척, 관제적, 데코레이션, 장례식 준비 등 모든 절차를 준비하는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족의 장례를 눈여겨보면서 장의사의 직업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직업선택에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그의 눈에는 진한 자신감과 소회가 묻어 나왔다. 그의 말에 의하면 태어났을 때와 죽었을 때의 모습이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한다. 둘 다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그리고 세상에서 나오고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장면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그의 설명 앞에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직업인으로서의 장의사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장의사와 돌아가신 분의 가족은 자연스럽게 많은 대화를 나눈다. 입관할 때 입는 옷과 얼굴 화장, 장식 꽃, 관의 종류 등 가족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일체감을 갖게 된다. 옆집 아저씨는 과거 다양한 가족들과의 대화로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돌아가신 분의 얼굴을 보면 가족의 성향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평안하고 인자한 모습을 지닌 얼굴은 가족이 잘 화합되어 있고, 서로 배려하며 위하는 가족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했다. 죽어서도 강한 인상을 풍기는 가족은 권위적이고 딱딱한 분위기와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고 하며 자신은 죽어서 어떤 모습일지 잘 모르겠다고 농담을 던진다.

장례식이 끝나면 그다음 절차는 가족의 유산 분배가 기다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장의사는 법률상담사와 자주 만나게 되어 있다. 장례식 절차에서 들었던 가족의 정보가 까다로운 유산상속문제를 해결하는 법률상담사로서는 귀중한 정보가 된다. 옆집 아주머니는 깊이 있고 사려 깊은 아저씨의 진지함과 무겁고 힘들 수 있는 직업을 사명의식을 가진 아저씨에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모두 다 꺼리는 장의사 직업을 천직이라 생각하는 아저씨가 듬직하고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고 회상하며 아저씨의 눈을 부끄럽게 바라보는 모습이 순수해 보인다.
아주머니는 스웨덴 최고의 법대인 웁살라대학에서 법학사를 마치고 판사나 검사보다는 개인의 아픔과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변호사나 법률상담사가 되겠다고 처음부터 계획했다고 했다. 그리고 선배로부터 함께 상속 관련 회사를 차려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꺼려 했지만, 가족의 분쟁을 법률적으로 해결해 주는 직업이 어려서부터 꿈꾸던 소시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유산상속 법률상담소를 사업을 하게 된 동기였다. 그리고는 전 남편이 돌아가시고 나서 뒤늦게 옆집 아저씨를 만나 15년 전부터 옆 집으로 이사 와 함께 생활하고 계신다는 두 분의 모습은 참 아름다워 보였다.

죽음을 공동 주제로 한 직업으로 연결되어 만난 두 분의 삶의 모습은 항상 절제되어 있다. 화단에 물을 주기 위해 지붕에 떨어진 빗물 한 방울이라도 받아쓰려고 집 주위는 물통으로 둘러싸여 있고, 날파리 한 마리도 생명이며 지구에서 멸종 위기를 겪지 않도록 생물 다양성(biological diversity)을 위해 마당 한편의 잔디가 길 때까지 깍지 않고 먹이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신 분 들이다. 전기 잔디 깎기를 사용하지 않고 힘이 들어도 수동 잔디 깎기를 고집하고, 벌레를 죽이기 위해 농약을 사용하거나 모기가 많아도 절대로 모기약을 쓰지 않는 자연친화적 원칙을 고수하는 분들이다. 숨이 붙어 있는 생명은 그 어떤 생명체든 보존해야 한다는 자연보호주의는 방심하는 나의 삶의 자세를 돌아보게 한다.
죽음과 연관된 직업을 가진 두 분의 사랑은 어쩌면 죽음으로 가는 길에서 숨이 붙어 있는 순간까지 자연과 교감하면서 생명을 존중하며 사람의 도리를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감동적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박선이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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