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가 철거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3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가 철거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쓰인 조화가 성폭력 사건으로 구속되어 있는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씨 모친의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당연히 와야 한다” “마음이 무겁다” 그들만의 애도와 연대의 말들이 쏟아졌다. 비슷한 시각, 22만건의 아동 성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손정우는 구치소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미국 송환이 최종적으로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사흘 후인 7월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망했다. 안희정씨 모친 장례식에 있었던 ‘대통령 문재인’의 조화는 박원순 시장의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사망 소식과 함께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범행에 대한 소식도 알려졌다. 그러나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에 대해 조사해야한다는 목소리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일주일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이 떠들썩했던 11일,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죽음이 있었다. 전북 임실군 공무원이 “정기 인사이동으로 (과거) 성폭력 피해를 본 간부와 앞으로 함께 일하게 돼 힘들 것 같다”라는 문자를 보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시장과 임실군 공무원의 죽음은 똑같은 인간의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례식장에는 대통령의 조화도, 유력 대선 후보들의 조문도 없었다.

죽음은 언제나 동등하게 애도되지 못한다. 정치적이지 않은 추모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일수록 잘 잊혀졌다. 수많은 여성들이 성착취 영상의 피해자가 되어 목숨을 끊지만 남은 영상들은 ‘유작’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된다. 누군가를 죽음의 문턱에 보냈거나 실제로 죽인 디지털 성범죄자들은 깃털만큼 가벼운 형벌을 받는다. 서울시 구청장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을 ‘사적인 문제’로 규정했다. 이런 사회에서 애도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이고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13일, 피해자 측이 기자회견을 연 이후 여론이 변하기 시작하자 애도하던 정치인들은 뒤늦게 반성과 사과를 쏟아냈다. 57만명이 서울특별시장에 반대한다는 국민청원에 참여한지 한참이나 지난 다음이었다. 그들에게 ‘예의 없는 자들’이라 분류된 57만명의 시민들은 시민이었는가? 어디선가 움츠리고 있을 피해자는 국민이었는가? 서울특별시장을 반대한 57만명은 성추행을 저지른 고위공직자에 대한 추모를 거부하였지만 분명 과거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과 페미사이드 피해자를 추모했을 것이다. 57만명의 애도는 공고한 남성 연대로 만들어진 ‘애도’ 혹은 ‘민주주의’ 혹은 ‘시민’속에 여성이 없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가해자를 변호하고 애도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살아있는 인간’을 죽이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애도는 불가능하다. 박원순이라는 권력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 옆에 많은 이들이 서 있기를 바란다. 첫 시작으로 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진실을 찾기 위해 서울시 관계자가 배제된 독립기구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며 범죄 사실이 명명백백히 조사되어야 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모든 고위공직자의 성폭력에 대해 전수 조사를 시행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후 우리가 구성해야하는 것은 새로운 권력이기도 하다. 진실에 대한 규명이 새로운 사회도 함께 만들어내길 바란다. 

신민주 기본소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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