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사상검증 인권위 결정문 이행 촉구 기자회견
업무 배제된 피해자 복귀시키고
창작 노동자 보호방안 마련해야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은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상검증, 명백한 인권 침해이다' 기자회견을 열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홍수형 기자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상검증, 명백한 인권 침해다'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홍수형 기자

단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일자리를 위협받아야 했던 ‘게임업계의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건’은 차별이자 불이익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판단이 지난 3일 나왔다. 사상검증으로 업무 배제 피해를 당한 당사자와 전국여성노동조합 외 32개의 단체들은 게임업체에 인권위 결정을 이행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대표적인 사상검증 사건은 지난 2016년 게임사 넥슨 코리아는 당사 게임 ‘클로저스’ 김자연 성우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성우를 교체한 사례다.

이후에도 업계 내 게임 일러스트레이터와 웹툰 작가들을 포함한 창작노동자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게임 유저들의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사이버 폭력)이 이어지고 게임업체가 이를 수용해 작업자를 배제했다. 

피해 당사자들은 2018년 인권위에 피해 진정을 접수했고 지난 3일 ‘사상 및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여성 작가 배제 관행 개선을 위한 의견표명’ 결정이 내려졌다.

시민단체들은 게임업계 사상검증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는 프리랜서를 포함한 사각지대 노동자를 보호할 방안을 마련하라”며 “문체부는 게임 업계의 여성혐오와 차별적 관행에 관련한 실태조사를 시행하고 게임을 문화예술 분야로 인정해 게임 업계 창작노동자를 보호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콘진원은 게임 지원사업 심사 기준을 보완하고 게임 업계의 여성혐오적 차별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며 “게임업체는 게임 이용자의 반인권적 진단행동 옹호를 중단하고 피해자를 업계로 복귀시켜라”라고 목소리 높였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은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상검증, 명백한 인권 침해이다' 기자회견을 열고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문체부와 콘진원은 국가인권위 결정문을 이행하라'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홍수형 기자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상검증, 명백한 인권 침해다'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문체부와 콘진원은 국가인권위 결정문을 이행하라'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홍수형 기자

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은 “우리는 게임업계에서 사상검증 내지는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직장·일자리·경력을 잃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더 이상 벌어지면 안 된다는 입장”이라며 “이번에 인권위에서는 여태까지 낸 것 중에 가장 특이하게 ‘의견표명’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나 위원장은 “인권위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게임업계에 사상검증을 이유로 일자리를 잃게 한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는 인식은 있지만 인권위 법의 한계 때문에 일반적인 노동자가 아닌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의견 표명이라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차별을 범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게임업계에서는 사업자이기 때문에 ‘돈 되는 일 때문에 했다’, ‘돈을 못 벌까봐 잘랐다’고 했다”며 “이러한 사회적 책임 없이 무책임한 발언으로 돈을 벌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웹하드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불법동영상과 성 착취물을 올렸던 사람이 구속됐다. 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다고 하는 게임업체 사장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게임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정상적이고 올바른 생각을 가진 시민이라는 마음에 근거해서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몇 년 전 회사 동료가 회사에 신고했던 일을 기억한다고 밝혔다. 류 의원은 “게임업계는 게임 개발이 중단되면 정규직이라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구조”라며 “고용불안이 만연한 업계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프리랜서에게 생계 위협을 가하는 것을 더 쉽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게임업계 여성 종사자들은 차별에 노출돼 있다”며 “오늘까지도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사상 검증은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사상검증은 그 자체로 이미 혐오와 차별을 행하는 것”이라며 “나와 다른 생각을 혐오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게임업계 경영진에게 촉구한다.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혐오 없이도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업계 문화를 조성하는데 동참해 달라”며 “업계부터 최소한의 책임을 바탕으로 소비자를 설득해나가라”고 주장했다.

이어 “문체부와 콘진원은 게임업계 내 여성노동 및 차별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여성혐오와 차별적 관행을 근절할 대책을 마련하라”고 덧붙였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은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상검증, 명백한 인권 침해이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은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상검증, 명백한 인권 침해이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상검증 피해당사자들의 발언문을 보냈다.

피해당사자 A씨는 “나와 같은 피해자들은 세상에 부당함을 외쳤지만 낙인의 괴롭힘은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며 “생계 수단이 없어졌기 때문에 나 자신을 책망하고 공격하다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글을 공유했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됐고 이렇게 큰 상처를 받고 있다”며 “2년여 간 기다린 인권위 결정문에는 아쉬움이 많지만 국가가 이 사안에 대해 심각성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다시 내 일상을 되찾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피해당사자 B씨는 “자신의 신념과 사상을 개인적인 공간 속에서도 언급할 수 없다는 현실이 막막하다”며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피해가 반복되며 변화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우리가 호소할 기관도 없다”며 “우리가 가야할 곳은 어디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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