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故 박원순 서울시장 추모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故 박원순 서울시장 추모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국회 내 여성 근무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국회페미’가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이 제작해 서울 곳곳에 내건 고 박원순 서울시장 추모 현수막에 대해 “2차 가해를 유발한다. 2차 가해 현수막을 당장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국회페미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이 제작한 추모 현수막이 2차 가해를 유발하는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내용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이는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수사가 종결된 정황을 이용해 피해자를 모욕하고 고통을 주는 명백한 2차 가해”라며 “박 시장의 성폭력 피소 사실을 부정하고 시민들에게 동의를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페미는 “집권 여당으로서 민주당이 우선순위에 둬야 했던 일은 2차 가해 현수막을 내거는 것이 아니라 박 시장 죽음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향하는 것을 막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현수막뿐만 아니라 많은 유력 정치인들이 공인으로서의 본분과 책임을 잊고 박 시장의 성폭력 피소 사실을 음해로 치부하는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다”며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 전례 없는 서울특별시장(葬)과 시민분향소 운영을 추진하고, 공식 일정을 줄줄이 취소하며 권력자는 모든 것의 예외가 될 수 있다고 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정치권의 잘못된 대응으로 박원순 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를 포함해 권위주의와 차별로 피해를 겪은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깊은 절망과 배반감을 느끼고 있다”며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신뢰가 훼손되었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국민이 반으로 쪼개져 맹렬히 반목하고 있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국회 내부에서 극심한 여성 보좌진 ‘펜스 룰’ 사례가 발생하는 피해 문제도 짚었다.

국회페미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여성 보좌진 채용을 앞으로 고심하겠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오가고, 일부 보좌진 단톡방에서는 피해자의 신상을 악의적으로 캐내는 일도 벌어졌다”며 “국회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성별이 여성인 비서에게 박 시장 죽음의 책임을 씌우는 것이 아니라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국회페미 페이스북
ⓒ국회페미 페이스북

다음은 국회페미 성명문 전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이 제작한 故 박원순 서울시장 추모 현수막이 2차 가해를 유발하는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내용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수사가 종결된 정황을 이용해 피해자를 모욕하고 고통을 주는 명백한 2차 가해입니다. 당의 정치적 이해가 반영된 메시지를 시내 곳곳에 내걸어 박 시장의 성폭력 피소 사실을 부정하고, 시민들에게 동의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이 우선순위에 둬야 했던 일은 2차 가해 현수막을 내거는 것이 아니라, 박 시장 죽음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향하는 것을 막는 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뜻을 함께한 동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큰 충격과 슬픔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이 위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고소당한 직후 죽음을 선택한 정황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비극적인 선택으로 사건의 진상 규명을 스스로 중단시켰습니다.

현수막뿐만 아니라, 많은 유력 정치인들이 공인으로서의 본분과 책임을 잊고 박 시장의 성폭력 피소 사실을 음해로 치부하는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 전례 없는 서울특별시장(葬)과 시민분향소 운영을 추진하고, 공식 일정을 줄줄이 취소하며 권력자는 모든 것의 예외가 될 수 있다고 과시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잘못된 대응으로, 박원순 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를 포함하여 권위주의와 차별로 피해를 겪은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깊은 절망과 배반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신뢰가 훼손되었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국민이 반으로 쪼개져 맹렬히 반목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회 내부에서 극심한 여성 보좌진 ‘펜스 룰’ 사례가 발생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여성 보좌진 채용을 앞으로 고심하겠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오가고, 일부 보좌진 단톡방에서는 피해자의 신상을 악의적으로 캐내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만일 여성 보좌진 채용을 줄이고 성별을 이유로 업무를 제한해 조직에서 더 낮은 지위에 가둔다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사라지기는커녕 더 음성적이고 악질적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국회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성별이 여성인 비서에게 박 시장 죽음의 책임을 씌우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되는 조직 내 성폭력 문제가 일부 개인의 사적인 일이 아니라, 성차별적이고 폐쇄적인 정치권 전체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발본색원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덧붙여, 민주당 소속 정치인의 성폭력 사건이 연이어 터지긴 했으나 이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준 폭로자가 최근 들어 민주당 쪽에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침묵과 비판밖에 하지 않은 야당도 똑같은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특정 정당과 진영의 문제인 것처럼 몰아 정쟁화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피해자들은 더 광범위한 2차 가해로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이 사건을 정치권 전체의 문제로, 성차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회 전체의 문제로 봐주시고 함께 해결을 모색해 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민주당은 2차 가해 현수막을 당장 철거하십시오.

국회와 각 정당은 내부 성폭력 사건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 피해자를 억압하지 마십시오.

-2020년 7월 12일, 국회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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